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협치, 대권주자 박원순의 초심은?

정용인 기자 2017. 1. 14. 15: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주간경향 기획 | 대선주자 릴레이 정책 검증1]브랜드 부재·지지율 하락…고민 깊어지는 朴

10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1년 10월 26일 재·보궐선거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2014년 6월 4일 지방선거로 재선 시장이 됐다. 1991년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한 이후 최장수 민선 서울시장이다.

재·보궐선거 당시 야권 정치인들이 박 시장 선거를 도왔다. 유권자를 만나서 인사하는 법, 지지를 호소하는 법을 가르쳐 줄 때마다 박원순 당시 후보는 “익숙하지 않아서…”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2014년 재선에 도전할 때는 나름의 ‘박원순 식 방법’을 개척했다. 유세차를 타지 않고 운동화에 베낭을 매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을 만나는 방식을 택했다.

그리고 2017년 대선.

시민사회 출신으로 박 시장 대선 캠프에 합류한 한 인사는 이렇게 평했다.

“아름다운재단을 만들어 ‘기부문화’를 한국 사회에서 처음 확산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를 찾아가 기부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문앞에 서서 손잡이에 손을 올릴 용기가 없어 그대로 돌아온 적도 있다고 ‘박변’(박원순 변호사의 줄임말)이 고백한 적이 있다. 한 1년이 지나니 달라지더라. 박원순은 학습능력이 빠르다. 지금은 지지율이 최저점을 찍고 있지만 곧 극복할 것이다.”

“‘박원순다움’으로 승부하겠다”

“당장 장사가 안 되니까 품목을 바꾸고, 포장도 잘 해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원순다움’으로 승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키고자 했던 가치와 지켜야 하는 가치로 정면승부하는 것이 맞습니다. 제가 너무 바보 같은 걸까요.”

1월 1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지자 단톡방에 비공개로 올린 글의 일부이다.

최근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것과 관련해 그는 “지금 지지율을 봤을 때 대선에 나서는 것이 바보 같은 선택일 수는 있지만 정치가 그런 것이 아니냐”고 말하며 “‘박원순다움’으로 승부하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이 말하는 ‘박원순다움’이란 무엇일까.

소통과 협치는 박 시장이 강조해 왔던 말이다.

“분명 그 부분에서 박 시장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온 것은 사실이다.” 전상봉 서울시민연대 대표의 말이다.

풀뿌리단체인 서울시민연대는 박 시장의 대척점에 서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서울역 고가 재활용 문제 등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서울시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나 심포지엄 등에 가면 관련 정책을 결정한 서울시 고위관계자들이 참석해 토론을 폈다. 이 역시 소통이라면 소통이다.

박 시장은 시장이 된 2011년부터 ‘시민이 시장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민 소통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소통과 협치는 현재는 박 시장만의 트레이드 마크가 아니다. 여권 대권주자로 분류되는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야권과의 공동지방정부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중앙정부에서도 소통·협치의 연정을 도입해야 한다”며 “승자독식이 아닌 협치형 대통령제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소통·협치에 대한 박원순 시장의 지난 5년 경험은 남 지사가 강조하는 방향과 상당 부분 다르다.

경청과 정책토론회는 1기 서울시정 때부터 박 시장이 강조해온 소통방식이다.

경청은 말 그대로 시민들의 의견을 귀 기울여 듣는다는 것을 말한다. 정책토론회는 구체적인 정책 결정에 앞서 시민들, 시민단체, 정책 결정 공무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하는 토론회를 여는 것이다. 토론은 SNS 등을 통해 생중계되고, 토론에서 오간 내용과 결정내용은 다시 시의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2014년 12월 서울시민인권헌장 채택 불발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소통’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생채기’로 남아 있다.

2014년 12월 7일 오전 서울시청 1층 로비에 성소수자들이 대자보를 각종 구호를 붙이고 시청점거농성을 하고있다. 이들은 서울시 인권헌장을 시에서 표결 시민위원회 표결결과를 합의로 불수없다며 무산시킨 것에 반발해 6일 오전부터 시청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 이준헌 기자


시민들의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 인권헌장에서 ‘성적 소수자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 대한 명시 여부를 두고 일부 기독교 단체들은 파상공세를 벌였다. 결국 세계인권선언일에 맞춰 발표하려 했던 서울시민인권헌장은 좌절됐다. 서울시의 거부로 인권시민사회단체들과 제정 논의과정에 참여한 시민들은 따로 자리를 만들어 선포했다.

박 시장은 개인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으나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2014년 서울시민인권헌장을 추진했던 한 민간 측 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

“인권변호사·시민운동가 출신으로서의 소신과 원칙을 지켰으면 어땠을까. 박 시장으로서는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지금과 같은 난국에 그때 사람들이 자발적인 지지층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일부 기독교계의 항의 때문에 접었다고 하지만 저렇게 쉽게 표 계산에 따라 흔들리는 사람이 과연 지도자로 적합하다고 할 수 있는지, 그런 생각을 사람들은 하지 않았을까.”

서울시의 협치와 거버넌스 정책을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은평구 불광동에 위치한 서울혁신파크. 한 유명 활동가의 1인 시위가 눈을 끌었다. 이 활동가는 자신이 일하는 단체의 관리자가 계약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묵살하고, 임금체불 미지급, 장시간 노동개선 요구 역시 묵살하고 있다고 피케팅을 했다. 과거 관련 단체 활동을 했던 인사는 “해당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시가 민간위탁으로 진행하는 사업의 중간지원조직에서 많이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협치’ 시정의 특징은 여러 센터들을 만들어 서울시 사업을 민간에 위탁하는 것이다. 이들 민간위탁 중간지원조직들은 엄밀히 말해 공공기관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 민간기구라고 볼 수도 없다.

서울시 기획조정실이 공개하고 있는 ‘민간위탁사무 현황’을 보면, 예를 들어 청년정책담당관실이 담당하고 있는 ‘서울시 청년활동 지원사업’은 사단법인 마을과 사단법인 일촌공동체가 공개입찰을 통해 지난해 7월 15일부터 올해 6월 30일까지 맡아 진행하는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이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어정쩡한 위상이다.

서울시의회 전문위원으로 일하다 현재는 한국사회연구소 정치 컨설턴트로 일하는 박신용철씨는 “고용과 복지뿐 아니라 사회적 경제나 혁신기업 이야기가 나오면서 기존의 안정된 일자리를 포기하고 이들 중간지원조직에 들어온 사람들도 꽤 있는데, 월급 수준이나 일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박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마을만들기 사업은 여러 풀뿌리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일반시민이나 주민이 소외되고 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이 역시 민간위탁사업으로 진행됐는데, 이에 참여한 사단법인체들을 두고 일부 보수매체들은 “박 시장과 친분이 있는 인사들 위주로 만들어진 단체가 주도한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쓴소리 기획단’

박 시장 개인의 시정 운영 스타일 문제도 지적된다. 서울시민연대 전 대표는 이렇게 덧붙인다.

“박 시장은 아이디어가 많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려보낸다. 서울시의 공무원들을 보면 하여튼 바쁘다. 다시 시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뭔가 분주하게 하기는 하는데 뭐가 바뀌었는지 와 닿는 것이 없다.”

2013년, <주간경향>의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2주년 기획기사의 제목은 이랬다.

“‘박원순 서울’ 얼마나 달라졌나.”

기사의 부제는 “정책 반대하는 쪽의 ‘쓴소리’ 경청… 내세울 만한 ‘브랜드’ 없다는 지적도”였다.

‘내세울 만한 브랜드의 부재’는 현재도 유효하다. 그렇다면 ‘쓴소리’는?

기사에서는 당시 박원순 시장이 대외비로 도입한 경청프로세스를 소개했다. ‘쓴소리 기획단’이라는 이름으로, 한 달에 한 번 비공개로 열리던 이 모임의 특징은 자리에 참석한 박 시장이 아무런 반박 없이, 지적사항을 열심히 받아적는 식으로 운영되는 것이었다. 쓴소리 기획단은 어떻게 되었을까.

12일 <주간경향>의 문의에 서울시 대변인실은 “관련 기획을 했던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2015년 초까지 운영되다가 현재는 운영이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곱씹어야 하는 것은 ‘초심’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