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세상]회피해선 안될 공포
[경향신문] 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2017년!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이 있은 지 꼬박 30년이 지난 시점이다. 올해에는 기필코 우리 사회가 변화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차고 넘친다. 10월29일부터 토요일마다 열린 촛불집회 참여시민 수가 2016년 마지막 날에 있었던 열 번째 집회에서 연인원 1000만명을 찍었다. 적폐를 일소해야 한다는 절실함이, 변화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큰 상태인 거다. 어둠을 밀고 나오는 새벽을 알리는 닭처럼, 닭의 해인 2017년도 우리의 역사에서 그런 해가 되길 소망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적폐 중 하나는 ‘원전(정확히는 핵발전)’ 문제다. 작년 12월20일에 1400㎿의 신고리 3호기가 1년간의 시운전을 거쳐 상업운전에 들어감으로써 이제 우리나라에는 25기의 원자로(정확히는 ‘핵반응로’)가 상업운전 중에 있다. 현재 시운전 중인 신고리 4호기도 얼마 있지 않아 상업운전에 들어갈 예정이며 신한울 1호기, 2호기도 이미 공정률이 90%를 넘어선 상태다. 신고리 5호기, 6호기는 작년 6월에 건설허가를 취득해서 본관 기초굴착에 착수한 상태다. 이게 다가 아니다. 신한울 3호기, 4호기, 천지 1호기, 2호기가 건설 준비 중에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원전 밀집도로 세계 1위이며, 신고리 4호기까지 상업운전에 들어가면 부지 내 입지 원자로 수가 8기가 돼 한 발전소 내 입지 원자로 수로도 세계 1위가 된다. 주변 지역 인구 규모도 엄청나다. 고리원전의 경우 부지 30㎞ 이내에 340만명이 넘게 살고 있다. 당장의 손쉬운 전원 확보를 위해 우리의 안전을 내맡기는 위험한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저탄소 에너지원이라며 기후변화 대응 방안으로 원전 건설이 추진되고 있기도 하다.
이런 때에 한 재난 영화가 절찬리 상영 중에 있다. 개봉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 누적 관객 수가 450만명을 넘어선 영화, 바로 <판도라>다. 필자는 얼마 전 학생들과 함께 그 영화를 관람하였다. 숨죽인 울음이 상영관을 가득 메웠던 것 같다. 영화가 그려내는 가족애와 주인공 강재혁의 자기 희생적 결단에 목이 메였을 뿐 아니라 언제든 저 영화적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불안과 공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었으리라.
영화적 상상이 현실과 다르다며, 과장되었다며 볼멘소리를 하는 이들도 있다. 원전업계나 학계 쪽에서는 판도라가 허무맹랑한 가정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아마도 현실이 오히려 영화적 상상을 넘어서지 않을까 싶다. 지금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이 땅의 정치 현실이 우리의 상상력을 가볍게 넘어선 것처럼. 이미 지난해 7월에 울산 앞바다에서, 9월에는 경주 인근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진도 5.0과 5.8의 지진을 겪은 후이기에.
우리가 그냥 공포를 느끼는 데 머물거나 대면하기 버거워 외면해 버리면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상상 가능한 공포를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설계수명 30년을 넘어섰지만 수명을 연장해서 2022년까지 가동하기로 한 월성 1호기에 대해서는 수명연장 허가가 무효임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되어 지난 4일에 열두 번째 재판이 열렸다. 고강도 지진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이루어진 신고리 5호기, 6호기 건설허가도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주민투표를 통해 주민들이 거부 의사를 표명한 영덕과 삼척에 대한 원전 입지도 해결된 것이 아니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몰라도 올 상반기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을 예정이다. 이제 우리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이런 쟁점이 후보들의 공약사항에 나와야 하고 중요한 투표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촛불로 드러난 시민인식이 원전문제까지 연결되기를 희망해본다. 판도라가 보여준 상상이 현실이 되어서는 안되기에.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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