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민일보

일본, 왜 강경하게 나오나.. "자꾸 골포스트 옮기는 한국" 우파는 물론 진보진영도 불만

천지우 기자 입력 2017.01.07 00:07 댓글 0
지지층 결집용 이슈 부각 지적.. 아베-바이든 통화 '국제 여론전'
일본 정부가 일시 귀국 조치를 내린 나가미네 야스마사(長嶺安政) 주한 일본대사가 6일 오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면담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일본이 부산 일본영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설치에 항의해 6일 주한 일본대사와 부산총영사를 일시 귀국시키는 등 강경 조치들을 들고나온 것은 일본 내 반한(反韓) 여론이 그만큼 악화됐기 때문이다. 특히 그동안 일본 여론주도층에선 ‘한국은 골포스트를 자꾸 옮긴다’(합의를 자꾸 깬다)는 비판이 있어 왔는데, 이번에 한국이 명명백백히 골포스트를 옮겼다는 게 일본 측 항변이다.

일본이 한국과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를 도출하면서 방점을 둔 부분은 당시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 즈음 일본 우파들은 “위안부 문제는 과거에 이미 끝난 일인데 뭘 또 합의를 하느냐”며 합의 자체를 반대했다. 때문에 일본은 ‘최종’ ‘불가역적’이란 말을 넣겠다고 고집했고 한국은 받아들였다.

일본은 아울러 ‘소녀상 문제는 한국 정부가 관련 단체와 적절히 해결키로 노력한다’는 문구를 합의문에 관철시켰다. 일본은 이를 한국 정부가 철거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반면 우리 정부는 말 그대로 ‘노력한다’는 의미라는 게 공식 입장이다.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직접 사죄하지 않는 이상, 합의를 인정할 수 없고 소녀상 철거도 불가하다는 게 확고한 입장이다. 결국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1년이 지나도록 철거되지 못했다. 피해자를 배제한 박근혜정권의 ‘밀실 합의’가 문제를 더욱 키운 꼴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에서는 지난달 말 합의 1주년이 되면서 우파 진영의 불만이 비등해졌다. 또 일본의 진보적 언론이나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2015년 합의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됐다. 아베 정권은 그동안 우파를 향해 ‘소녀상은 시간이 걸릴 뿐 반드시 철거된다. 다만 지금은 한국이 피해자들을 설득할 시간이 필요하니 외교적 여지를 주자’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기존 소녀상 철거는 고사하고 또 다른 소녀상이 설치되자 아베 정권이 궁지에 몰렸고, ‘내부 달래기용’ 강수를 쓰게 됐다. 게다가 지난달 아베 총리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간의 북방영토 협상이 성과 없이 끝나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지지층을 다시 결집하기 위해 위안부 이슈를 부각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한국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 정부는 합의 주체인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잃을 위기에 놓이면서 합의 자체가 무효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게다가 한국의 유력 대선주자들도 잇따라 합의 폐기를 거론했다. 때문에 대사·총영사 소환 등의 조치를 통해 한국 차기 정권에 일종의 ‘경고’를 한 측면이 있다. 주한 일본대사의 본국 소환은 2012년 8월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4년 반 만이다. 소녀상 문제를 독도 문제만큼이나 중시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일본이 소녀상 설치를 비난하며 ‘영사관계에 관한 빈 협약’을 거론한 것도 눈여겨봐야 한다. 국제 여론전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란 판단을 했을 수 있어서다. 빈 협약에 따르면 주재국은 외국 영사기관의 위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소녀상 설치로 위엄이 훼손됐다는 주장을 펼친 것이다. 아베 총리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전화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를 거론한 것도 국제 여론전으로 한국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뉴스 미란다 원칙] 취재원과 독자에게는 국민일보에 자유로이 접근할 권리와 반론·정정·추후 보도를 청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고충처리인(gochung@kmib.co.kr)/전화:02-781-9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