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23번의 스파이크.. 꽃사슴, 이젠 꽃사자

용인/이순흥 기자 2017. 1. 16. 03: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女배구 득점·백어택·서브 통산 1위 황연주]
V리그 원년 신인왕서 '타이틀 여왕' 화려한 성장
12년 연속 올스타, 400서브는 남자 1위의 약 2배
무릎 고질병에도 "귀찮음 극복하자" 꾸준한 훈련
"아직 인생 반쪽 못만나.. 그래도 외롭지 않아요"

'때려야' 사는 여자가 있다. 지름 20㎝, 무게 270g의 배구공에 온 힘을 실어 상대 코트에 꽂을 때마다 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핀다.

12년 동안 9923번. 프로배구 V리그 남녀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스파이크를 때린 '파괴자'는 황연주(31·현대건설)다. 데뷔 초 앳된 얼굴로 '꽃사슴'이란 별명이 붙었던 그는 코트에선 그 누구보다 매서운 라이트 공격수로 여자 배구 무대를 정복했다. 지난 13일 용인 현대건설 훈련장에서 만난 그에게 '예전과 비교해 외모가 변한 게 없다'며 말을 건네자 손사래를 쳤다. "그런 말씀 마세요. 예전엔 로션도 안 썼는데 이젠 피부 관리하려고 아이 크림도 빼먹지 않고 바르는걸요(웃음)."

V리그가 출범하던 해(2005년)에 신인상을 거머쥐었던 황연주는 이제 '기록의 여왕'이 됐다. 그는 14일 GS칼텍스전에서 서브에이스 1개를 추가하며 역대 1호 '400서브' 고지를 밟았다. 2위 양효진(214점)은 물론 남자부 통산 1위 문성민(223점)과도 두 배 가까이 차이 나는 압도적 기록이다. 통산 득점과 백어택(후위 공격) 선두도 모두 황연주의 타이틀이다. 여자 공격수치고는 작은 키(177㎝)지만 통산 블로킹도 405개(전체 7위)나 잡았다. 12시즌 연속 올스타전에 진출한 것도 여자 선수로선 황연주가 유일하다. 그가 코트에 나설 때마다 V리그의 새 길이 열리는 셈이다.

황연주는 '귀찮음을 극복한 것'이 꾸준함의 비결이라고 했다. 웨이트 훈련은 선수들 사이에서 가장 귀찮고 짜증 나는 훈련으로 통한다. 혼자 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적당히 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황연주는 "나도 여잔데 팔에 울퉁불퉁 근육이 생기는 게 좋진 않다. 그래도 다른 선수들보다 1㎏이라도 더 들기 위해 노력한다"며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내가 약속한 운동량을 소화하면 기량을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스쿼트 무게 90㎏을 든다는 그는 "20대 후배들에게 힘으로 밀리지 않을 자신 있다"고 말했다.

실력만큼 빼어난 외모를 가진 황연주는 10년 넘게 여자 배구 정상급 '스타'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탓에 예전엔 남들에게 주목받는 것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배구는 잘하고 싶은데 인기 많은 건 부담스럽더라고요. 요즘엔 달라졌어요. 실력이든 외모든 저를 알릴 수만 있다면 좋아요." 두 가지 중 어떤 걸로 칭찬받는 게 더 좋냐고 묻자 1초도 안 돼서 "당연히 배구 잘한다는 소리가 기분 좋다"고 답했다.

밥 먹듯 점프를 하는 포지션 때문에 무릎 부상이란 '고질병'을 달고 산다. 2008년엔 양쪽 무릎을 동시에 수술하면서 2주 동안 걷지 못했다. 당시 대표팀 차출과 관련해 마찰이 생기며 여론의 비난도 받았다. 어려움을 겪으며 황연주는 자신만의 '주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거죠. 그래서 지난 일에 얽매이기보다 앞으로 뭘 할지를 더 고민해요. 주변 말만 신경 썼다면 벌써 은퇴하고도 남았을 거예요."

배구에 빠져 사느라 아직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는 못 만났다. "결혼은 하고 싶은데 아직 인연을 못 찾았죠. 소개팅은 어색할 것 같아서 아직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적어도 2년은 연애하고 결혼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제 나이가…." 중·고교,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김연경(29)과 만나도 연애 이야기가 대화 주제 '1번'이다.

황연주는 "그렇다고 외롭지는 않다"고 말했다. 매주 동료들과 한두 번 영화관에 가고 맛집을 찾아다니는 게 즐겁다고 한다. "무엇보다 저를 보러 경기장에 오고, 응원해주는 팬들이 있잖아요. 요즘엔 힘내라고 유독 홍삼을 많이 보내주세요(웃음). '황연주'란 이름의 자부심을 느끼고 뛰어야죠." 프로배구의 '꽃사슴'이 앞으로 몇 년은 더 코트를 휘저으며 뛰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