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가 먼저 방청석을 향해 목례한다면?

2017. 1. 16.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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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변호사가 간다

[한겨레]

동네에서 시민들과 호흡하며 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형사재판을 중심으로 법정 안팎에서 느낀 재판의 공정성 문제에 관한 몇가지를 판사님들과 생각해 보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형사재판의 공정성 문제에서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무죄추정원칙에 관한 것입니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개선되고 있기는 하지만, 법원 실무에 있어서 사실상 유죄추정이 형사법정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기소된 사람들 대부분이 유죄판결을 받는 통계적 상황 속에서 “설마 검사가 아무렇게나 기소했겠어?”라는 생각이 판사님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유죄추정의 원칙이 지배하다 보면 형사법정의 재판이 적극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장이 되기보다는 검찰 수사를 사후적으로 추인해주는 소극적 기능에 멈추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법정에서 판사가 유죄의 예단을 거리낌 없이 표명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면 피고인이 공소사실에 관하여 무언가를 다투고 이의를 제기하기 매우 어려운 분위기가 됩니다. 심지어 죄를 인정하더라도 그 동기나 이유를 진술하는데도 당사자는 부담을 갖게 됩니다. 판사님들의 유죄의 심증에 반하는 주장이나 진술을 하였다가 양형에서 불이익을 입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검사의 공소사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에서 보이는 여러 불일치, 모순, 의문에는 애써 눈감으면서, 오히려 피고인의 주장과 증거에는 불신의 전제에서 현미경의 잣대를 들이대며 엄격한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형사사법이 취할 태도가 아니다.” 일전에 박주원 전 안산시장의 수뢰사건에 관하여 유죄를 인정한 2심을 파기하면서 이인복 대법관님이 주심인 사건 판결문에 남긴 설시입니다. 꼭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셔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같은 맥락에서 형사법정에서 판사님들이 검사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시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검사의 소송준비 미비에 대하여는 아무 지적이 없는데, 변호인이나 피고인에게는 준엄한 질타를 하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언젠가는 어느 재경지법 항소부 법정에서 재판을 기다리는데 검사의 피고인신문은 30분 이상 허용하면서 변호인의 피고인신문을 “굳이 하셔야 하나요? 서면으로 내시죠”라고 하여 신문을 읍소한 변호인에게 겨우 3~4문항의 신문을 허용한 다음 재판장과 주심이 연이어 30분 넘게 반대신문하는 경우를 본 적도 있습니다. 이런 형사재판은 그 결론이 설령 정당하다고 해도 피고인은 그 결과를 승복할 수 없게 됩니다. 또한 저처럼 재판을 기다리면서 그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재판에 대해 유쾌하지 못한 인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사법의 신뢰성 문제로 연결됩니다.

법정에 입정하실 때 방청인들에게 목례를 하셨으면 합니다. 판사님이 법정에 들어오면 방청석의 사람들과 소송관계인은 물론이고 법원실무관 등 법정 내 모든 사람이 일어섭니다. 판사님에 대한 존중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일어서 있는 가운데 법정에 들어온 판사님들 중 일부는 방청석을 향해 정중하게 목례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판사님은 그냥 자리에 앉습니다. 정당해산 사건 때 헌법재판소에 갔더니 9명의 재판관님도 방청석에 대한 인사 없이 제각각 자리에 앉더군요. 16회의 심리 도중 단 한차례도 예외는 없었습니다. 진부한 얘기지만 사법권은 주권자인 국민에게서 유래한 것이고 판사는 국민에게서 사법권을 위임받아 대신 그 권한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판사와 국민 간의 관계가 구체적인 법정 현장에서는 판사 대 방청석의 사람의 관계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사실 인사를 먼저 해야 할 쪽은 방청석의 ‘국민’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봉사자인 판사입니다. 그러나 먼저 인사하기는커녕 국민들은 예의를 갖추는데 법관들은 마치 아랫사람을 대하듯 자리에 그냥 앉습니다. 법정에 들어와서 판사가 방청석을 향해 정중하게 목례를 하면 기분이 유쾌해지고 판사에게 신뢰가 갑니다. 그 목례는 “나는 당신들이 주권자인 국민임을 알고 있습니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사소하지만 이런 인사 하나가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고 재판의 승복을 가져오게 합니다. 이광철/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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