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준비금 헐어 부모님 설 용돈"..불황 속 명절 '한시름'

2017. 1. 12.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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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얇은데 물가 급등, AI까지..세뱃돈·선물 돈 쓸 곳 '천지'
서민들 설렘 반 걱정 반.."명절치레 요식 없애 부담 줄여야"

(전국종합=연합뉴스) 공병설 기자 = "아껴둔 출산 준비금을 부모님 용돈으로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치솟는 물가에 차례상 준비, 세뱃돈까지…부모도 부담되긴 마찬가지예요."

민족 최대 명절인 설이 다가온다. 그리운 가족과 친척,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세상살이에 지친 심신을 위로받고 재충전하는 설렘의 시간이다.

요즘처럼 가뜩이나 힘들 때면 더욱 기다려지는 법이지만 이번 설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소득은 현상 유지조차 힘든 상황에서, 주변까지 챙겨야 하는 명절은 세대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부담이다.

서울의 대기업 과장 김모(38) 씨는 매달 꼬박꼬박 해오던 저축을 두 달 전부터는 잠시 중단했다.

양가 부모를 비롯해 집안 어르신들한테 드릴 용돈과 선물 비용을 따로 떼어놓다 보니 저축할 여유가 없어졌다.

김 씨는 "넉넉한 살림은 아니지만 자녀와 집안의 일원으로서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으로 용돈과 선물을 챙긴다"며 "고향이 어른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지역인 데다 결혼 이후 줄곧 해 오던 일이라 그만둘 수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자식을 키우느라 한평생 고생하신 부모를 보살펴 드리는 건 당연하지만 팍팍한 현실을 생각하면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지난해 2월 설을 앞두고 주부 포털사이트 아줌마닷컴이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걱정되는 설 지출계획'이 부모님 용돈이라는 응답자가 34%에 달했다.

이런 고민은 이번 설도 다르지 않다.

결혼 후 첫 명절을 맞는 한 주부는 여성 전용 포털에 올린 글에서 "임신과 함께 일을 그만둬 남편이 외벌이를 한다"며 "대출금, 세금, 보험료 내고 남는 30만원으로 생활하는데 설에 시부모님 용돈을 얼마나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그는 "아기 낳으면 쓰려고 아껴둔 500만원짜리 통장이 있는데 이거라도 깨서 용돈을 드려야 하냐"고 물었다.

결혼 3년차 주부는 "행여 시댁에 밉보이진 않을까 친정엄마는 명절 때마다 힘들게 번 돈으로 20만원 이상 선물을 보내는데, 이번 설에는 보내지 말라고 했다"며 "막상 그러고 나니 매년 한우세트, 홍삼, 대게 같은 걸 선물하는 손윗동서네랑 비교되진 않을까 신경 쓰인다"고 걱정했다.

간만에 고향 집을 찾는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도 마음 한편이 심란하긴 마찬가지다.

류모(56·충북 제천) 씨는 이번 설에 조카, 손주 등 20여 명에게 줄 세뱃돈으로 적어도 60만원은 들 것으로 보고 있다.

40여 명이 먹을 음식과 차례상 비용을 형제들이 나눠 내는데 이번에는 물가가 크게 올라 개인 부담 몫도 상당히 늘어날 수밖에 없다.

계속되는 경기 불황으로 매출이 바닥을 헤매는 자영업자의 경우는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옷 수선점을 운영하는 강모(54·여·충북 충주) 씨는 이번 설에는 음식 가짓수와 양을 줄이기로 했다.

최근 집들이 준비를 하느라 장을 보면서 엄청나게 오른 장바구니 물가에 깜짝 놀랐기 때문이다.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도매시장에서 장을 봤는데도 김장철 이전에 3천원이면 샀던 당파 한 단에 8천원을 줘야 했다. 소매가격은 1만원이 훌쩍 넘는다는 얘기다.

강 씨는 "손님이 거의 없어 가게 문만 열어놓고 있는데 설이 다가오니 솔직히 부담스럽다"며 "대부분 식재료 가격이 거의 2배는 오른 것 같다"고 했다.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aT) 가격통계(KAMIS)를 보면, 평년(직전 5년 평균)과 비교해 가격상승률이 두 자릿수를 넘는 농산물이 수두룩하고, 두 배 이상 오른 품목도 적지 않다.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각종 전을 비롯해 명절 음식에 빠지지 않는 계란도 평년보다 60% 이상 올랐다. 이마저도 품귀 상태다.

고기산적 재료인 한우, 수입 쇠고기 등 축산물 가격도 심상치 않다.

가뜩이나 살림이 빠듯한 서민들에게 설은 또 하나의 그늘을 드리운다.

이런 때일수록 명절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고 형식과 체면을 던져버리는 게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쓸데없는 격식을 차리지 말고 따뜻한 위로와 나눔의 자세로 명절을 맞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치러야 하는 의례적 행사란 생각에서 벗어나 서로 부담을 줄여주고 힘든 가족을 보듬고 토닥여주면 좀 더 행복한 명절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어르신 용돈이나 아이들 세뱃돈 금액을 줄이는 대신 가벼워진 봉투는 정성껏 쓴 편지나 덕담 쪽지로 채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이별 세뱃돈 상한제, 현금 대신 책 선물 하기 등 명절 규칙을 온 가족이 함께 만들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와 가족애를 느낄 수 있다.

건국대 류재윤 교수(사회복지학)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담은 짧은 편지 한 통이 현금보다 큰 즐거움과 위안을 줄 수 있다"며 "물질적, 심리적 부담을 줄여야 고향 가는 길이 즐겁고 다음 명절도 기다리게 된다"고 말했다.

k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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