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vs 왕따'..박종철 사건 당사자들의 엇갈린 삶

이가영 2017. 1. 14.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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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월 26일 고(故) 박종철씨 추도 미사가 끝난 뒤 서울 명동성당 앞에 모인 사제단과 수녀, 대학생 등 2000여 명이 전두환 정부의 반인권적 고문을 규탄하는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중앙포토]
14일 사망 30주기를 맞은 박종철 열사 추모대회가 열린 가운데 당시 사건 관련자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아봤다.

98년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정호 당시 경장과 강진규 당시 경사는 각각 90년 5월 만기 석방과 92년 7월 가석방된 뒤 한두 달도 안돼 경찰공제회에 들어가 일반직 4급으로 재직했다. 이정호 경장은 박종철씨 뒤에서 등을 밀어 상체를 굽히게 했고 강진규 경사는 박씨의 머리카락을 잡고 박씨의 머리를 욕조 물속에 처박았던 인물이다.

조한경 당시 경위는 1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94년 4월 가석방된 뒤 이듬해 1월 총포화약안전기술협회에 입사해 일반직 3급 총포지도과장으로 근무했다. 이는 금고 이상의 형을 받아 집행이 종료된 뒤 2년이 지나지 않으면 임용을 제한하도록 한 경찰 유관단체 인사관리 규정을 어긴 것이다.

'탁'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경찰박물관에 "경찰 조직을 위해 부단한 연구와 노력으로 경찰발전에 혁혁한 공적을 남김"이라는 평가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던 서동권 당시 검찰총장은 89년 7월부터 92년 3월까지 노태우 정권 국가안전기획부 부장을 역임했다.

좌천됐던 정구영 당시 서울지검장은 노태우 정권 청와대 사정수석비서관을 거쳐 23대 대검찰청 검찰총장을 역임했다.

반면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2015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1억 원짜리 통장 보여주면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더라'는 내부 고발을 한 교도관은 지금도 교정동 퇴직자 모임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가 정의를 위해 일한 사람들을 상을 못 줄망정 아직도 왕따 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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