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두 번 나선 전인권 "밉더라도 결국 용서해야 해요" [인터뷰]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입력 2017. 1. 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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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19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제4차 촛불집회’ 문화제에서 가수 전인권이 열창하고 있다. 사진 정지윤기자
가수 전인권.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가수 전인권. 사진 박민규 선임기자

지난해 11월19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4차 촛불집회에서 하얗고 긴 머리를 질끈 묶은 그가 등장해 애국가를 부르는 순간, 처연하게 광화문의 하늘을 뚫고 오르던 그의 목소리 아래에서 100만의 촛불들은 숨을 죽일 수밖에 없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저마다 눈시울을 붉혔고, ‘역대 가장 눈물이 나는 애국가였다’는 평이 온라인을 달궜다. 그로부터 다시 한 달 후, 가수 전인권이 기타리스트 신대철과 만나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순간 집회의 정치적인 의미를 떠나 대한민국 음악사의 가장 뜨거운 협연의 한 장면이 대중들의 눈 앞에 펼쳐졌다.

가수 전인권은 그렇게 촛불의 한 가운데에서, 촛불들을 아우르며 그의 허스키하면서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용서와 치유를 노래했다. 수많은 가수들이 촛불집회의 무대를 거쳐 갔지만 두 번에 걸쳐 그렇게 인상적인 무대를 남긴 가수는 없었다. 해가 바뀌어도 엄정한 시국은 변하지 않고, 모두가 분노와 더불어 희망을 생각할 때 전인권은 계속 그만의 무대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속으로 걸어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촛불집회는 잠시 잊고 있었던 가수 전인권 목소리가 가진 힘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무대가 됐다.

“다들 좋아하세요. 위로가 된다고 하시고요. 좋아한다고 다방면에서 연락도 많이 오는데요. 저로서는 보람도 있고, 참 좋은 일이에요. 나라가 잘 되기를 정말 희망해요.”

전인권의 이름은 2016년 대중음악사를 정리할 때 맨 앞과 맨 뒤를 장식할 만하다. 연 초 그의 노래를 후배 이적의 목소리로 부른 ‘걱정말아요 그대’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주제곡으로 울려퍼졌고, 연말은 그가 직접 나서 촛불 앞에서 노래했다. 신대철과 협연도 했다.

“역시 잘 친다는 느낌도 있었어요. 제가 하지 못하는 말들을 되게 쉽게 하기도 했고요. 기분이 좋았어요. 예전에 시나위와는 한 번 공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잘 안 됐거든요. 무대에서 처음 만났지만 너무 좋았죠. 신중현 선생님이 되게 좋아하셨다고 그래요. ‘둘이 판을 한 번 내보라’고.(웃음)”

화제가 된 애국가 이후 그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왜 애국가였냐고. 그는 가장 처연하게 이 노래를 불러보고 싶었다고 답해왔다. 그가 뮤지션으로서 가진 촉은 이 상황에서 청중을 위로할 노래는 그것 하나 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애국가의 앞에는 세월호 당시 공연이 있었다.

“예전 세월호 사고 이후에 가수들이 모여서 공연을 한 일이 있었어요. 광화문에서 처음 공연할 때는 당시 일이 너무 큰일이라 어떻게 해야할까 생각만 했어요. 언젠가 다시 노래할 기회가 생기면 정말 애국가를 처절하게 불러보고 싶었어요. 그 노래가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벅찬 마음이었고, 따라 부르는 분들을 봤는데 굉장히 진지했던 표정이 기억에 남아요.”

1985년 밴드 들국화를 결성했다. 사실 그보다도 6년 전부터 가수 활동을 시작했지만 전인권의 목소리는 30년이 지나도 그 힘을 잃지 않았다. 밴드 멤버들의 이야기로는 요즘 들어 더욱 힘을 얻고 있다고 한다. 한창 공연을 할 당시에는 3년 동안 꼬박꼬박 오전 8시에 일어나 목을 가다듬었다. 목은 쓰면 쓸수록 나이와 반비례해 좋아졌다. 그는 날로 젊어지는 목소리의 힘을 갖고 후배들과의 교감도 꾸준히 하고 있다.

“사실 재작년 안산에 가서 유희열, 장기하와 얼굴들, 원더걸스 박예은 등 후배들과 12월에 공연을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사정이 있어 무산이 됐죠. 출연료 이야기가 나왔고, 정부쪽의 방해도 좀 있었고요. 싸이나 친한 친구들이 있는데 계속 공연을 하면서 세월호 유족들을 위로하고 싶어요.”

전인권은 오는 9일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세월호 참사 1000일 추모 음악회’에 참석한다. 4·16 가족협의회가 주최하는 행사에는 정태춘과 권진원, 밴드 옥상달빛, 노래패 우리나라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으로 구성된 합창단 등이 전인권 밴드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과거 공연이 무산됐다는 아쉬움과 죄스러움을 갖고 있는 그는 이번에 다시 한 번 제대로 유족들의 마음을 위로할 작정이다. 이후 3월4일에는 경기도 성남 분당구에서 전인권 밴드로서의 콘서트를 연다. 공연이 없는 때에도 위로가 필요한 곳에는 꼭 목소리를 보탠다는 계획이다.

“용서가 중요해요. 저도 시련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건방질지 모르지만 용서라는 말을 떠올리니 편해졌어요. 싸우고 싶고, 굉장히 미울 때도 맨 마지막에는 용서를 하게 되더라고요. 세월호 유족 분들은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요. 지나가다 ‘맥도날드’ 간판의 노란색만 봐도 억장이 무너지지 않겠어요? 용서를 말하고 싶어요. 세월호 가족 분들 마음의 용서를요. 나쁜 짓은 처벌받아야 하겠지만 그런 것은 국민과 정부에 맡기고 용서를 한다면, 그 힘든 마음에도 용서를 한다면 바다도 바라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는 용서에 이어 ‘바보같은 짓’이라는 말도 했다. 바로 최근 문화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의혹이다. 전인권은 “저도 아마 분명히 거기 있을 거라고 본다”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실제로 감시를 받은 느낌이 든 적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용서를 말했다. 그런 마음도 개의치 않겠다는 다짐이다.

“신경을 안 쓰게 돼요. 왜 제가 세상에 나와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해야 할까요. 창의력을 항상 말하면서 우리의 문화가 굉장한데도 불구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건 바보같은 짓이에요. 자유로움이 보장된다면 문화는 더욱 힘을 받을 겁니다.”

<하경헌 기자 azima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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