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팜이 키운 '복돼지'.. 100억 물고 왔어요

영광/곽래건 기자 2017. 1. 16.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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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AI(조류인플루엔자) 사태로 3200만마리가 넘는 닭, 오리가 살처분됐다. 정부는 이런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친환경 축산을 유도하는 대책을 마련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16일 악취가 적고 친환경 사육을 하는 ‘깨끗한 축산농장’을 2025년까지 1만 곳으로 늘리는 ‘깨끗한 축산환경 조성 추진대책’을 발표했다. 현재 친환경 사육 농장은 500곳 정도에 불과하다. ‘깨끗한 축산농장’은 어떤 모습일까.

전남 영광군 불갑면의 영농조합법인 ‘애니포크(anypork)’는 미래의 친환경 축산 농장을 미리 엿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애니포크는 1만8000㎡ 넓이의 동물복지형 스마트팜 축사에서 어미 돼지 1200마리를 포함해 돼지 1만5000마리를 키운다. ‘동물복지’라는 친환경 사육 방법과 ‘스마트팜’이라는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적용하고 있다.

◇악취 없는 동물복지 스마트팜

지난 13일 애니포크 사무실에 들어가자 컴퓨터 모니터 10여개가 한쪽 벽면을 꽉 채우고 있었다. 모니터엔 사무실 바로 옆 돼지 축사의 CCTV 영상과 온도, 습도 등의 정보가 가득했다. 김영용(54) 대표가 컴퓨터를 조작하자 ‘1982번 2.7㎏, 3183번 1㎏, 5097번 3.60㎏…’이라는 숫자가 주르륵 떴다. “해당 번호를 가진 돼지가 사료를 오늘 얼마나 먹었는지 표시해주는 겁니다. 돼지의 경우 임신 단계별로 줘야 하는 사료량이 다른데, 돼지마다 줘야 하는 사료량을 미리 입력해놓고 있습니다.”

키우는 돼지가 1만5000마리에 달하지만 법인 직원 25명 중 돼지를 키우는 직원은 13명밖에 안 된다. 스마트팜 기술을 대거 적용해 온도·습도 조절 및 사료 공급 등을 모두 자동화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인건비 등 원가를 20% 이상 줄였다.

김 대표는 유럽의 동물복지 농장을 벤치마킹해 이곳을 만들었다. 축사 안으로 들어가자 생후 한 달이 채 안 된 새끼 돼지들이 쇠줄에 매달려 있는 플라스틱 막대기를 깨물고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뭔가를 계속 무는 습관이 있는 돼지들을 위한 일종의 ‘장난감’이다. 보통의 돼지 농장에서 많이 쓰는 초소형 우리인 ‘스톨’도 거의 쓰지 않고 있었다. 일반 농장에선 돼지들이 서로 물어뜯는 것을 막기 위해 돼지 이빨을 뽑는 경우도 많지만, 이 농장에선 이빨도 뽑지 않는다.

축사에선 돼지 축사에서 으레 나는 냄새도 전혀 없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사료를 묽은 죽 형태로 줘서 소화율이 올라가 소화가 덜 된 냄새 나는 분변이 덜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발생한 분변도 미생물을 섞은 물로 씻어내 냄새를 없앤다.

스마트팜으로 원가는 줄고 동물복지로 생산량은 늘었다. 돼지들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덜 받다 보니 폐사율과 질병 발생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농장의 어미 돼지 한 마리당 연간 출하 두수는 20마리가 넘는다. 전체 양돈 농가 평균은 16마리 수준이다. 육질도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농장에선 백화점, 마트 등에 매년 돼지 2만5000만마리를 납품하고 있다. 연간 매출만 100억원에 달한다.

◇유럽 동물복지 농장 30곳 벤치마킹

김 대표는 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충북 청주 등에서 네슬레 등 외국계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1994년 “회사에선 결국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며 농사를 짓겠다고 결심했다. ‘귀농’이라는 말조차 잘 쓰이지 않던 때였다. 부모님은 “남들은 그 좋다는 직장 들어가려고 난리인데 시골에 돌아오겠다니 미쳤느냐”며 난리가 났다.

김 대표는 직장생활 하며 모아놨던 돈과 퇴직금을 털어 전남 무안에 헌 축사를 사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젖소는 공급 과잉이라 2년 만에 망했다. 철저한 사전 검토 없이 무작정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김 대표는 이후 양파 농사 등을 짓다 2000년 돼지 사육에 도전했다. 이후 돼지 3000~4500마리를 안정적으로 키웠지만, 이번엔 FTA로 돼지 수입이 본격화되는 것이 문제였다. 김 대표는 “농장을 처분해야 하는지, 아니면 규모화해야 하는지, 규모화하면 어떻게 할 것인지를 고심하다 지금의 농장을 생각해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선진 축산을 직접 보겠다는 생각에 2010년부터 2년간 덴마크와 오스트리아 등 유럽의 30개 이상 농장을 견학했다. 처음 젖소를 키울 땐 주먹구구식이었지만 이번엔 철저하게 준비한 것이다. 김씨가 유럽에서 얻은 교훈은 동물복지를 염두에 둬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유럽은 동물복지 기준이 계속 강화되고 있었다. 김씨는 “생산 원가를 낮추고 경쟁력을 높이려면 친환경 고부가가치 돈사가 필요하다고 봤다”며 “앞으로도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먹는 동물이 어떻게 키워졌는지 점점 관심을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축산 하면 냄새 나고 더럽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아 속상하다. 그렇지 않은 농장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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