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는 법]멀쩡한데 정신병원 강제 입원..영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2017. 1. 6.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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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정신장애인의 인권

정신병원 강제입원 문제를 다룬 영화 <날보러와요>의 한 장면. 영화 속 주인공은 이유도 모른 채 정신병원에 감금돼 강제 약물 투여와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린다.

“가족의 힘으로 여태껏 살았는데… 남자 셋이 꽁꽁 묶어서 짐승들이 맞는 주사를 맞고 약을 15개씩 먹이고… 거기는 지옥보다 더한 곳입니다.”

2013년 11월3일 밤, 강남구 신사동 소재 자신의 집에서 편안히 자고 있던 박영희씨(가명·당시 58세)는 갑자기 들이닥친 3명의 남성에 의해 손과 발이 포승줄에 묶였다. 이들은 영문도 모르는 박씨를 응급이송단 차량에 싣고 서울을 벗어나 한참을 달렸다. 독방에 갇힌 그에게 한 여성이 대뜸 주사부터 놓았다. 일명 ‘코끼리 주사’였다. ‘이 주사를 맞으면 코끼리도 쓰러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은 경기도의 한 정신병원이었다. 간호사는 한참 만에야 정신을 차린 박씨의 옷을 벗기고 종이기저귀를 채웠다. 그러고는 다시 박씨의 팔다리를 끈으로 묶었다. 병원에선 이틀 동안 밥 한 끼도 주지 않았다. 박씨는 나중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변기 물까지 먹었다고 했다. 그는 왜 자신이 정신병원에서 이런 취급을 받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의사는 그를 인격장애로 진단했다.

현행 정신보건법은 보호의무자 2명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명의 진단이 있으면 강제입원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박씨는 나중에서야 딸들이 보호의무자로 자신을 강제입원시킨 사실을 알게 됐다. 박씨는 홀로 4남매를 기르면서 안 해본 일 없이 고생했다. 서울 강남에 3층 다가구 주택 건물을 마련했을 땐 이제 고생 끝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이 건물이 화근이었다. 2010년 7월쯤이었을 것이다. 큰딸이 “건물을 담보로 3억원만 대출을 받자”고 했다. 박씨는 딸을 믿고 필요한 서류를 건네줬다. 그러나 박씨가 구경도 하지 못한 그 돈은 큰딸이 당시 사귀던 남성에게 모두 흘러갔다. 남자가 사업을 빌미로 딸을 구슬려 돈을 뜯어내고 있음을 직감한 박씨는 “혼인빙자간음과 사기 혐의로 남자를 고소하겠다”고 큰딸을 을렀다.

당시 박씨는 한두 달 전부터 갱년기 우울증 때문에 신경정신과 외래진료를 받고 있었다. 정신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을 만큼의 중증은 전혀 아니었고, 본인이나 타인의 안전을 해할 염려 또한 전혀 없었다. 그러나 엄마의 돈이 탐났던 큰딸은 이를 빌미로 동생과 함께 공모해 엄마를 정신병원에 가둬버리기로 한 것이다. 박씨는 갇혀있던 정신병원의 의사에게 하소연했다. “어떻게 갱년기 우울증으로 강제입원이 되나요. 선생님, 퇴원 좀 시켜주세요.” 그러나 의사는 웃었다. “퇴원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그 태도가 바로 당신의 입원 필요성을 인정하는 자료입니다. 어쨌든 보호의무자인 딸들이 승낙하지 않으면 퇴원은 안 됩니다.”

외부로의 연락이 모두 차단된 상태에서 박씨는 두달이 지나서야 겨우 병원 안에 있는 공중전화에 접근할 수 있었다. 그는 평소 알고 지내던 교회 목사의 부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박씨는 목사 부인의 도움으로 변호사를 선임해 2014년 1월 법원에 ‘인신보호구제’를 청구했다. 강제수용이 정당한지 법원 판단에 맡겨보자는 시도였다. 박씨는 또 딸들을 감금죄로 고소하는 초강수도 뒀다.

그러나 딸들은 박씨가 법원에 인신보호구제 청구를 한 다음날 그를 다른 정신병원으로 옮겨버렸다. 병원을 옮기면 인신보호구제 청구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변호사가 법원의 도움을 요청하면 딸들은 또다시 병원을 옮길 태세였다. 새 병원에서 18일간 생활하다 못 견딘 박씨가 결국 포기했다. “고소를 취하해 줄 테니 제발 퇴원에 동의해달라”고 딸들에게 매달렸다. 이들은 고소 취하 등을 전제로 동의해줬고, 박씨는 겨우 풀려났다.

박씨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어떻게 법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변호사는 박씨에게 “지금의 시스템으로는 보호자 2명과 의사 1명이 작심하면 사람 하나 가두는 것은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보호의무자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동의로 환자를 입원시킬 수 있다’고 규정된 정신보건법 24조. 박씨 같은 강제입원자들은 이 법조항이 악마의 조항이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이 법에도 환자 본인이 시장·군수·구청장에게 퇴원을 직접 청구하거나, 정신보건심판위원회 심의를 거치면 보호자 동의 없이도 퇴원이 가능하도록 한 조항이 있다. 그러나 박씨는 그게 안된다는 걸 잘 안다. 자신이 직접 시도해봤기 때문이다. 강제입원당한 다음달 퇴원을 청구했지만 위원회에서 거절당했다. 위원회는 ‘병력 정보로 보아 의료적 소견(정신병원 의사의 강제입원 조치)이 합리적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까지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이 이 과정을 거쳐 구제받은 확률은 12.7%에 불과했다. 대부분 환자들에게는 있으나마나한 절차인 것이다.

박씨는 빠져나올 수 없는, 그러나 지옥과도 같은 정신병원 안의 풍경을 직접 보았다. 정신병원 안에서 보이는 모든 광경이 충격이었다. 도저히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지난 2013년 알코올 의존증 치료를 위해 한 정신병원에 입원한 환자가 입원 당일부터 21시간을 양팔과 양다리를 묶인 채 있다가 입원 닷새 만에 결국 숨졌다. 환자를 보호해야 할 정신병원 직원이 환자를 발로 걷어차고 구타하고 있음에도 옆에 있던 병실 환자들은 태연하게 식사를 하는, 폭력이 일상화된 정신병원 모습도 21세기를 사는 우리 바로 옆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대로 법을 놔둬도 될까. 국회에서는 지난 5월 보호의무자에 의한 강제입원의 요건이 강화되고 정신장애인에 대한 복지지원의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의 정신보건법 전부개정안(법 명칭도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로 바뀌었다)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정신병원 강제입원 절차를 대폭 강화했다. 강제입원 대상자에 대해 진단과 치료 목적 2가지로 나눠 심사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의사 2명이 동의하도록 규정한 내용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신장애인’이 기본적인 경제적·문화적 생활을 유지하고 일반 국민과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들의 특성과 욕구를 반영한 재활·고용·평생교육·거주시설·돌봄 등의 복지서비스 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헌법 불합치’ 선고가 나왔다. 보호입원제도 그 자체는 위헌이 아니다. 그러나 중립적인 제3자의 판단도 없이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와 정신과 전문의 1인의 판단만으로 사실상 강제 구금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제도 악용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정신 질환자의 신체의 자유 침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지 않아 지나친 기본권 제한일 수밖에 없다. 멀쩡한 박씨를 정신병원에 잡아 가두는 데 악용됐던 정신보건법 24조는 국회의 법률 개정이 이뤄지기 전까지만 유효하다. 헌재의 불합치 판결에 따라 국회가 법률개정안을 내놓으면, 황당한 강제입원은 조만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정신장애인 인권보장의 시작이지 결코 끝은 아니다. 정신병원에 입원하지 않고 지역사회에 거주하는 정신장애인을 위한 지역사회 복지 체계가 시급히 마련되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지역사회 복지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작정 탈시설화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나라 정신장애인들의 상당수가 다시 정신병원으로 돌아가거나 혹은 노숙으로, 범죄에 따른 교도소 재소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정신장애인들도 정신병원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잘살 수 있는 기반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공익 변호사 단체 ‘공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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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형국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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