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재 칼럼] 반기문 이제 '색깔'을 밝혀라

이충재 입력 2017. 1. 16.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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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지지층과 캠프 면면 보수인사 일색

무리한 외연확대 행보 보수층 반발 자초

노선과 가치 분명히 해 국민 평가받아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주된 지지세력은 보수층이다. 리얼미터의 지난 4일 여론조사를 보면 그는 보수층에서 44.3%, 중도보수층에서 23.7%의 지지를 얻었다. 중도층에서의 지지는 16.3%에 그쳤다. 연령대로는 60대 이상, 지역별로는 대구ㆍ경북(TK)의 지지가 높았다. 스스로가 뭐라고 하든 친여ㆍ보수 성향의 유권자들은 그를 보수세력의 대변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윤곽이 드러난 반기문 캠프 인사들 면면도 보수 일색이다. 전직 외교관과 관료 출신 상당수가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최근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반기문을 지원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는데 여기에 힘이 실리고 있다. 캠프에는 일부 친박계 비주류 인사도 포함돼 있다.

반 전 총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과 밀월 관계를 유지해 왔다. 2015년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 때는 공식ㆍ비공식으로 일곱 차례나 만났다. 대면을 꺼리는 박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자주 만나야 할 만큼 정치적 필요가 컸다고 봐야 한다. 한일 위안부 협상을 주도한 박 대통령을 “올바른 용단에 역사가 높게 평가할 것”이라고 치켜세웠고, 새마을운동에 대해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고 찬양했던 그다. 지난해 친박에서 나온‘반기문 대통령, 친박 총리’를 염두에 둔 개헌안 구상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탄핵 국면으로 박 대통령이 몰락하자 반 전 총장의 태도가 달라졌다. “국가의 리더십에 대한 신뢰가 배신당했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위안부합의에 대해서도 말을 바꿨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파괴한 박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는 것은 자연스럽고 시비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정치지도자라면 입장을 바꾼 경위에 대해서는 납득할 만한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그런 과정은 생략한 채 당장의 유불리만 따지게 되면 기회주의적 처신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반 전 총장의 종잡을 수 없는 행보는 귀국 직후 일정 결정에서도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당초 귀국 후 야권 인사들을 두루 만나고 팽목항과 광주 5ㆍ18묘지를 먼저 방문할 거라는 얘기가 나왔으나 보수층의 항의가 빗발치자 일정을 뒤로 미뤘다. 무리하게 외연을 확대하려다 ‘집토끼’마저 놓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표출된 것이다. 오죽하면 연대 대상으로 거론되는 유승민 의원조차 “반 전 총장이 보수인지 진보인지 나도 정체를 모르겠다”고 했겠는가.

정치권 밖의 인물이 대선주자로 불려 나온 사례는 여러 번 있었다. 기득권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정치 경험이 적을수록 대중의 지지를 받기 유리한 정치 구조의 영향이 컸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정치판을 바꿀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얼마 못 가 대중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졌다. 이회창, 고건이 그랬고 안철수도 ‘새정치’의 알맹이를 내놓지 못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촛불시위에서 나타난 민심은 우리 사회의 전면적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지도자로서 확고한 가치와 철학이 없이는 이런 막중한 과제를 수행할 수 없다. 적어도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노선과 색깔을 드러낸 뒤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반 전 총장은 ‘나를 보수주의자로 규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보수의 명예와 자존심을 훼손하는 행위로 비칠 뿐이다. 보수의 본질은 수구가 아닌 개혁이다. 진정한 보수주의자라면 양극화로 신음하는 공동체의 지속을 위한 확실한 해결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모호한 언사로 정치적 성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온갖 분칠한 수사로 유권자를 현혹한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 국민들은 박 대통령에게서 똑똑히 봤다. 대선에서‘국민 대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약속하며 표를 모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조각이 됐다. 이제 국민은 더 이상 헛된 구호에 속을 만큼 어리석지 않다. 반 전 총장은 자신의 정체부터 분명히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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