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585) 주유기 오차

2017. 1.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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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기 88% 표시량보다 적은양 주유
정부 개입보다 업체 자정 노력 필요

기름값이 치솟으면 주유소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기 마련이다. 주유소가 과연 '정품' 기름을 '정량'만큼 넣어주는지를 믿지 못하는 소비자들이 부쩍 늘어난다. 실제로 정부가 현장에서 확인한 주유기의 88.6%가 표시량보다 적은 양을 주유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보도도 있었다. 정부가 주유기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달라는 소비자의 요구를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자칫 주유소에 대한 불신만 부추길 수 있는 일이다.

주유소의 주유기는 단순히 기름을 넣어주는 기계장치가 아니다. 주유량을 정확하게 확인하도록 해주는 '계량기'이기도 하다. 모든 계량기는 정확하고 정밀해야 한다. 만약 소비자가 계량기를 믿지 못하면 정상적인 공정거래가 불가능하게 된다. 정부가 '국가표준기본법'에 따라 상거래에 사용되는 모든 계량기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액체 상태로 거래되는 휘발유·경유·LPG를 판매하는 주유소에서 사용하는 주유기에 대해서 정부는 사용오차 0.75%를 허용하고 있다.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주유기를 사용하는 주유소라고 하더라도 20ℓ를 주유하면 최대 150㎖의 차이가 날 수 있고, 10만원을 주유하면 최대 750원의 차이가 날 수 있다는 뜻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지만, 많은 양의 기름을 판매하는 주유소에서는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주유소가 부당한 이익을 챙기고 있다고 의심할 수는 없다. 계량기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정상적인 '오차'는 무작위적이기 때문이다. 실제 주유량이 언제나 주유기에 표시되는 양보다 적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주유를 반복하는 동안 실제 표시량보다 많이 넣어주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익을 챙기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손해를 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정상적인 오차에 대해서는 굳이 불평할 이유가 없다.

계절에 따라 액체 상태인 기름이 팽창하거나 수축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소비자도 있다. 온도가 1도 올라가면 휘발유는 0.11% 팽창하고, 경유는 0.08% 팽창하는 것이 사실이다. 기온이 30도인 여름에는 0도인 겨울보다 휘발유의 부피가 3.3%나 늘어나게 된다. 결국 여름에는 주유기에 표시되는 양이 그만큼 늘어나게 되고, 소비자는 그만큼 기름값을 더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소비자가 크게 불평할 일은 아니다. 기온이 높은 여름에는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같은 이유로 날씨가 추운 겨울에는 이익을 챙기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주유소에서 기름을 쇠고기처럼 무게 단위로 판매하기도 어렵다. 주유소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몹시 번거로운 일이다. 정유사와 주유소의 거래에서는 기온을 고려하는 온도환산 방식을 쓰기도 한다. 유조차와 주유소의 탱크에 들어있는 기름의 온도가 상당히 다르고, 거래량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1년과 2012년에 전국의 주유기 7859기를 확인한 결과 97.3%가 법정 사용오차 범위를 넘지 않았다. 주유기는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는 셈이지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0ℓ 주유할 경우에 실제 주유량은 표시량보다 평균 43.97㎖가 적었다. 주유기의 오차가 비대칭인 것도 평균 주유량이 주유기의 표시량보다 적기 때문이었다. 결국 전국의 주유소가 통계적으로 0.2%의 부당 이익을 챙기고 있는 셈이다. 티끌이라도 모아야 하는 주유소에는 무시하기 어려운 유혹일 수 있다.

주유기에 대한 법정 사용오차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사용오차를 강화하는 것이 온전한 해결책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사용오차를 줄이면 주유기의 성능을 개선하고, 관리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관리비용도 늘어난다. 물론 그런 비용은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주유소의 자정 노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부의 시대착오적인 부당한 시장 개입으로 궁지에 몰려있는 주유소에 그런 여유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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