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박경리 선생 뵈었지만 '토지' 번역은 상상 못했죠"

한승동 2017. 1. 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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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의 <토지> 20권 전권의 일본어 완역 작업을 해온 일본 도쿄의 쿠온 출판사에서 지난해 11월 첫 결실로 1, 2권 번역본을 출간했다.

1권 번역자는 요시카와 나기, 2권은 <요미우리신문> 문화부 기자 출신인 시미즈 지사코가 했다.

요시카와는 초벌 번역에는 보통 한 권당 1~2개월 걸린다면서 "제1권 476쪽(2권은 517쪽)은 2015년 가을에 시작해서 지난해 봄쯤에 완료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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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지’ 일본어판 번역자 요시카와 나기

2015년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화관을 찾아갔을 때 박경리 동상 앞에서 기념 촬영. 왼쪽부터 편집자 후지이 히사코, 요시카와 나기, 시미즈 지사코. 김승복 쿠온 대표 제공

“읽기 쉽고 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귀찮으면 20권을 다 읽지 않을 테니까요. 경상도 방언을 일본의 특정 지방 방언으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렇게 안 하고 표준말로 번역했습니다. 방언은 읽기 힘들기 때문이지요. 또 경상도만의 향토색은 어차피 한국어로만 느낄 수 있을 테니까요. 번역에서는 방언은 아예 포기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박경리의 <토지> 20권 전권의 일본어 완역 작업을 해온 일본 도쿄의 쿠온 출판사에서 지난해 11월 첫 결실로 1, 2권 번역본을 출간했다. 1권 번역자는 요시카와 나기, 2권은 <요미우리신문> 문화부 기자 출신인 시미즈 지사코가 했다.

전자메일과 전화로 만난 요시카와 나기는 <토지>가 “깊고 심각한 이야기이면서도 신분이 다른 이들 간의 연애와 재산을 노린 모략 등 한류 드라마와 같은 요소도 듬뿍 들어 있는 파란만장한, 재미있는 이야기”라며, “한번 읽기 시작하면 중단할 수 없다. (일본 독자들이) 우선 이야기로 즐겨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7년 예정으로 20권 완역작업 시작

신문기자 출신 지사코와 공동으로

지난해말 쿠온출판사 1·2권 나와

한국어 배우다 한국문학 박사까지

2002년 원주 ‘한일문학 심포’ 참가

“윤씨·서희…강한 여자 이야기 끌려”

원본은 마로니에북스판 20권인데, 일본어판도 20권으로 낸다. 조만간 나올 제3권에 이어 제4권은 요시카와가, 제5권은 시미즈가 번역하고 있다. 7년 예정으로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하되 필요하면 또다른 번역자에게 맡길 예정이다.

“번역은 물론 혼자 하지만 다른 번역자, 편집자도 읽고 의견을 교환하지요. 그런데 용어나 문체, 등장인물의 말투가 번역자마다 다르면 안 되니 모여서 회의도 하고 용어나 표기법 일람표도 만들어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후지이 히사코도 함께 하면서 용어나 문체가 통일감을 잃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요시카와는 초벌 번역에는 보통 한 권당 1~2개월 걸린다면서 “제1권 476쪽(2권은 517쪽)은 2015년 가을에 시작해서 지난해 봄쯤에 완료했다”고 했다. 그 뒤 편집자 의견을 듣고 교정작업을 되풀이했다. <토지>는 “등장인물이 많고 방언이 많아” 번역이 어려운 편이란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의 이름은 일본 독자들에게 생소하고 외우기 힘듭니다. 그런데 인물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인물 일람표를 책갈피(서표) 부록으로 붙였습니다.” “당시의 복장이나 풍속 같은 것을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게 만드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역주 만드는 것도 일이죠.”

요시카와는 박경리를 딱 한번 만나본 적이 있다. 2002년 원주 토지문화관에서 열린 ‘한일 문학심포지엄’ 행사에 스태프의 일원으로 참가했을 때다. “그때 그분한테서 어떤 기개를 느꼈다”는 그는 “그러나 내가 <토지> 번역자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번역은 쿠온의 김승복 대표가 제안했다. 김 대표와는 쿠온을 통해 <도시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박성원), <이만큼 가까이>(정세랑) 같은 작품집, 그리고 신경림 등 한국 시인의 시집을 일본어로 번역 출간해왔을 만큼 인연이 깊다. 쿠온이 도쿄 진보초에서 운영하는 북카페 ‘책거리’에서 편집회의도 하고, 이벤트에 참석하기도 한다.

출간 반응을 묻자 요시카와는 “문학 책이 안 팔리는 시대에 작은 출판사가 대하소설을 간행한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었다”고 했다. <토지> 완역작업은 시작 때부터 지금까지 <마이니치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에서 보도했고 <주간 독서인> <출판뉴스> 등도 기사를 실었다.

오사카 출신인 요시카와는 일본 근대시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마친 뒤, 1997년 인하대 국문과 대학원 박사과정에 유학해 정지용 연구로 200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원래 외국어 공부가 일종의 제 취미예요. 처음에는 그냥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연세대 어학당에 다녔어요. 한국에 대해 좀더 공부하고 싶어서 몇년 뒤 다시 한국에 가서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에서 연구생으로 1년간 유학했는데 전혀 재미가 없었어요. 영어 논문 읽고 미국 쪽 이론 배우는 게 대부분이라 정작 ‘한국’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반인 대상 ‘한국문학학교’에서 시 강좌를 듣던 그는 강사로 온 신경림 시인을 만나 한국문학을 본격적으로 전공하게 됐다. “인하대도 신 선생님이 소개해주셨어요. 한국근대시를 공부했는데 논문도 대체로 그런 내용이 많습니다. 한일문학 비교도 했고요.” 그는 최근 한국에서 출간된 <경성의 다다, 동경의 다다>를 썼고, 일본 현대시를 대표하는 다니카와 ??타로의 시집 <사과에 대한 고집>을 한국어로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그는 <토지>에 대해 “여자 중심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라고 꼽았다. “윤씨 부인도 서희도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라 독한 사람인데, 그런 씩씩한 여자의 모습이 소설의 중심에 있다는 게 신선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농민들의 대화에 속담이 많이 나온다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게 그들의 교양이고 교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과는 다른 한국의 근대 배경 소설이 일본 독자들에게 제대로 수용될 수 있을까? “등장인물의 가치관은 사람마다 크게 다르니 한마디로 말하기가 어렵지만 비슷한 인물들을 일본 근현대에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 독자들에게 1900년대 한국 농민들의 사고방식은 이질적이지만, 그건 옛날 일본 농민들도 마찬가지니까요.”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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