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무원' 한국외교]4년간 외교를 국내정치 하듯..차기 정부 발목 잡을 가능성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2017. 1. 8.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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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중, 사드 보복 수위 더 높여…일, 위안부 합의 이행 압박
ㆍ미 트럼프 정부 ‘대중 압박’ 드라이브 예상에 부담 가중

한반도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미국·중국·일본으로부터 밀려오는 삼각파도 앞에 한국 외교가 갈 곳을 잃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결정에 대한 중국의 보복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에 반발해 2015년 위안부 합의 이행을 요구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미·러 데탕트를 통한 중국 압박’을 펼 것으로 예상돼 한국의 외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국이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리게 된 것은 대통령 탄핵으로 인한 국정공백의 문제보다는 4년 동안 이어져온 박근혜 정부의 외교 실패가 초래한 결과물이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정부에 이 같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대책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남긴 외교 실패의 후유증은 차기 정부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의 한 외교소식통은 “다음 정부는 능동적 외교정책을 펴기에 앞서 박근혜 정부에서 뒤틀려버린 외교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에 외교적 역량을 소진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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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의 국내 정치 도구화

박근혜 정부 외교정책은 출범 초기 국제정세와 맞지 않는 대일 강경자세를 고수하면서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박근혜 정부는 미국에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하는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체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버락 오바마 2기 행정부와 함께 출범했다. 한·일 등 아시아 동맹국들을 활용해 중국을 봉쇄하려는 아시아 정책을 펴는 미국이 한·일 갈등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강경자세는 방향 설정이 잘못된 데다 지속될 수 없는 실책이었다.

결국 한국은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외교적 입지 축소와 미국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대일 강경자세를 거둬들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아베담화)’를 용인하고 일본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위안부 합의를 내줌으로써 한·일관계를 봉합해야만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초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도 없다’는 대일 강경자세를 취한 것은 국내 정치를 의식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전력 논란을 차단하고 국내 정치적 지지를 높이기 위해 국민정서에 영합하는 ‘일본 때리기’에 나선 탓이다. 한·일관계를 잘못 다룬 대가로 박근혜 정부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잃고 급격히 미국 쪽으로 기울었다.

■ 오락가락 시계추 외교

출범 초기 박근혜 정부가 지향했던 외교정책의 원칙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박근혜 정부가 지향했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슬로건에 머물렀을 뿐 강대국의 첨예한 이해관계 앞에서 선택의 압박을 받게 되자 모래성처럼 일거에 허물어졌다. 민간연구소의 한 외교전문가는 “박근혜 정부 초기 한국 외교에 가장 중요한 명제는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몰리지 않고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한국은 양쪽을 오가다가 스스로 운신의 폭을 좁혀버렸다”고 지적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한·미동맹은 발전을 거듭하며 ‘글로벌 파트너십’을 표방하는 포괄적 전략동맹을 강조했다.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역대 최상의 관계’라는 수사를 앞세워 미국이 의심할 정도의 밀월관계를 구축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한·미, 한·중 관계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패권 다툼 속에서 한국을 우군으로 끌어들이려는 미·중의 전략적 움직임의 결과였다. 한국은 지금 사드 배치 문제로 최악의 한·중관계를 경험하고 있고 미국과는 트럼프 당선 이후 주한미군 철수와 통상 압박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전직 외교안보 분야 고위관리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평화통일 기반을 조성하려면 미·중 모두와 협력하면서 분명한 국가적 목표를 제시하고 원칙을 지켰어야 한다”면서 “미·중 사이에서 양쪽을 오가며 듣기 좋은 말만 하고 기계적 균형을 지키다가 양쪽 모두에 불신을 받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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