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 '진보적 보수주의자'라는 반기문 전 총장의 궤변

2017. 1. 1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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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편 기내 인터뷰에서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저를 보수주의자로 본다. 하지만 대한민국 지도자 중에서 저처럼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이도 별로 없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빼놓고. 저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다"라고 답했다.

요즘 반 전 총장이 말하는 ‘대통합의 정치’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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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자신의 정치적 지향에 대해 “나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12일 귀국편 기내 인터뷰에서 ‘진보주의자인가 보수주의자인가’라는 질문에 “사람들은 저를 보수주의자로 본다. 하지만 대한민국 지도자 중에서 저처럼 진보적인 사고를 하는 이도 별로 없다. 스스로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빼놓고. 저는 진보적 보수주의자다”라고 답했다. 국가지도자를 꿈꾸는 인사가 정치 노선과 이념 지향에 관해 형용 모순의 말을 이렇게 버젓이 하다니 놀랍다. 정치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을 잡는 영역이란 말이 있긴 하다.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분명하게 자신의 노선과 색깔을 드러내고 국민의 평가를 받는 게 옳다. 좋은 단어로 치장된 모호한 언사로 정치적 성공을 하려 해선, 지도자의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국민 지지를 얻을 수도 없다.

미사여구로 분장한 ‘구호 정치’의 종말이 얼마나 끔찍한지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을 통해서 똑똑히 봤다. 4년 전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내세운 구호는 ‘100% 대한민국’이었다. 요즘 반 전 총장이 말하는 ‘대통합의 정치’와 다르지 않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집권 이후 한 일이란 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비판적 인사들을 감시하고 지원을 끊은 것이었다. 중요한 건 화려한 구호가 아니다. 그런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지 구체적인 청사진을 내놓고, 국민과 대화하고 평가받는 게 훨씬 필요하다.

흐릿하기 짝이 없는 반 전 총장 언행은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최순실 게이트로 공론화한 ‘재벌 개혁’ 문제에 대해 그는 “원칙적으로 재벌 개혁을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되면 재벌 개혁을 하겠다는 건지 아니면 ‘원칙적으로는’ 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어렵다는 건지 종잡을 수 없다. 물론 이제 막 유엔 사무총장을 마치고 귀국한 반 전 총장에게 모든 쟁점에 관한 구체적 공약 제시를 요구하긴 어렵다. 하지만 반 전 총장은 지난해부터 유력한 대선 주자로 거론됐던 인사다. 더구나 대통령 탄핵으로 차기 대선은 3~4개월 이내에 치러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여전히 포괄적인 ‘반반 어법’을 유지하는 건, 대선 때까지 자신의 정체를 가리면서 가겠다는 전략이 아닌가 강한 의심을 하게 된다.

진보, 보수 양쪽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을 헐뜯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노선과 정책 색깔을 분명히 드러낸 뒤 반대자들을 설득함으로써 이뤄내야 한다. 그늘 안에 숨어서 핵심 쟁점을 교묘하게 회피하려는 건 온당한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반 전 총장은 ‘정권교체가 아닌 정치교체’를 말하지만, 그의 주변을 둘러싼 구정치인들로 어떻게 정치교체를 할 것인지부터 먼저 답해야 한다. 당당함과 솔직함 없이 만들어진 이미지로 권력을 추구하는 건, 박근혜 대통령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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