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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8년, 최고 유산은 '인간' 오바마

이윤정 기자 입력 2017.01.10. 22:15 수정 2017.01.10. 23:18

[경향신문] ㆍ20일 임기 마치는 ‘제44대 미국 대통령’

미국 첫 흑인 대통령의 역사가 오는 20일(현지시간) 막을 내린다.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9년 미 제44대 대통령에 오른 버락 오바마의 유산은 정책의 성공 여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가 8년 동안 가져온 ‘변화’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두려움을 내세워 ‘변화’를 주창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와 대조된다. 지성과 카리스마에다 공감력과 유머감각까지 갖춘 ‘인간’ 오바마의 매력은 미국과 전 세계를 매료시켰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는 독자들의 평가를 소개했다. 독자들은 이란 핵협상 타결, 쿠바 국교정상화, 건강보험 개혁, 기후변화 대처노력, 금융위기 극복 등 다양한 업적을 거론했지만 가장 큰 오바마 유산으로 그의 기품과 가치를 꼽았다. “미국에 자부심을 갖게 해준 지도자” “신념을 절대 잃지 않은 대통령” “모범적인 아버지이자 남편” “쿨한 지도자” 등 오바마의 인간적인 면모를 가장 인상 깊게 평했다. 계층을 아우르는 소통과 가식 없는 삶으로, 흑인 대통령의 한계를 뛰어넘어 세계에 영감을 준 지도자 오바마의 업적을 정리했다.

2009년 1월20일 대통령 취임선서를 앞둔 버락 오바마가 의사당 한편에 걸린 거울을 바라보고 있다. 백악관

■ 희망과 변화

“변화는 결코 쉽지 않고 빨리 오지도 않는다.” 지난 5일 오바마는 대국민 편지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기초를 다졌다”며 집권 8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쉬움을 내비쳤다. 그가 이룬 업적이 트럼프 행정부를 만나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의식한 발언이었다. 또 총기규제, 이민개혁 등을 채 이루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는 듯했다.

8년 전 오바마가 취임할 당시 금융위기와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등 안팎으로 악재가 산적했다. 임기 내내 의회를 장악한 공화당에 정책이 막혔지만 오바마는 단 한번도 품위를 잃지 않았다. 오바마케어 추진을 앞두고 공화당 의원들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했다.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의장과의 2011년 골프 회동에선 손수 카트를 몰았고, 정적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와도 종종 술잔을 기울였다. 공감과 소통의 정치는 57%에 달하는 임기말 지지율로 돌아왔다. 민주당 정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지만 ‘마이티 덕(레임덕 없는 대통령)’ 칭호를 들었다.

2009년 3월 오바마가 오랜만에 만난 반려견 ‘보’와 함께 백악관 복도를 달리고 있다. 백악관
2011년 5월1일 오바마가 백악관 상황실 구석에 앉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등과 함께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 백악관

오바마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의 이야기는 진보의 이야기”라고 강조한 오바마는 더 많은 사회복지망을 구축하려 했고, 밖으로는 핵 없는 세상을 꿈꾸며 기후변화에 대처하려 했다. 그는 “8년 전보다 미국이 더 강하고 존경받는 나라가 됐다”고 자평했다. 오바마는 늘 긍정을 말했다. 그는 고별편지에서 “미국의 가장 좋은 날들은 아직 우리 앞에 있다”며 “미래의 진보를 만든 사람은 여러분(미 국민)”이라고 강조했다. 흑인교회 총기 난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장례식에서 치유의 노래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장면은 상징적이다.

■ 관용과 다양성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를 둔 오바마의 유년 시절은 순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결혼 2년 만에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해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지만 곧 파경을 맞고 오바마는 하와이에서 외조부모의 손에 컸다. 미국 사회의 마이너리티(소수자)로 성장한 배경은 타인에게 공감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의 자양분이 됐다.

2012년 그는 농구 경기를 보러 갔다가 ‘키스 타임’에 걸려 부인 미셸과 입맞춤을 하거나(위 사진), 핼러윈을 맞아 백악관에 놀러온 꼬마와 어울리는 등 소탈한 모습을 보여줬다. 백악관

오바마는 불법 이민자의 법률 상담 등을 보장하는 ‘이민개혁’을 추진했다. 2012년 재선을 앞두고 동성결혼 합법화 지지를 선언한 데 이어 임기 중 연방대법원의 합헌 판결을 이끌어냈다. 또 지난해 성소수자의 화장실 사용 문제로 차별법안이 논란이 됐을 때 오바마는 이 법안이 철폐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과 행동에는 양성평등의 일관성이 있었다. 지난해 여성지 ‘글래머’ 기고문에서 스스로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며 “성차별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성들의 책무”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오바마 부부는 동등한 파트너 관계를 보여줬다. 부인 미셸은 청소년 비만 퇴치나 교육 캠페인에 나서고 백악관 뜰에 건강한 먹거리를 위한 텃밭을 가꾸는 등 전과 다른 ‘퍼스트레이디’상을 보여줬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 들어가는 길에 보좌진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모습으로 화제에 올랐다. 백악관

노예제가 폐지된 지 143년 만에 탄생한 흑인 대통령 시대에도 인종주의는 사라지지 않았다. 경찰 총격에 흑인들이 목숨을 잃으면서 지난해부터 미 전역에서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는 운동이 일었다. 최근 퓨리서치 여론조사에서 ‘오바마 재임기간 흑백 갈등 해소에 진전이 있었나’라는 질문에 61%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 화해와 평화

오바마는 미국 역사에 남은 갈등의 상처를 봉합하려 애썼다. 취임 9개월 만에 핵무기 군비축소 노력 등을 인정받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2009년 4월 체코 프라하에서 오바마가 제시한 ‘핵무기 없는 세상’ 비전은 정책으로 이어졌다. 2015년 12월 타결된 ‘이란 핵협상’은 오바마 외교의 최대 업적으로 평가된다. 36년간 숙적이었던 미·이란 관계는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또 그는 지난해 3월 미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88년 만에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해 냉전의 장벽을 허물었다.

2015년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에서 열린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연설 중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불렀다. EPA

지난해 5월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원자폭탄을 투하한 일본 히로시마를 찾았다. 그러나 ‘사과 없는’ 방문으로 “어정쩡한 과거사 봉합을 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지나치게 신중해 실기했다’는 비판을 받은 이슬람국가(IS) 대응, 시리아 내전 문제는 결국 풀지 못하고 주도권을 잃었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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