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공무원이라서 미안하다"

박원경 기자 2017. 1. 17.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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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공무원임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 그였다.

타 부처 정책 비판도 적극 방어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그가 "공무원이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이 지점에서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무원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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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7시간 답변서'가 알려준 대통령의 사람들


그의 입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지는 몰랐다. 공무원임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한 그였다. 타 부처 정책 비판도 적극 방어하며 언성을 높이기도 했던 그가 “공무원이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꺼냈다. 박근혜 대통령 대리인단의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대한 답변서 때문이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에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졌다는 그는 국정농단 사건 이후 자부심을 잃었다. 누구를 위해 일해 왔는지 후회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공무원들의 노력을 악용한 대통령과 일부 세력 때문이라고 애써 위로했다고 한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해 왔다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대통령의 답변서는 이런 믿음을 산산조각 냈다. 수백 명을 태운 세월호가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그 시간 대통령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숱한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을 해소하겠다고 제출된 답변서. 많은 사람들은 부실한 내용에 화를 냈지만, 그는 오히려 답변서가 보여준 너무 명확한 사실에 좌절했다고 한다. 문고리 3인방을 제외하고는 대통령에게 집(관저)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방문을 열고 들어간 사람이 없었다는 것. 그는 이 지점에서 청와대에 있는 사람들과 같은 공무원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특검 세월호 특검 7시간 수사

● '세월호 7시간 답변서'가 알려준 대통령의 사람들

사실, 정부 부처 중간 간부급인 그가 이 대목에서 미안할 이유는 없다. 그의 부처는 세월호 참사와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 아니 소통해야 하는 사람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정무직 공무원들이다. 그날 방문을 열고 들어가 대통령을 집에서 데려 나왔어야 할 사람은 청와대 실장과 수석들이었다. 그런데 정작 부끄러워해야 하고, 미안해 해야 할 그들이 그날 그리고 그 이후 어떠했는지 우리는 현재 목격하고 있다.

청와대 안보실장을 지낸 김장수 현 주중대사의 발언은 대통령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그렇게 발견하기 힘듭니까” 세월호 7시간 의혹에 불을 지핀 대통령의 이 발언에 대해 “청와대는 재난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다”고 했던 김 대사는 “순수한 궁금증(innocent why)"라는 말로 두둔했다. 그 급박한 상황에 대통령은 아이와 같이 천진무구했다는 거다. 그의 말은 대통령에게 독이 됐을까, 약이 됐을까.

이번 국정농단 사건의 주범은 박근혜 대통령임은 명확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사람들’역시 대통령 못지않은 이번 사건의 주연들이다. 청와대 왕수석은 잘못된 길로 가는 대통령의 충실한 수행꾼이었고, 비서실장은 모르면 안 되는 것까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 이들을 가까이 둔 대통령 탓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에도 서면보고를 받은 - 사실 받았는지 확인되지 않지만 - 대통령은 다른 정책 결정을 할 때는 어땠을까. 대통령에게 제대로 된 정보가 보고되고, 정상적인 의사결정과 정책결정이 이뤄졌다면 세월호 참사는 예방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통령 곁에 제대로 된 사람들이 있었더라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은 제때 구조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어쩌면 우리가 밝혀내야 할 건 세월호 7시간 동안 의혹 뿐만 아니라, 집권 4년 전체일지도 모른다. 

양당 대선후보

● 대선 후보들, 그들 주변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

조기 대선이 전망되자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들이 잇따르고 있다. 출사표를 던진 사람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능력은 반드시 검증 받아야 한다. 검증의 대상에는 그 사람의 업무 방식과 소통 방식이 포함되어야 함을 이번 국정농단 사건은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후보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도 반드시 점검해야 한다. 대통령이 학업에 뜻을 잃었을 때 학업에 대한 의지를 불어 넣어줄 사람이 있는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 하고 ‘순수한 궁금증'을 가지려 할 때 그게 잘못 되었다고 말해줄 사람이 있는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려 할 때 방문을 열고 들어가 데려 나올 사람이 있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과 같은 비극은 또 재연될 수 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하기에는 대통령의 업무는 너무 광범위하고, 중요하다.

“공무원이라서 미안하다”고 했던 그는 “그 때 알았어야 했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수첩 공주라고 불렸을 때, 문고리 3인방을 통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다고 했을 때, TV토론에서 엉뚱한 소리를 했을 때, 어떤 사람 인지 미리 알아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말에 제대로 된 검증을 하지 못한 기자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기자라서 미안하다"는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올해 대선은 달라야 한다. 달라지기 위해선 2012년을, 그리고 지난 4년을 철저히 학습하고 반성해야 한다. 국민들도 예외는 아니다. 

박원경 기자seagull@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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