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불량 계란 수억개 유통' 정부가 방치해왔다

김기범 기자 입력 2017. 1. 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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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ㆍ민주당 김현권 의원, 식약처 보고서 공개…금 간 것 팔고 장기 보관·실온 유통 심각
ㆍ유통센터 설립 등 대책 발표, 2015년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보고 후 돌연 연기

정부가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는 계란 수억개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방치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대기업을 포함한 유통업자들이 변질 가능성이 높은 계란을 판매하는 실태를 파악하고도 업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유통구조 개선대책 실시를 연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현권 의원이 공개한 식약처의 ‘계란 유통 문제점과 대책’ 보고서에 따르면 생산 과정에서 껍데기에 실금이 갔지만 육안으로 선별이 불가능한 계란 가운데 30%가량이 시중에 그대로 유통·판매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금이 간 계란은 국내 계란 연간 생산량 약 183억개의 20%가량이며 이 가운데 시중에 유통되는 양은 30% 정도인 약 7억7000만개에 달한다. 판매에 부적합한 계란 수억개가 식탁에 버젓이 올라왔던 셈이다.

미국산 계란~이 왔어요

12일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미국산 계란이 창고로 운반되고 있다. 이 계란은 국내 업체가 미국으로부터 수입한 샘플용 150㎏(2160개)이다. 연합뉴스

식약처는 또 일부 대형 수집·판매상의 경우 사재기를 통한 판매수익 극대화를 위해 보통 28일 정도인 유통기한을 넘겨 1~2개월씩 장기간 보관했다가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규모가 큰 생산자들이 보통은 2~3개월, 길게는 6개월까지도 장기보관했다가 출하하는 점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소비자들은 산란 후 7~8개월 지난 계란을 먹을 수도 있는 셈이다.

식약처는 세척하거나 장기보관된 계란은 10도 이하의 냉장 상태에서 유통·판매되어야 하지만 대부분 실온에서 유통·판매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보고서에는 CJ나 풀무원 같은 대기업들도 일부 세척계란을 실온에서 유통·판매하고 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식약처는 장기보관, 실온 유통 등으로 인해 부패·변질된 계란은 살모넬라 식중독 등을 일으켜 국민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보고서에는 또 “계란 생산자들이 깨진 계란을 파기하지 않고, 정부에 등록하지 않은 업자에게 판매하거나 정상적인 계란에 끼워 판매하는 경우도 상존”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식약처는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계란가공품의 시장가격이 원료인 계란보다 저렴한 것은 깨진 계란 등 비정상적인 원료를 사용하는 것이 원인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시장가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인 계란보다는 비정상적인 계란을 사용해야 하는 구조가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식약처는 전체 계란 중 70%에 대해서만 이물질 제거와 등급 판정을 위한 세척이 이뤄지고 있으며 나머지 30%가량은 세척을 하지 않아 이물질이 묻어 오염된 상태로 유통되고 있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이 같은 불법 계란 유통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대책으로 계란유통센터 설립 등의 대책을 2015년 11월17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해당 내용을 보고한 후 돌연 발표를 연기했다. 농가·업체 등의 반발을 우려해 대책 시행을 연기한 것이다. 김현권 의원은 “식약처와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일부 이해관계자들을 위해 다수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불법 계란 유통 상황을 그대로 묵인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통구조 개선은 조류인플루엔자(AI) 예방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세한 계란 수집·판매상들이 낙후된 차량과 재활용 플라스틱 용기를 지닌 채 여러 농장을 드나드는 방식이 곳곳으로 AI가 전파되는 원인으로 지목되기 때문이다.

김 의원은 “선진국처럼 생산자협동조합이 참여하는 계란유통센터를 전국 주요 지점에 세워 유통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계란 유통기간을 현재의 28일에서 선진국처럼 20일, 21일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기범 기자 holjja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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