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정국 돌입한 한국에도 가짜 뉴스 밀려온다

김경민 기자 입력 2017. 1. 16. 16:52 수정 2017. 1. 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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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인물 코멘트 달아 실제 뉴스처럼 유통.. 대선 정국 새로운 변수 떠올라

“안토니오 구테헤스 현 유엔 사무총장이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대통령 선거 도전은 제1차 유엔총회 결의안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마치 외신 보도처럼 보이는 이 뉴스는 ‘진짜 뉴스’가 아니다. 실제로는 구테헤스 총장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반대한다는 내용은 확인된 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거조차 사실관계가 희박하다. 기사에서 언급된 ‘제1차 유엔총회 결의안’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 

유럽 한인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신문에서 최초로 보도한 것으로 알려진 해당 ‘가짜 뉴스’는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빠르게 퍼졌다. 급기야 대선주자 중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라디오 방송에서 이를 인용해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를 비판하기까지 했다. 안 지사 측은 사실에 기초한 발언이 아니었다고 하루도 안 돼 발언을 정정했지만 이미 관련 기사가 우후죽순으로 퍼져나간 뒤였다.

ⓒ pixabay

안희정 충남지사 가짜 뉴스 인용했다가 서둘러 정정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결론이 조기에 판가름날 것으로 전망되며 조기대선정국으로 돌입한 한국사회에 ‘가짜 뉴스’ 경보가 떴다. 가짜 뉴스란 루머에 가까운 거짓 정보를 담고 있는 기사체의 정보를 말한다. 뉴스 보도 형식을 그대로 따라해 겉보기엔 영락없는 ‘진짜 뉴스’다. SNS나 온라인 상에선 앞서 언급한 반기문 전 총장 관련 가짜뉴스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전망과 촛불집회에 대한 전문가들의 비판 등의 내용을 담은 가짜 뉴스들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이들 가짜 뉴스 가운덴 ‘속보’와 같은 문구를 달고 확산되는 것도 많다. 이런 뉴스들은 대게 근거가 없는 것이며, 일부 기사는 아예 가공의 인물의 코멘트를 담고 있기도 했다. 유명 정치학자들이 촛불 집회를 비판했다는 가짜 뉴스에 언급된 ‘영국 정치학자 아르토리아 펜드래건’과 ‘일본 정치학자 히키가야 하치만’은 실존 인물이 아니며, 해외에서 이 같은 주장이 제기된 적도 없었던 걸로 밝혀졌다.

가짜 뉴스는 진짜 기사와 흡사한 방식으로 확산된다. 특정 커뮤니티 사이트나 가짜 뉴스를 위해 만들어진 숙주사이트를 기반으로 가짜 뉴스가 생산되고, 페이스북과 카카오톡 등 링크와 공유를 통해 확산되는 식이다. 특히 공유와 확산이 특징인 페이스북 사용이 활발해진 SNS 환경이 이 같은 유통 구조를 용이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 뉴스 수용자는 가짜 뉴스와 진짜 뉴스를 구별하기에 앞서 ‘좋아요’를 누르기 때문이다. 미국 엘론 대학교 조나단 올브라이트 교수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가짜 뉴스를 생산하는 온라인 생태계’에 대한 연구 결과 보고서에서  “주도면밀하게 인터넷의 약점을 파고들어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집단’이 존재한다”며 “페이스북은 (가짜뉴스의) 효과적인 확성기 역할을 한다. 페이스북은 바이러스가 퍼지는 숙주였다”고 주장한 바 있다. 

가짜 뉴스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가 내포하는 가장 큰 문제점으로 가짜 뉴스가 올바른 상황 인식을 흐리고 허위 정보로 여론을 편향되게 끌고갈 우려가 있다는 점을 꼽는다.

 

“페이스북은 가짜 뉴스 바이러스의 최대 숙주” 

지난해 미국 대선에서 가짜뉴스가 대선 판도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오는 것이다.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워싱턴D.C.의 한 피자 가게 뒷방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는 일명 ‘피자 게이트’는 결국 가짜 뉴스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대선 과정에서 SNS 상엔 ‘피자 게이트’ 뿐만 아니라 ‘위키리크스, 클린턴이 이슬람 국가(IS)에 무기 판매한 사실 확인’이나 ‘프란치스코 교황, 도널드 트럼프 지지’, ‘클린턴, 클리블랜드 유세 대가로 가수들에게 6200만 달러 줬다’, ‘클린턴이 올해 9월11일 숨졌으며 CG와 대역 배우 여러 명이 클린턴 대신 선거운동을 한다’ 등 사실과 관계없는 기사가 무수히 쏟아졌다. 대부분 힐러리에게 불리한 내용이었다. 가짜 뉴스 덕분에 결국 힐러리가 패배한 것인지 사실관계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유명 가짜 뉴스 제작자인 폴 호너는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만든 사이트에는 늘 트럼프 지지자들이 찾아왔다”며 “트럼프는 자신 덕분에 백악관에 간 것”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에 따르면 지난해 8월부터 미 대선일인 11월8일 사이 가장 많이 언급된 진짜 뉴스 20건이 페이스북에서 이뤄진 공유·의견 표명·댓글 달기는 736만7000회였다. 같은 기준의 가짜뉴스는 그보다 130만회 이상 많은 870만1000회였다. 다소 설득력 없어 보이는 가짜뉴스는 실제 뉴스보다 더욱 파급력이 센 셈이다. 

가짜 뉴스가 이토록 ‘판을 치게’ 된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 지금의 SNS 환경이 가짜 뉴스의 유통에 최적화돼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만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짜 뉴스 유통의 고리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필터버블’ 효과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의 인터넷 정보제공자가 각각의 사용자에 맞춰 개인화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사용자가 이미 필터링된 정보만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평소에 관심이 없던 콘텐츠에 대해선 그 진위 여부를 판단할 평소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더욱 가짜 뉴스의 덫에 걸려들기 쉽다는 것이다. 상품에 대한 호평 후기가 많은 걸 확인하고 구매를 결정하는 것처럼, 수많은 공유를 보고 대선후보를 선택하는 식이 익숙해지는 식이다.

현재 국내에서 가짜뉴스에 대한 조치는 제도적으로 쉽지 않다. 무엇보다 가짜 뉴스는 언론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언론에 대한 규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는 “인터넷상에 개인이 개인의 의견을 보도형식으로 올리면 허위여부와 상관없이 언론보도가 아니기 때문에 중재위 조정신청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언론중재위 조정신청 대상도 아니어서 문제 심각성

가짜 뉴스로 인한 명예훼손 신고는 할 수 있다. 이 경우 망사업자를 통해 URL 차단 요청을 할 수 있으며, 해외사업자의 경우 명예훼손 심의결과를 통보해 자율 규제 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 문제는 시간이다. SNS를 타고 가짜 뉴스가 확산되는 시간은 순식간인데 비해 차단 조치를 하는 시간은 길다. 이 사이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짓 정보는 일파만파 퍼져나간다.

아직 한국의 가짜 뉴스 문제는 해외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에서도 지난 대선에서 처음으로 이 논의가 본격화됐듯 가짜 뉴스는 한국의 대선 정국에 ‘새롭게 나타난 변수’다. 가짜 뉴스의 확산은 편파적인 정보 인식은 물론 언론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 나아가 사회 전반의 신뢰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가짜뉴스가 생각이 서로 다른 집단을 극단주의로 몰아가 집단 간 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선거 후보자 비방과 허위사실 유포를 감시하는 활동을 시작한 조성환 바른기회연구소장은 “후보자 비방은 선거를 자칫 과열 양상으로 치닫게 할 우려가 있다”며 “무엇보다 사용자의 적극적인 신고와 자정 활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kim@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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