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꿈이던 그리운 딸 은화야, 팽목항에 세 번째 봄 오면 꼭 만나길
매일같이 바다 보며 너를 기다려
직장 그만둔 남편, 대학 자퇴 아들
오늘도 4월 16일을 살고 있어
미뤄지는 선체 인양 안타깝지만
작업 계속된다는 사실에 안도
그날 갑작스러운 사고 소식을 접하고 학교 측이 마련한 버스에 올라 진도에 도착한 게 당일 오후 5~6시쯤이다. 가 본 적 없고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낯설었던 진도 생활이 3년가량 이어지리라고 당시엔 상상도 못했다. 실신했다가 힘겹게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아무리 찾아봐도 은화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학부모처럼 “아이를 구조해 달라”고 울부짖었다. 시간이 지나자 은화의 친구들이 하나둘씩 시신으로 발견됐다. 안타까움 속에서도 “은화는 꼭 살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4일이 지나자 “바다에서 올라온 아이들의 시신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이 들렸다. 점점 두려워졌다. 딸이 죽었을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어려웠다. 참사 일주일이 되자 “시신만이라도 찾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했다. 자식의 시신을 찾아 기뻐 울며 진도를 먼저 떠나는 다른 학부모들이 정말 부러웠다.
일부에선 우리를 이기적인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 “국가적으로 손해인데 세월호를 인양해야 하느냐”는 이들도 있었다. 주변에서는 “남은 아들(23)을 위해서라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라”고 권유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국가가 구하지 못했지만 부모까지 자식을 포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비수를 꽂는 말들이 오히려 가족을 더 차분하게 만들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은화를 꼭 찾아야 한다는 목표는 더 뚜렷해졌다. 하지만 세월호 인양 예정시점이 당초 2016년 7월에서 8월 이후로, 다시 연내 인양에서 2017년 상반기로 미뤄졌다. 고통스러웠지만 인양 작업이 계속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평범했던 가족의 일상은 그동안 완전히 달라졌다. 회사에 다니던 남편(54)은 정상적으로 출근할 수 없어 아예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참사 당시 대학 신입생이던 아들은 팽목항을 지키느라 결국 자퇴했다. 친척과 지인에게 빌려 어렵사리 생계를 잇고 있다.지난해 10월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이 불거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을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박 대통령 측은 “그날에 대해 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족에게는 너무도 생생한데 지도자가 남 말 하듯 하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늘도 무심한 팽목항 앞바다는 말이 없다.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다시 팽목항에 세 번째 봄이 오면 공무원이 꿈이던 은화를 꼭 만날 수 있겠지.
진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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