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 중 죽은 신부, 범인은 신랑?

김세정 2017. 1. 1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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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유망한 인도계 영국인 사업가가 미모의 인도계 스웨덴인 여성과 결혼했다. 호사스러운 결혼식을 마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신혼여행을 갔던 이들은 무장 강도를 만났다. 그런데 여기에 음모가 있었다.

형사사건 가운데 살인은 가장 극단적이다. 살인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그 사회의 갈등이나 균열이 살인 사건을 통해 드러난다. 런던에 머물고 있는 김세정 변호사가 영국 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살인 사건을 다룬다. 법과 정의에 대한 성찰도 담을 예정이다.

ⓒAP Photo 인도계 영국인 사업가 시리엔 드와니(왼쪽)와 인도계 스웨덴인 애니 힌도차의 결혼은 겉으로 보기에 완벽한 듯했다.

소수민족은 대개 사회 주류와는 약간 다른 특징을 가지게 된다. 영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는 인도인들은 교육열이 높고 상당수가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지만 보수적이고 가족중심적인 경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결혼과 관련한 문제에서는 더 그러한 듯한데, 이런 모습은 우리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다.

인도계 집안인 힌도차 가족에게 시리엔 드와니는 막내딸 애니의 신랑감으로 꽤 괜찮게 보였을 것이다. 인도계 영국인인 드와니는 서른을 갓 넘겼지만 백만장자 사업가였고 준수한 외모에 태도도 나쁘지 않았다. 우간다에 살던 힌도차 집안은 악명 높은 독재자 이디 아민 시절 스웨덴으로 망명해 정착했다. 애니 힌도차는 스웨덴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 후 엔지니어로 일했다. 애니는 낭만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고 언젠가는 백마를 탄 왕자가 나타날 거라고 믿었는데, 소개로 만난 시리엔은 꽃과 선물을 아끼지 않고 구애를 해왔다. 애니는 자기 아버지에게 시리엔을 많이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랑하지는 않는다며 그와의 결혼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했다. 시리엔 드와니는 비행기를 전세 내 그녀를 태우고 파리로 날아가 프러포즈를 했다. 결국 애니는 결혼을 승낙했다. 총각파티는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다. 둘은 만난 지 1년 반 만에 인도 뭄바이 외곽의 리조트에서 매우 호화스러운 결혼식을 올렸다. 경비만 20만 파운드(약 3억원)가 든 성대한 인도식 결혼식이었다.

둘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호사스러운 신혼여행을 떠났다. 여행 7일째인 2010년 11월13일, 이들은 택시를 대절해 케이프타운 관광에 나섰는데, 도심을 벗어나자마자 곧 무장한 흑인들이 나타나 차를 덮쳤다. 운전사를 먼저 쫓아낸 강도들은 곧이어 드와니도 금품을 빼앗고 차 밖으로 몰아냈다. 다음 날 아침 7시경 28세의 신부는 택시 뒷자리에서 목에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지니고 있던 귀중품은 사라진 상태였지만 성폭행 흔적은 없었다. 결혼한 지 2주일 만의 일이었다.

애니의 아버지는 급히 남아공으로 날아갔다. 딸의 시체를 보겠다는 아버지에게 사위는 “피가 완전히 빠져나갔기 때문에 액체를 좀 채워넣어 보기 좋게 해야 할 거”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사위의 무신경한 말에 충격을 받았다. 사위가 오히려 컴퓨터와 전화기에 더 신경을 쓰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시리엔 드와니는 끝내 애니의 시체를 보러 가지 않았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나중에 사위가 그 시간에 이발을 하고 새 양복을 샀다는 것을 알았다. 런던에서 장례를 치르면서 애니는 철저히 드와니 집안의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장례식은 드와니 집안이 주도했고, 장례식 내내 배제된 힌도차 집안 사람들은 참석자들을 위해 열린 떠들썩한 피자 파티에 특히 분노했다. 화장된 애니 힌도차의 재는 6개월이 지나서야 그녀가 자라난 스웨덴 집 근처의 호수에 뿌려졌다.

어쨌거나 이 사건은 전형적인 강도 살인 사건으로 보였다. 불운한 신랑은 세상의 동정을 한 몸에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잡힌 범인들이 이 사건이 청부살인이라고 자백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범인들은 새신랑에게 1만5000랜드(당시 환율로 약 200만원)를 받고 납치극을 벌인 후 새색시를 죽이기로 계약했다고 주장했다. 운전사 역시 일당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범인들은 유죄를 인정하고 증언을 하는 대가로 감형을 약속받았다. 시리엔 드와니는 납치·살인·강도 등을 포함한 다섯 가지 혐의로 기소되었다. 남아공 사법 당국은 그를 인도해달라고 영국에 요구했으나 드와니 측은 그가 사건 이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및 우울증을 앓고 있어서 송환과 재판 등의 절차를 감당할 정신 상태가 아님을 주장하며 강력히 맞섰다. 드와니를 송환하기 위한 법적 다툼은 4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결국 드와니가 남아공으로 송환되어 재판이 시작된 것은 2014년 10월6일이 되어서였다.

재판에서 남성 성매매자 레오폴드 라이서의 증언이 검찰 측 증거로 제출되었다. 일명 ‘독일인 주인님’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그는 드와니와 2009년 9월에서 2010년 4월 사이에 세 번 만났다고 했다. 드와니가 애니와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던 시기였다. 라이서는 드와니와 함께 약물을 사용했고, 롤플레이와 사도마조히즘적 성행위를 했다고 증언했다. 라이서에 따르면 드와니는 결혼에 대한 좌절감을 토로했는데 결혼할 여자가 착하고 사랑스럽지만 자기는 남자에게 더 끌린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결혼을 하지 않았다가는 가족에게 버림받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라이서는 드와니를 좋아했다. 스스로 정한 규칙을 어기고 드와니와 ‘긴 밤’을 보내기도 했다. 드와니는 라이서에게 예전 남자의 이야기와, 당시 가족에게 사실을 털어놓을 생각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어떻게든 이 결혼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찾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EPA 시리엔 드와니의 청부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이 나오자 애니 힌도차의 유가족이 슬퍼하고 있다.

한편 애니의 사촌은 둘이 결혼에 이르기까지 문제가 많았으며, 애니가 호사스러운 결혼식을 마치고 인도에서 돌아오자마자 이혼 이야기를 꺼냈다고 했다. 또한 애니가 신혼여행 중에도 남편을 싫어했다고, 그와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지 않아 했다고 증언했다. 시리엔 드와니가 가족에게 성 정체성을 밝히지 못했듯이 애니 힌도차 역시 약혼자와의 문제점들을 부모에게는 차마 말하지 못했다.

청부살인 증언에도 신랑은 무죄

하지만 재판 결과는 무죄였다. 범인들의 증언은 서로 모순되었고 거듭 번복되었다. 그것만으로는 살인에 대한 유죄 판단을 내리기 부족했다. 판사는 이들의 증언이 ‘어디까지가 거짓말이고 어디서부터 사실이 시작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라며 이를 배척했다. 시리엔 드와니는 영국으로 돌아왔고, 사람들이 거짓말쟁이들의 말에 의지하여 마녀사냥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 대한 대중의 악의적인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하철에 앉아 있는 그의 사진은 ‘매우 지친 시리엔 드와니의 모습’ 같은 표제를 달고 신문 지면을 장식한다.

애니의 아버지 비노드 힌도차는 시리엔 드와니가 동성애자(드와니 본인은 양성애자라고 주장했지만)라는 것을 일찍 알아채지 못해서 그 결혼을 허락했다고 심하게 자책했다. 애니는 드와니가 결혼 전에는 성관계를 가지지 않겠다고 했다며 아버지에게 혹시 자기가 못생겼냐고 묻기도 했다는데, 그런 기억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는 듯하다. 그는 사건과 관련하여 신문에 회고록을 쓰기도 했다. 레오폴드 라이서는 증언 이후 성매매 일을 접었다. 경제적 타격과 더불어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다가 지난해 9월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은 따지고 보면 시리엔 드와니와 애니 힌도차의 잘못된 결혼에서 발생한 것이다. 시리엔 드와니가 커밍아웃할 수 있었거나 애니 힌도차가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솔직히 말할 수 있었다면 애초에 생기지 않았을 비극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행복한 듯이 웃으며 결혼을 했다. 비록 그들이 자라난 곳은 동성 간의 결혼마저도 허용되는 영국과 스웨덴이지만 말이다.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webmast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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