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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옳았다..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하는가?

주영재 기자 입력 2017.01.04. 14:57 수정 2017.01.05. 01:2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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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인공지능과 로봇, 3D 프린팅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이 일자리 킬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나온다. 인간은 물론 사물까지 인터넷으로 연결된다지만 정작 일자리에서는 ‘로그 아웃’되는 사람들이 많아질지 모른다. 일자리를 잃지 않게 하거나 잃더라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를 나누고, 그럼에도 일자리를 잡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주면 어떨까.

스위스는 지난해 헌법에 기본소득 조항을 넣는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비록 부결되기는 했지만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핀란드는 올해 1월1일부터 유럽 최초로 전국 단위에서 기본소득 실험을 실시하기로 했다. 캐나다와 네덜란드도 기본소득 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지구촌의 주요 관심사가 된 기본소득과 달리 노동시간 단축 논의는 상대적으로 활발하지 않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34년 파이프 담배를 손에 들고 의자에 앉아 있다. Photo by Lucien Aigner/Three Lions/Hulton Archive/Getty Images

주당 35시간을 규정한 노동법을 개정해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프랑스 정부와 이에 반대하는 시민사회가 격하게 충돌했던 프랑스에서 이와 관련해 주목할만한 책이 나왔다. 지난해 중순 출간된 <아인슈타인이 옳았다>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왜 실업과 저성장의 해법인지 설명하는 책이다.

저자들은 사회당에서 탈당해 새로운 진보 운동을 시작한 경제학자 피에르 라루튀루와 파리 도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는 도미니크 메다 교수이다. 두 사람은 이 책에서 “노동의 양은 그것이 증가 추세를 보이든 감소세를 보이든 세련된 배분의 대상이 되어야지 현재처럼 야만적이어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제한된 일자리를 두고 서로가 서로를 희생양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민자에 대한 차별,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여성에 대한 차별은 이런 희생양 찾기의 결과이다. 저자들은 경제 성장은 물론 사회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도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토론을 시급히 재개해야 한다고 봤다.

이 책의 목적은 단순하다. 실업과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것이다. 노동 조건 악화를 체념하며 받아들이거나 노동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는 모든 담화에 맞서 싸우는 시민들에게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다.

의 표지 사진(왼쪽)과 공저자인 피에르 라루튀루(오른쪽 위)와 도미니크 메다. 출처:nouvelle donne

책은 아인슈타인이 세계 대공황의 해법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주장했던 점을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아인슈타인은 대공황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번 위기는 이전 위기들과는 매우 다르다. 생산방식의 급격한 발전에 따른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서 위기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발표한 이 글에서 대량생산에 따른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적절한 부의 분배가 없을 경우 과잉생산과 실업의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4가지 방법을 제안했다. “첫째, 실업을 줄이기 위해 법정 노동 시간을 줄이자. 둘째, 상품 생산에 비례하는 구매력을 보장할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설정해야 한다. 셋째, 화폐 유통량과 신용화폐의 양을 제한해야 한다. 넷째, 독점과 카르텔로 자유경쟁의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상품 가격을 제한해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아인슈타인 이전 산업혁명 초기부터 거론되던 문제이다. (1841년 프랑스 정부는 8~12세 아동의 하루 노동시간이 8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했다. 노동시간 단축 주장이 실현된 초기 사례이다.) 다만 20세기 들어 좀 더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논의됐을 뿐이다. 아인슈타인과 비슷한 시기 노동시간 단축을 요구한 주요 인물로 포드 자동차를 설립한 미국의 기업가 헨리 포드를 들 수 있다. 포드는 1926년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익을 더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포드는 ‘하루 5달러’라는 구호 아래 직원들의 임금을 두 배로 올린 지 2년 만에 노동시간 단축도 도입했다. 포드는 “인도적인 측면에서만 노동시간 단축 논의가 머물러선 안 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자본주의는 생산을 하는 기업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소비가 가능할 정도의 시간과 소득을 갖고 있는 소비자들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주 5일 노동에 6일 치 임금’이라는 제목이 붙은 인터뷰에서 포드는 “대다수 기업들이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돌아가는 한 미국의 산업은 오래 지속할 수 없다”며 “사람들이 생산품을 소비할 시간을 갖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헨리 포드 : 나는 왜 주 5일 근무를 도입했나(Why I Favor Five Days’ Work With Six Days’ Pay)
그는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인한 변화를 이렇게 예상했다. “노동자들은 자동차를 가져야만 새벽부터 황혼까지 쇼핑을 갈 수 있다. 이는 무수히 많은 결과로 이어진다. 자동차는 사람들이 빠르고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해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발견할 기회를 준다. 이는 더 풍족한 식생활, 더 많고 더 좋은 생산품,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음악, 즉 모든 것이 더 풍족해지고 더 부유해진 세상으로 이끌어준다.” 소비할수록 더 풍요로워진다는 박제가의 ‘우물론’을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포드는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 발전의 족쇄가 아니며 오히려 이 같은 사회 혁신 없이는 경제 발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하루 8시간 노동이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었듯이, 주 5일 노동은 더 큰 번영으로 가는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여가는 노동자들에게 낭비되는 시간이라거나 일종의 계급적 특권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생산성 향상의 이득을 더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포드의 제안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의 생각을 실천에 옮긴 기업가들은 소수에 그쳤다.

유토피아 같은 발상이라던 포드의 생각은 20여 년이 더 지나 실현됐다. 대공황이 수천만명의 실업자를 낳고 2차 세계대전이 수백만명을 희생시킨 뒤이다. 저자들은 “1926년에 주 5일 노동을 일반화시켰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발생했더라도 이로 인한 피해는 훨씬 더 적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1830년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의 연간 노동시간은 3000시간이었다. 1996년에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1600시간이다. 노동 시간이 이렇게 줄어드는 동안 노동시간 단축이 노동자를 게으르게 만들고, 경쟁력을 해칠 것이라는 불만은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노동시간 단축은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저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요구한 것은 ‘주 4일 32시간 노동’이다. 중요한 것은 주간 노동시간을 몇 시간 줄이는 것보다는 출근일을 주 4일로 줄이는 방식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출근일을 그대로 유지하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보다 하루를 줄이는 방식이 고용증대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과정에서 임금을 삭감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국내총생산에서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몫은 과거보다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자료에 따르면 노동자들의 임금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몫은 1982년 67%에서 2008년 57%로 줄었다. 국제결제은행(BIS)은 2003년 연례 보고서에서 소비자 부족 시대를 경고했다. 구매력의 하락으로 세계적인 경기 후퇴가 올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비정규직 확대는 노동자들의 몫이 줄어드는 주요 원인이다. 일본 노동자의 32%가 고용 불안정 상태에 있고, 독일의 경우 400만명이 실업 상태에 있고 600만명이 시간제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은 회사와의 임금 협상에서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된다. 게다가 한 나라의 고용 불안정은 수출을 매개로 다른 나라로 확산될 수 있다. 저자들은 독일을 그 예로 들었다. 독일은 하르츠 법으로 노동유연화를 확대했고 이로 인한 비정규직 확대는 임금 인상을 억제했다.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면서 독일 수출품은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독일이 수출 증가로 이득을 본 반면 프랑스 등 독일 주변국들은 수출 감소와 성장률 둔화, 실업 증가를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국들이 독일과 같은 전략을 따르게 될 경우 문제는 더욱 심화될 뿐이다.

그렇지만 오늘날 실업의 가장 주된 원인은 역시 생산성 증가이다. 2011년 경제학자 다니엘 코헨의 연구에 따르면 같은 양의 산업 생산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인력은 매년 4%씩 줄어든다. 코헨에 따르면 일자리 감소의 10~15% 정도만이 세계 무역과 연관된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생산성 향상에 따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나 마린 르펜 등 각국의 극우파들이 말하듯 자유무역과 세계화가 일자리를 뺏어가는 주요 원인은 아니라는 말이다.

생산성 향상은 결국 전보다 덜 일해도 된다는 뜻이기에 그 자체로 나쁜 것이 아니다. 줄어드는 일자리를 적절히 나눠 생산성 향상으로 인한 이득을 공정하게 나누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고 노동시간을 줄이는 일은 사회 정의의 일부이다. 저자들은 “일부 사람들은 우리들이 사회 정의를 국가가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경우 포기해야 하는 사치품의 하나라고 믿길 원한다”며 “그러나 사회 정의는 더 나은 때를 기다리면서 포기해야 할 것이 아니라 확고한 의무이자 절대적인 긴급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사회 정의를 재건하는 일은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들은 지금의 저성장, 실업난이 일시적이며 저금리 정책 등으로 성장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이들은 “노동시간을 대폭적으로 단축할 경우 몇 년 안으로 대량실업에서 벗어나는 것은 진실로 가능하다”면서 “성장의 기적적인 회복에 기대거나 노동시간의 대폭적 감축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룰 수 없다면 어떤 위기 탈출도 지속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49시간을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 한국은 주요 선진국 중 초과근무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 출처:블룸버그

노동시간 단축은 생활 전반에 변화를 줄 수 있다. 과도한 노동과 고용 불안정으로 ‘자기 착취’를 강요받는 노동자들은 노동시간 단축으로 소비자로서는 물론 부모로서, 아내나 남편으로서, 공동체의 삶을 고민하는 시민으로서의 삶에 더 충실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건강도 더 좋아지고 의료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여가 활동이 늘면서 오히려 관련 일자리가 늘어날지도 모른다.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이민자를 공격하거나 이민자를 공격하는 정치 지도자를 뽑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발표한 에세이 <우리 손주 세대의 경제적 가능성>에서 2030년이 되면 대부분의 사람이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하고도 생계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술 발전으로 시간당 생산량이 증가할 것이므로 조금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여가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현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래도 아직 2030년은 멀었다. 아인슈타인과 포드, 케인스의 주장이 옳았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하다.

지난달 30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오는 2월24일부터 매달 마지막 금요일 오후 3시에 조기 퇴근하는 ‘프리미엄 금요일’을 실시하기로 했다. ‘과로사’의 원조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이다.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 지는 모르지만 일본의 경제인 단체인 ‘경단련’은 1300개 이상의 회원사들에게 참가를 독려하는 서한을 보냈다. 일본 다이이치생명의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대다수 노동자들이 이 제도의 혜택을 받을 경우 민간 소비가 16억달러정도(약 2조원)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블룸버그]Japan Wants Its Overworked Citizens to Start Weekends Early
블룸버그가 이 기사에서 인용한 일본의 한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일본보다 주당 49시간 이상 일하는 노동자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일본보다 더 시급하게 노동시간 단축 논의를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나도 한 가지 방안을 생각해봤다. 물가상승에 맞춰 최저임금을 조정하듯이 생산성이 증가할 경우 그에 비례해 의무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안을 사회적 대타협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은 어떨까.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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