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제2의 원자로' 꿈꾸는 까닭

2017. 1. 11.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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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몬주를 최근까지 유지해오고, 폐로 결정 후에도 새로운 고속로 계획을 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몬주가 플루토늄 보유의 명분이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그걸 ‘꿈의 원자로’라고 했다. 그것이 ‘돈만 잡아먹는 하마’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예상한 사람이 있었는지,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일본 정부는 거창한 ‘꿈’을 내세워 국민들이 낸 세금을 마구 쏟아부었다. 하지만 그것은 ‘밑 빠진 독’이었다. 약 1조 엔(약 10조1948억원)을 투입해 만들어 유지해온 시설을 폐쇄하는 데 3750억 엔(약 3조8343억원)이 또 들어가게 됐다. 이 정도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손을 들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일본 정부는 ‘제2의 꿈’을 꾸고 있다.

‘꿈의 원자로’는 돈 먹는 하마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 21일 오후 원자력 관계 각료회의를 열고 안전관리상에서 각종 문제가 이어져온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시의 고속증식로 ‘몬주’를 재가동하지 않고 폐로(廢爐)하기로 정식 결정했다. 몬주는 플루토늄과 우라늄의 혼합산화물(MOX)을 투입해 발전하는 고속증식로이다. 투입량보다 많은 재활용 핵연료(플루토늄)를 배출하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때 ‘꿈의 원자로’로 불리기도 했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몬주를 만들어 유지하고 수리하는 데 1조 엔이 넘는 돈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1991년 만들어진 뒤 25년 동안 몬주가 가동된 것은 250일에 불과하다. 사실상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한 것이다.

일본 정부가 폐로하기로 결정한 고속증식로 몬주. / 일본 위키피디아

일본 정부가 몬주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확정하는 경우 그 준비기간만 최저 8년이 걸리고, 이후 8년 동안 운용하는 데 5400억 엔(약 5조5210억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폐로를 선택하는 경우 비용은 이보다 줄어든다. 일본 정부는 폐로에 최저 3750억 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다. 폐로 소요 비용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해체까지의 유지관리비용 2260억 엔, 시설해체비용 1350억 엔 등이다.

그러나 이 수치는 말 그대로 예상치일 뿐이다. 폐로 작업은 길고도 긴 여정이다. 그 사이에 어떤 변수가 발생해 비용이 늘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사용후연료의 추출 준비를 개시해 2022년에 추출을 종료한다고 해도 최종 폐로가 끝나는 시점은 30년 후인 2047년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 정부의 몬주 폐로 결정에 대해 시설이 위치한 지자체는 반발하고 있다. 그동안 지역경제가 몬주에 의존해온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1985년 몬주 착공 이후 후쿠이현과 쓰루가시 등이 받아온 정부 교부금은 모두 250억 엔(약 2556억원)을 넘는다. 그동안 일본 정부의 정책에 협조해 온 후쿠이현의 니시카와 잇세이(西川一誠) 지사는 “폐로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폐로를 포함한 재검토 방침을 밝힌 것은 무책임한 것”이라고 반발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는 몬주 인근에 별도의 연구용 원자로를 설치해 연구거점으로 삼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등 지역 민심 달래기에 나서고 있다.

‘꿈’은 ‘지옥’으로 바뀌었다

일본이 몬주 건설공사를 착공한 것은 1985년이다. 1991년 완공된 몬주는 1995년 8월 어렵게 발전을 시작하지만, 3개월여 만에 냉각제로 쓰이는 나트륨이 유출되면서 화재가 발생하는 등 사고가 잇따랐다. 가동이 중단된 지금도 연간 200억 엔(약 2048억원)의 관리비가 들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1995년 몬주가 가동될 때 ‘꿈의 원자로’라 했다. ‘몬주(文殊)’라는 이름은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에서 딴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이름에는 인류에 기여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몬주는 원자력 발전 이후 생기는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서 추출하는 플루토늄을 다시 원자력 발전에 활용한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핵폐기물 처리에 대한 부담도 없어지고, 우라늄과 플루토늄의 추가 투입도 필요없는 상태에서 전기를 영원히 생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리상으로는 ‘꿈 같은 시설’이라도 해도 맞다.

천연 우라늄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전체의 1% 미만에 해당하는 ‘우라늄 235’이고 다른 하나는 99% 이상을 차지하는 ‘우라늄 238’이다. 이 가운데 우라늄 235만이 연료로 사용된다. 99%가 넘는 우라늄 238은 핵폐기물로 버려야 한다. 그런데 ‘몬주’ 등의 고속증식로는 고속중성자를 이용한 핵분열반응으로 에너지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현상이 발생한다. 우라늄의 99%에 이르지만, 아무런 쓸모도 없던 우라늄 238 중 일부가 핵연료로 사용되는 플루토늄 239로 바뀌는 특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1g의 우라늄 238이 원자로 내에서 1.17g의 플루토늄 239로 증식돼 연료로 사용되는 것이다.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는 이 현상에서 사람들은 ‘꿈’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투입되는 연료보다 오히려 더 많은 연료가 생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속증식로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현재 세계 각국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는 발전용 원자로는 대부분 원자로 내부의 핵반응 때 발생하는 열을 물로 식힌다. 그런데 고속증식로인 ‘몬주’는 소듐(나트륨)을 냉각제로 쓴다. 그런데 소듐에는 물과 닿으면 폭발을 일으킨다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이 문제 때문에 미국·영국·독일 등 상당수 국가가 고속증식로 개발을 포기했는데 일본만 강행해 왔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몬주’를 가동한 지 단 3개월 만에 640㎏의 소듐이 누설되면서 공기 중의 수분과 반응해 화재를 일으킨 것이다. 2010년에는 연료봉 교환장치가 원자로 내부에 떨어지는 사고도 났다.

결국 ‘꿈’은 ‘지옥’의 상황으로 바뀌었고, 일본 정부는 끝내 몬주를 버리기로 결정했다.

2011년 3월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원전 인근 지역 마을 농토 등에 방사능 오염토가 담긴 포대가 가득 쌓여 있다. / 윤희일 특파원

꿈을 포기하지 않는 일본

일본은 그러나 고속증식로 보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일본 정부는 ‘몬주’의 퇴출을 결정하고도 새로운 고속로를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폐로가 결정된 몬주를 대신할 새로운 고속로를 일본 국내에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어디에, 언제까지 새로운 고속로를 지을 것인지 등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18년까지 새로운 공정표를 만들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 몬주를 최근까지 유지해오고, 폐로 결정 후에도 새로운 고속로 계획을 짜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몬주가 플루토늄 보유의 명분이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일본은 미·일원자력협정에 의해 플루토늄 보유가 가능한 잠재적 핵보유국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유엔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미·중·러·영·프)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 재처리를 통한 플루토늄 생산이 허용된 국가이다.

이에 따라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꺼내 다시 이용하는 핵연료 정책을 펴고 있다. 몬주와 같은 고속증식로가 없는 경우 플루토늄 보유의 정당성을 잃게 된다. 핵연료로 사용하는 것을 명분으로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 47.9t(핵탄두 약 6000발 제조 가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희일 경향신문 도쿄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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