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진동한 감독 "선수들의 정면돌파 돕는 감독 될 것"

입력 2017. 1. 17.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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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동한 전 울산공고 감독이 저니맨 외인구단 지휘봉을 잡았다.


[헤럴드경제 스포츠팀=정아름 기자] 누구에게나 살면서 잊히지 않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잠수함 투수 계보 1세대에 속하는 진동한(55)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에겐 1986년 10월 19일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그날 광주구장에서는 해태 타이거즈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1차전이 열렸다. 진동한은 선발 양일환과 성준에 이어 삼성의 3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4⅓이닝 3피안타 무실점. 진동한이 마운드를 지키는 동안 삼성 타선이 3-1로 역전에 성공하며 제대로 기세를 탔다. 선동열이 선발로 나서며 가뿐히 1차전을 가져갈 것으로 예상했던 해태 팬들에게 진동한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결국 사건이 터졌다. 한 관중이 7회말 등판을 마치고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진동한의 머리를 소주병으로 내리치고 만 것이다. 당시 진동한은 가벼운 어지러움 정도만 호소했지만 김영덕 삼성 감독은 에이스 김시진을 대신 마운드에 올렸고 이는 악수로 돌아갔다. 당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김시진은 해태에 역전을 허용하며 패전투수가 됐다. 진동한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항상 아쉽다. 당시 그 경기에서 1승을 거뒀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숨기지 못했다.

삼성 잠수함 투수의 시초격인 진동한 감독. [사진=저니맨스포츠 제공]


빛났던 푸른 사자의 잠수함, 지도자로 야구 인생 2막 열다

일명 ‘진동한 소주병 가격 사태’는 지금도 가을야구 대표적인 흑역사로 회자되는 ‘해태버스 방화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1차전 역전패에 이어 홈에서 벌어진 3차전마저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가 극에 치달은 대구 아재들이 해태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질러 전소시켰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진동한의 이름 석 자는 ‘해태버스 방화사건’으로 자주 회자된다. 나이가 좀 있는 프로야구 팬에게 진동한은 낯선 이름이 아니다.

그는 선수생활의 대부분을 삼성에서 보냈다. 경북고-고려대를 거쳐 1984년 프로야구 신인지명회의에서 1차 지명으로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었다. 우완 언더핸드 투수였던 그는 데뷔 첫 해부터 1군 무대에서 활약했다. 커리어하이 시즌은 데뷔 4년차였던 1987년이었다. 28경기에 나서 144이닝을 소화하며 12승 6패 2세이브 평균자책점 2.81로 데뷔 첫 10승 투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다소 부침을 겪었던 그는 쌍방울의 창단 멤버로 합류했으나 예상치 못한 부상에 발목을 잡혔다. 시합 도중 코에 공을 맞으며 밸런스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한번 깨져버린 밸런스는 쉬이 돌아오지 않았고, 팀이 고참 선수들과의 이별을 선언하며 1992년을 끝으로 프로 유니폼을 벗었다.

아마야구 지도자로 야구인생의 제 2막을 열었다. 진동한 감독은 쌍방울 스카우트 팀장을 거쳐 장충고 감독으로 부임하며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행착오도 있었다. 지도자 준비과정을 밟지 않았던 터라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장충고 감독직을 그만두고 일선 고교에서 투수 인스트럭터와 투수 코치로 활동하며 내공을 튼실히 다졌다. 이후 경북 구미 도산초등학교 야구부 감독(2008년~2013년)을 거쳐 지난 3년간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를 이끌며 구창모(NC), 김웅빈(넥센), 김찬(삼성), 박성민(롯데) 등 다수의 프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울산공고와의 계약 기간 만료를 앞두고 저니맨 최익성 대표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독립구단을 맡아달라는 후배의 적극적인 구애에 고심, 또 고심했다. ‘인성과 멘탈을 갖춘 프로야구 선수 육성’이라는 저니맨 외인구단의 창단 모토에 뜻을 같이한 진 감독은 새로운 도전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진동한 외인구단 감독은 선수들에게 끈기 있게 버텨줄 것을 당부했다.


선수들아 부디 ‘오랫동안 유니폼을 입어라’

독립구단은 어찌 보면 선수들에겐 최후의 보루나 다름없다. 한 번 이상의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이 다시금 기회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진동한 감독이 선수들에게 더욱 강조하는 것이 바로 ‘철저한 자기관리’다. 실패를 차고 나오기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지속적으로 꾸준히 버텨내는 것이 중요하다.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정신적으로 한 단계 더 강해져야 한다.”

진동한 감독은 저니맨 외인구단의 감독 부임 후 선결과제로 ‘선수단 파악’과 ‘자신감 심어주기’를 꼽았다. 진 감독은 “아직 선수단에 합류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대화를 통해 많이 소통하며 선수들 각자의 스타일을 지켜보는 시간을 가지겠다”라고 말했다. 획일화된 공장형 교육보다는 선수 각자의 루틴과 개성을 존중하는 그의 스타일답다.

2012년 1월 현재 독립구단은 2015년 창단한 연천 미라클과 올해 3월 창단 예정인 저니맨 외인구단까지 단 2개에 불과하다. 두 팀은 지난 15일 독립야구연맹을 발족, 업무협약을 맺으며 서로에게 좋은 스파링 파트너가 될 준비를 마쳤다. 외인구단은 올해 첫 발을 내딛는 만큼 성적보다는 프로 육성군 및 대학 팀들과의 교류전을 통해 선수들에게 실전 경험을 최대한 많이 쌓게 하는 것이 목표다. 이를 통해 선수들의 프로 진출 발판을 마련하고 독립구단이 활성화되어 실업야구 부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게 진 감독의 바람이다.

“내가 지도자로서 프로 구단으로 가고 그런 걸 떠나서 야구 선배로서 한 명이라도 좋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본인이 프로 선수 생활을 하며 받았던 도움들을 이제는 선수들을 위해 주고 싶다는 진동한 감독. 진 감독을 필두로 꽃길을 찾아 떠나는 저니맨 외인구단의 여정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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