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바꾼 두 엄마의 삶, "그날 이후.."

방윤영 기자 2017. 1. 8.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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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0일]물이 무서워 양치·세수조차 버거워.."정부는 뭐가 변했나?"

[머니투데이 방윤영 기자] [[세월호 참사 1000일]물이 무서워 양치·세수조차 버거워…"정부는 뭐가 변했나?"]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튿날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서 한 실종자 가족이 구조소식을 기다리고 있다./사진=뉴스1

물소리가 무섭다. 아침에 눈을 떠 양치하고 세수하는 일조차 힘들다. 주방에 들어서지도 못한다. 일어나 씻고 밥 먹는 일부터 힘드니 일상 하나하나가 모두 무너졌다.

세월호 참사로 아들 지상준군(당시 18세)을 잃은 엄마 강지은씨(48)에게 평범한 일상은 사라졌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아이를 깨우는 일도 없다. 무심코 방문을 열어 '상준아' 부르고 나서야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요리하는 일도 없어졌다. 아이가 좋아했던 음식이 떠오른다. 아들이 유독 잘 먹었던 카레는 2014년 4월16일 이후 단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상준이 가족이 4인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일도 없다. 비어있는 한 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진다. 남은 세 식구는 일정을 핑계 삼아 한 사람씩 따로따로 식사한다.

새해 해돋이, 크리스마스 등 각종 기념일도 없어졌다. 거창하지는 않았어도 동네 뒷산에서 해돋이를 보고 케이크에 불을 켜 성탄절을 맞이하던 가족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영화 나들이도 이젠 어렵다. 어둡고 밀폐된 극장이란 공간 자체가 공포다. 가족애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도 나오면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렵다.

물 자체가 무서우니 눈이나 비가 오는 날은 유독 힘들다. 집 안에 웅크려 버티는 수밖에 없다. 심리상담가는 숫자를 세거나 뜨개질이라도 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1부터 100까지 모두 세어 본 적이 없다. 50까지 세다 보면 어느새 생각이 멈춰 다시 1부터 세게 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영상이 시시때때로 나오는 통에 텔레비전도 못 본지 오래다. 책도 못 보고 음악도 안 들린다. 아이를 떠올리게 하는 모든 매체를 멀리한다.

그렇게 1000일이 흘렀다. 상준이 엄마는 "모든 일상이 변했다"며 "샤워부터 식사, 문화생활까지 다 무너졌다"고 말했다.

같은 날 아들 임경빈군(당시 18세)을 떠나보낸 엄마 전인숙씨(44)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아이가 있는 안산 합동분향소에 갔다 오거나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활동을 하며 밖에서 지낸다. 아빠는 직장에 다녀온 뒤 초등학교 6학년 둘째 딸을 돌보고 엄마는 바깥에서 경빈이를 위해 활동하는 생활이 이 가족의 일상이 됐다.

경빈이 엄마도 물이 싫다. 물을 떠올리면 찬 바닷물이, 아이를 잃은 그날이 생각난다. 요리도 안 한다. 김치볶음밥, 갈비 등 가리지 않고 뭐든 잘 먹었던 아들이 자꾸 생각난다.

어둠이 싫어 잠도 못 잔다. 밤을 꼬박 새기 일쑤다. 잠을 자더라도 1~2시간씩 눈을 붙이는 게 전부다. 가끔 몸이 너무 지칠 때는 약을 먹고 겨우 잔다. 참사 이후 밥을 먹지 않아 2~3달 만에 10㎏ 가까이 체중이 줄기도 했다.

설렜던 가족여행은 한이 됐다. 2013년 여름 아빠 고향인 전라도 보성을 다녀온 뒤 '내년에는 섬에 가자'던 약속은 미완성이다. 2014년 2월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지만 수학여행을 앞두고 있던 경빈이를 두고 간 게 끝내 후회로 남는다.

'하굣길에 우리 아들과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하며 매일 저녁 동네 엄마들과 학교 뒷길 개천가를 산책하는 일도 기억 저편에 묻었다.

9일은 세월초 참사가 발생한 지 꼭 1000일째 되는 날이다. 세월호 유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바뀐 1000일이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1000일 동안 정부가 변한 건 없다고 본다. 유가족이 요구해왔던 '진상규명', '선체인양', '안전사회 건설', 이 중 이뤄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얘기다.

상준이 엄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정부, 국회가 무능한 건 변함이 없다"며 "여전히 행정·사법·입법기관 어느 곳 하나 기댈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진상 때문에 요즘이 더 힘들다"며 "'무능한 박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들 다 살릴 수 있었을 텐데'하는 생각이 가슴을 짓누른다"고 말했다.

경빈이 엄마는 "세월호 가족들은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거나 링거 맞을 시간조차도 아까워 약만 타 온다"며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이 머리 손질하고 밥 다 챙겨 먹었으면서 어떻게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분통이 터진다"고 말했다.

방윤영 기자 by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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