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형사처벌로 끝일까

입력 2017. 1. 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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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①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효 판결 가능성

②옛 삼성물산 주주 및 국민연금의 손배소 가능성

③총수 일가 3조원 수익 몰수·추징 가능성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어떤 식으로든 형사처벌된다면 그 파장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몇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첫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무효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다. 옛 삼성물산 주주인 일성신약 등은 삼성물산을 상대로 합병 무효소송을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재판장 함종식)는 지난해 12월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었으나 3월20일 다시 변론기일을 잡았다. 재판부는 특별검사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나서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청탁하며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 쪽에 뇌물을 건넸다는 혐의가 명확해지면, 합병 무효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된다. 그동안 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이재용 등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늘리기 위해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산정했고 국민연금공단이 이에 찬성하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이 수상하다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최근에야 전모가 드러났다.

합병비율·절차 모두 ‘불공정’

지난 1월11일 세종시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블랙리스트’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들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국민연금은 옛 삼성물산의 최대 단일 주주(2015년 5월 기준 9.54%)였고, 옛 제일모직(5.04%)보다 삼성물산 지분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삼성물산 주주에게 불리한 합병비율(1 대 0.35)을 받아들이고 합병 찬성 표를 던졌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소액주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합병안은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찬성 69.53%로 가결됐다. 국민연금 표(2015년 7월 기준 11.21%)가 없었다면 부결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가결이었다.

일성신약 등 소액주주들은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적용했기 때문에 합병은 무효라고 주장한다. 법원도 합병비율에 대해서는 이들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5월 서울고법 민사35부(재판장 윤종구)는 일성신약이 삼성물산을 상대로 ‘주식매수청구권’(자신이 보유한 주식을 사달라고 청구할 권리)을 행사하면서 주식 매수 적정 가격을 결정해달라고 낸 사건에서 적정 합병비율을 1 대 0.4로 결정했다.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비율을 정한 합병 계약은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공평의 원칙 등에 비추어 무효이고, 따라서 합병비율이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합병할 각 회사의 주주 등은 상법 제529조에 의해 합병의 무효를 구할 수 있다.”(2008년 대법원)

삼성은 자본시장법에서 정한 시장주가에 따라 합병비율을 정했다고 반박한다. 합병이 결정된 2015년 5월은 옛 삼성물산 주가가 바닥을 찍은 반면, 이재용 등 삼성 총수 일가가 42.2% 지분을 가진 옛 제일모직의 주가는 2014년 12월 상장 이후 1주당 5만5천원에서 15만6천원으로 수직 상승하던 시점이다. 합병비율 1 대 0.35로 두 회사를 합병해, 총수 일가는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30.42%를 확보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4.1%)을 가진 통합 삼성물산의 지분 17.23%를 챙김으로써,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누가 보더라도 총수 일가에 유리하게 의도된 합병이었다.

쟁점은 합병을 무효로 할 만큼 ‘현저히 불공정한 합병비율’이냐를 둘러싸고 형성됐다. 법원이 합병비율을 이유로 합병을 무효로 판단한 예는 그리 많지 않다. 이 때문에 법조계 안팎에선 서울중앙지법에서 진행 중인 합병 무효 소송은 삼성 쪽에 유리하리라는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특별검사 수사 이후 판세가 달라졌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삼성이 ‘삼각편대’로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해 합병에 찬성하게 만든 정황이 하나둘 드러났기 때문이다. 베일에 가려 있던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 과정도 공개됐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지난해 7월10일 연 투자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7월7일 이재용 부회장을 만난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의 삼성 편들기가 드러난다. “우리가 산출한 양사의 적정 가치에 기초해 합병비율을 구해보면 1 대 0.46으로 삼성이 제시한 합병비율은 삼성물산에 다소 불리하다” “두 회사의 합병 시너지 효과를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니냐” “삼성이 내놓은 비율을 적용하면 (1 대 0.46을 적용했을 때보다) 3468억원 손해” 등의 우려가 나왔지만, 홍 본부장은 표결을 강행해 참석자 12명 중 8명의 찬성으로 ‘합병 찬성’을 결정했다. 투자위원회가 결정하기 곤란한 안건은 외부 인사들로 구성된 주식 의결권행사 전문위원회에 결정을 요청할 수 있다는 지침은 논의조차 되지 않았다.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것 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 국가를 대신하는 법무부가 이재용 부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방법이다.



이에 앞서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이 의결권행사 전문위원들한테 전화를 걸어 ‘합병 찬성’을 종용했다는 의혹도 사실로 확인됐다. 국민연금 등에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로 구속 기소된 문형표 전 장관은 퇴임 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으로 간다는 약속을 청와대로부터 받았다고 한다.

삼성의 전방위적 움직임도 드러났다. 윤석근 일성신약 회장은 지난해 12월6일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국민연금이 찬성 결정을 내린 7월10일 전인) 7월9일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과 김신 삼성물산 사장을 만났을 때 ‘국민연금은 다 됐습니다’ ‘찬성으로 가는 겁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사장도 “한화그룹 사장이 불러 삼성에 부정적인 보고서는 쓰지 말라고 얘기했고, 삼성그룹의 지인 네 사람이 ‘한화증권 의결권을 위임해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고 밝혔다. 한화증권은 당시 유일하게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는 보고서를 냈다.

삼성-청와대-정부 ‘삼각 로비’

삼성그룹 경영진이 탈법적 방식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세습과 총수 일가의 이익을 위해 발 벗고 뛰었고, 그 과정에서 합병이 불공정하고 부당한 방식으로 진행됐다는 점이 낱낱이 밝혀진 셈이다. 이는 이른바 ‘터널링’(tunneling)에 해당한다. 터널을 파듯이 은밀하게 총수 일가에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다른 소액주주들에게서 총수 일가로 ‘부의 이전’이 되도록 한 것이다.

여기서 쟁점이 확대된다. 미국 델라웨어주 대법원은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 상충이 문제되는 합병(M&A)에서는 거래의 타이밍과 거래 구조 설계, 거래 개시 경위까지 모두 ‘절차적 공정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국내 법원이 합병 무효 요건으로 중시하는 ‘현저하게 불공정한 합병비율’뿐만 아니라, 합병의 절차적 공정성도 합병 무효 사유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의결권 결정에 개입했고, 이 과정에서 삼성과 유착이 있었다면 불공정한 절차에 해당한다. 물론 법원이 합병 무효 판결 이후 벌어질 혼란을 더 중요하게 판단할 가능성도 있다.

한 변호사는 “객관적으로 합병비율을 검토해서 결정한 게 아니라 삼성과 정부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짜놓은 합병 찬성 시나리오에 맞춰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했다면 굉장히 불공정했다는 게 분명해진다. 합병 무효 판결이 내려지면 통합 삼성물산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으로 다시 분할하면 된다. 엄청난 혼란이 오지는 않을 거다. 상법상 기업 분할을 시키지는 않되, 옛 삼성물산 주주들한테 손해배상하도록 판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재용 부회장의 책임은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우선 이재용→삼성 임원→국민연금공단(또는 이재용→박근혜(최순실)→안종범·문형표·김진수→국민연금공단)으로 이어지는 ‘지시’ 흐름이 입증돼야 한다. 상법 제401조는 “이사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무를 게을리한 때 손해배상할 책임이 있다” “회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이사에게 업무 집행을 지시한 자는 ‘이사’로 보아 같은 책임을 진다”고 규정한다. 이재용 부회장과 미래전략실 임원들이 옛 삼성물산의 등기이사는 아니지만, 불공정한 지시를 내렸다면 옛 삼성물산 경영진과 마찬가지로 손해배상 등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국민연금은 수천억원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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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배 책임을 물으려면, 합병으로 인해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가 얼마큼 이익을 얻었는지가 나와야 한다. 위 표에서 보듯, 총수 일가의 이득은 최소 7445억원에서 최대 3조718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홍순탁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정책위원(회계사)이 추정한 수치다. 삼성 쪽 합병비율(1 대 0.35)이 아니라, 국민연금공단 내부적으로 합당하다고 판단한 합병비율(1 대 0.46),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제시한 합병비율(1 대 1.21)을 각각 적용한 결과다.

삼성 총수 일가는 삼성물산 지분율 30.42%를 확보했는데, 1 대 1 합병비율을 적용하면 지분율이 10% 가까이 낮아진다. 삼성물산 주식이 재상장된 2015년 9월15일 삼성물산의 시가총액 30조원을 기준으로 지분율을 곱해 이득을 계산했다. 이재용 일가가 얻은 이익이 커지는 만큼, 국민연금의 손실은 커진다. 국민연금의 손실액은 최소 1233억원에서 최대 6157억원으로 추산된다.

옛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배상소송을 내는 것 외에 국민연금 가입자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 카드가 나올 수도 있다. 국민연금을 관할하는 보건복지부와 국가를 대신하는 법무부가 이재용 부회장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는 방법이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과 참여연대는 국민 1만2천 명의 서명을 모아 국민연금 손해배상소송을 내달라는 국민청원서를 지난해 12월 냈다.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 문형표, 홍완선, 안종범을 상대로 국민연금이 입은 손실 5천억원 상당을 손해배상하라는 내용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변호사)은 “부정한 청탁과 뇌물수수라는 거래관계를 통한 불법행위로 국민연금기금에 손해를 끼친 점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이 성립한다. 이재용이 국민연금기금에 끼친 손해에 대해 국민연금이 가입자를 대신해 청구권을 대리 행사하라는 취지”라고 말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이른바 ‘이재용 배상법’을 대표발의했다. 국민연금법을 개정해 누구든지 ‘국민의 노후 자산’인 국민연금 관리·운용에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에게 국민연금기금 손해액 규모에 따라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뼈대다. 부정한 영향력을 행사해 얻은 이익은 몰수·추징할 수도 있게 했다.

“이재용 이익 3조원 몰수해야”

이재용 부회장이 얻은 이익이 ‘범죄수익’에 해당하므로 몰수·추징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중대범죄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에 의한 재산을 몰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공여(형법 제133조) 또는 제3자 뇌물제공(제130조) 혐의로 처벌받는다면 중대범죄에 해당한다.

참여연대는 “이재용 부회장 등이 범죄수익에 해당하는 3조원의 이익을 얻은 반면, 국민 2천만 명 이상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수천억원의 손실을, 옛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들도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뇌물공여 행위라는 중대범죄에 의한 재산은 전액 몰수 또는 추징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지난 1월3일 특검에 제출했다. 이찬진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관행적으로 뇌물을 받은 사람의 수수액만 몰수해왔다. 정경유착이 반복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부터라도 경제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는 뇌물 제공자에 대해서도 범죄수익을 반드시 추적해 몰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예랑 기자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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