[단독] 이재용 영장의 '스모킹 건', 안종범 업무수첩

특별취재팀 입력 2017. 1. 17. 11:12 수정 2017. 1. 17.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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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 번 독대했다. 박 대통령의 요구는 점점 더 구체적이고 노골적이 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요구를 들어주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해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별취재팀(주진우·차형석·천관율·김은지·김동인·전혜원·김연희·신한슬 기자)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세 번 독대했다. 2014년 9월15일, 2015년 7월25일, 2016년 2월15일이다. 대통령과 기업인의 독대는 어떤 의미일까. 검찰·특검 등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안종범 전 수석은 독대의 성격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대통령이 기업의 현안이 무엇인지, 정부가 도와줄 일은 없는지, 향후 투자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물어본다. 기업은 각자 현안을 준비해와서 면담 때 참고하고 필요하면 대통령에게 주는 걸로 안다.” 기업의 직통 민원 창구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기업의 일방적인 민원 해결 자리만은 아니라는 사실도 안 전 수석은 털어놓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2014년 9월 대기업 회장들과 연쇄 독대하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 관련 협조를 구했다. 2015년 7월24~25일 이틀에 걸쳐 진행된 독대에서는 문화·체육재단 설립을 말한 걸로 안다고 했다. 이후 대기업은 창조경제혁신센터에 투자했고 미르·K스포츠재단에 기부했다. 독대는 대통령과 기업인이 서로의 필요를 주고받는 ‘거래 자리’인 셈이다.

ⓒ연합뉴스 2015년 5월7일 삼성전자 반도체 평택공장 기공식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왼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환담하고 있다.

단둘이 만난 자리에서 은밀히 이야기를 나눈 후, 박 대통령은 관련 내용을 안 전 수석에게 전달하고 지시했다. 안 전 수석은 이를 자신의 업무수첩에 ‘VIP’ 표시를 한 뒤 적었다. 재벌 총수와 나눈 요지를 기록해놓고 이를 실행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 오고 간 요구사항이 고스란히 증거로 남았다. <시사IN>이 입수한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보면 당시 상황이 복원된다. ‘최순실-박근혜-삼성의 뇌물 커넥션’을 수사하는 검찰·특검 등이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과 이 부회장이 무엇을 주고받았는지도 당시 안 전 수석 업무수첩을 보면 알 수 있다. 2015년 7월25일 박 대통령의 지시를 뜻하는 ‘7-25-15 VIP’ 메모에는 ‘삼성 1. 승마협회 2. 재단 문화/체육 3. 경북(창조경제)센터’라고 쓰여 있다. 삼성물산-제일모직의 인수합병이 성사돼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문제가 마무리된 지 8일 후 마련된 자리였다. ‘승마협회’라고만 적힌 부분의 의미는 수첩에 좀 더 자세히 적어놓았다. ‘7-25-15 VIP-①’ 부분의 삼성이라는 이름 옆에는 ‘1. 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빙상협회 후원, 메달리스트 지원 2. 승마협회 이영욱(이영국의 오기)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 김재열 직계 전무로 교체?’라고 되어 있다.

삼성은 2015년 3월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되었다. 메모 내용은 대한승마협회 부회장직을 맡은 이영국 삼성전자 상무와 대한승마협회 총무이사직을 맡은 권오택 삼성전자 부장을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달라는 구체적인 요구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삼성의 일선 실무자 이름까지 언급하며 이재용 부회장에게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안종범 전 수석이 업무수첩에 남긴 메모(왼쪽)는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 내부 문건(오른쪽)과 같은 내용의 ‘삼성 살생부’를 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독대 전날인 7월24일에도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비슷한 지시를 한다. ‘7-24-15 VIP-③’에는 ‘3. 승마협회 이영국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 임원들 문제, 예산 지원 사업 추진 X, 위 두 사람 문제→교체, 김재열 직계 전무(그림 1)’라고 쓰여 있다. 이영국·권오택 두 사람이 예산 지원과 사업 추진을 하지 않아 문제 있는 임원이므로 바꿔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기에 앞서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과 함께 자신의 지시 사항을 점검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재벌 총수를 만나 삼성전자의 부장급 인사 교체까지 요구한 배경에는 최순실씨가 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은 최씨 측근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문건과도 일치한다. 박 전 전무는 최씨 딸 정유라씨의 승마를 어릴 때부터 도운 인사다.

<시사IN>이 입수한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 내부 문건인 ‘삼성그룹 대한승마협회 지원사 현황’을 보면, 대한승마협회 이영국 부회장과 권오택 총무이사가 “올림픽 지원은 물론 예산 지원도 아직까지 하지 않고 있다”라고 쓰여 있다(그림 2). 승마 지원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정유라씨에 대한 삼성 지원이 미비하다는 속내를 담고 있다. 실제로 승마 훈련비 지원을 받은 코어스포츠 소속 선수는 정유라씨 한 명뿐이었다.



최순실의 요구를 그대로 전달한 대통령

해당 문건은 “이영국, 권오택 두 사람을 그룹에 복귀시키고 새로운 그룹 인사를 파견”하는 것을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 내용과 코어스포츠 내부 문건을 종합하면,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에게 정유라씨 승마 지원 문제를 강하게 요구했고 이를 박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을 만나 직접 해결하는 모양새다. ‘최순실·박근혜 합작 민원’은 실제로 독대가 이뤄진 7월에 관철됐다. 삼성은 박 대통령 지시대로 대한승마협회 임원을 교체했다.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와 김문수 삼성전자 부장이 각각 대한승마협회 부회장과 총무이사로 새롭게 임명됐다.

ⓒ시사IN 자료 2015년 8월26일 독일에서 코어스포츠(비덱스포츠의 전신) 측과 대한승마협회 회장인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가운데)이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위 사진).

삼성의 승마 지원 관련 움직임도 빨라졌다. ‘7·25 독대’ 이틀 후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직접 독일로 출국했다. 같은 날 박근혜 대통령도 안 전 수석에게 삼성 관련 지시를 내린다. 삼성과 엘리엇 대책을 지속적으로 강구하라는 내용이다.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7-27-15 VIP 1. 삼성-엘리어트 대책/ M&A 활성화 문제, 소액주주 권익, Global standard X⇒대책 지속 강구’라고 쓰여 있다. 7월17일 삼성은 헤지펀드 엘리엇 등의 반대에 부딪혀 가까스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인수합병에 성공했지만 여전히 불안 요소가 있었다.

주식매수청구권 문제였다. 주주총회에서 결정된 사안에 반대하는 주주가 회사 쪽에 자신의 주식을 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합병을 결의하면서 주주의 청구권 행사 금액이 1조5000억원이 넘으면 합병을 취소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엘리엇은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예고했다.

또 엘리엇이 각종 소송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당시 언론이 보도했다. 삼성으로서는 9월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최종 합병될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박 대통령은 삼성과 엘리엇이라는 구체적인 기업 이름을 거론하며 안종범 당시 경제수석에게 대책을 강구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정권 차원에서 삼성의 주요 이슈를 신경 썼다는 뜻이다.

ⓒ시사IN 조남진 삼성그룹의 대한승마협회 지원으로 혜택을 본 사람은 정유라씨 한 명뿐이었다(사진 왼쪽).

특검은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국민연금공단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의 진술을 확보했다. 또 보건복지부 공무원들이 청와대 고용복지수석실과 삼성 합병 관련한 논의를 이메일로 주고받은 정황을 확보했다.

검찰·특검 등 사정당국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안종범 전 수석은 검찰과 특검에서 “2015년 7월24~25일 대통령이 기업 회장들과 개별 논의를 하고 저한테 ‘문화·체육 재단 설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는데 기업당 30억 정도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어떻겠느냐’ ‘10개 정도면 300억 규모의 재단이 만들어질 거 같다’는 이야기를 나누었다”라고 진술했다고 한다. 2015년 7월25일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독대 당시에도 출연금 액수와 삼성그룹의 현안이 논의되었을 것이라고 특검은 의심한다. 당시 삼성그룹의 최대 현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건이었다. 또 합병 가결 후로 순환출자 고리 문제가 대두되던 상황이었다.

이 독대 이후 삼성도 최순실씨도 바쁘게 움직인다. 삼성은 마치 미르재단이나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사업 목적, 출연 내용 등에 대해 자료를 받은 것처럼 ‘셀프 기안문’을 만들기도 했다. 최순실씨는 독일 셸프 컴퍼니(팔기 위해 만들어놓은 회사)인 마인제959를 2015년 8월19일 황급히 매입해 코어스포츠라는 컨설팅 회사를 만들었다. 8월26일 삼성전자와 220억원 계약을 체결하기 하루 전날에야 법인 등기를 할 정도였다. 회사를 만들기 전부터 최순실씨는 삼성과의 계약서 초안이 될 문건을 첨삭하기도 했다. 9월14일 삼성전자는 코어스포츠에 첫 입금을 한다. 81만 유로였다(<시사IN> 제486호삼성과 최순실 은밀하고 긴밀했다기사 참조).

앞서 2014년 9월 독대에서도 박 대통령은 이 부회장에게 승마 이야기를 꺼냈다. 승마를 지원해달라는 말이었다. 이후 대한승마협회 회장사였던 한화는 임기를 2년 남기고 중도 사임했다. 2015년 3월 삼성이 회장사가 되었다.

증거·증언 있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쇠’

2016년 2월 독대 전에도 안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 승마가 등장한다. ‘1-12-16 VIP-①’ 부분에도 1순위는 말 관련 부분이었다. ‘1. 승마협회+마사회 1)이재용 부회장 인사-현명관 회장, 말산업본부장(독일)→경고, 승마협회장-현 회장 연결, 승마협회 필요한 것 마사회 지원’이라 쓰여 있고 메모의 마지막에는 박상진이라는 이름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다. 박상진 대한승마협회장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코어스포츠와 계약을 맺은 당사자다.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인 현명관씨가 당시 회장이던 한국마사회도 대한승마협회와 같은 시기인 2015년 6월부터 독일 훈련 지원 계획을 세우는 등 정유라씨 특혜 지원 의혹을 받고 있다.

승마와 관련한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직접 지시한 것이다. 당시 최순실씨와 사이가 틀어진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의 이름도 같이 쓰여 있다. ‘승마협회 박원호(박원오의 오기) 좌지우지 경계.’ 관련 내용을 최순실씨가 불러줬고, 박근혜 대통령 입을 통해 전해진 내용을 안종범 전 수석이 받아 적은 것으로 보인다.

ⓒ시사IN 조남진 안종범 전 수석의 메모에는 장시호씨가 설립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대한 부분도 있다.

박 대통령의 ‘최순실 일가 챙기기’는 정유라씨만으로 한정되지 않았다. ‘7·25 독대’ 당일과 전날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김재열 제일기획 사장의 이름이 계속 나온다. 빙상협회 후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김 사장은 이재용 부회장 동생 이서현씨의 남편이다.

이는 박근혜-이재용 독대 직전인 7월14일 설립된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와 연관이 있다. 빙상·스키와 같은 동계스포츠 분야 영재를 육성한다는 목표로 설립된 이 법인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가 세웠다.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삼성전자한테 2015년 10월부터 2016년 3월까지 16억원을 후원받았다.

검찰과 특검은 ‘움직일 수 없는 증거’인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과 이를 뒷받침하는 안 전 수석 및 삼성 관계자들의 증언을 확보했다. 정작 박근혜 대통령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1월1일 갑작스럽게 신년 기자간담회를 연 박 대통령은 삼성 합병에 대해 적극 해명했다. “헤지펀드 공격을 삼성 같은 대표 기업이 받아서 이런 것(합병)이 무산된다든지, 하여튼 이렇게 되면 이것은 굉장히 국가적으로, 경제적으로 큰 손해라는 그런 생각을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고 여기를 도와주라, 이 회사(삼성)를 도와주라 그렇게 지시한 적은 없다.”

하지만 안종범 전 수석의 업무수첩에는 그동안 박 대통령이 내린 지시가 빼곡히 기록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재용 부회장도, 안 전 수석이 업무수첩에 ‘검은 거래’를 기록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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