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제 환공을 파멸시킨 간신 3인방 '역아, 수조, 개방'..돌고 도는 간신 역사

2017. 1. 4. 11: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춘추패자 제 환공은 영웅이었다. 그는 관중, 포숙 등 명재상들을 거느리고 어진 정치를 펼쳤다. 하지만 관중과 포숙이 연이어 죽자 제 환공은 파멸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의 옆에서 충신은 사라지고 희대의 간신인 역아, 수조, 개방이 자리 잡았다. 이들은 권력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자신의 몸을, 자식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일 수 있는 희대의 간신들이었다. 결국 그들은 환공과 제나라를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했다. 실로 순식간이었다.

역사의 흥망성쇠와 인간사 희로애락을 담은 사마천의 <사기>. 정신적 치욕과 육체적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 역사를 서술한 사마천의 위대함은 세상을 보는 그의 넓은 시야와 함께 인간에 대한 깊은 호기심에 있다. 그는 <사기>에 황제, 제후, 영웅들의 삶뿐만이 아닌 동시대를 살았던 각양각색의 인간을 기록했다. 이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간신들만 모아놓은 <영행열전 &#20318;幸列傳>이다. 사마천은 망국의 간신부터 탐욕의 간신까지, 다양한 간신들을 기록해 후대의 경계로 삼았다. 사마천은 <영행열전>의 시작에 이런 글을 남겼다.

‘힘써 농사짓는 것보다 풍년을 만나는 것이 낫고 착하게 벼슬살이 하는 것보다 임금에게 잘 보이는 것이 낫다. 여자만 미모와 교태로 잘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벼슬아치의 삶도 그러하다.’ 사마천은 국가 대사이든, 집안일이든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결국 손에 물을 묻히고 일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특히 리더의 자질과 판단력이 조직의 발전과 퇴보의 중요한 덕목이라고 역설했다. 냉정한 역사의 기록자 사마천이 <영행열전>을 쓰면서 가장 혀를 찬 간신은 과연 누구일까. 우열을 가리기 힘든 ‘명 간신들’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세 사람이 있다. 한 시대에 한 명만 있어도 나라를 들어먹을 간신들이 무려 세 명이나 한 시대, 한 공간에서 탐욕과 음모와 아부의 경연을 벌였다. 이들이 바로 춘추시대의 영웅 제나라 환공을 파멸로 몰고 간 역아, 수조 그리고 개방이다.

▶희대의 간신 세 명이 모이다

기원전 770~481년까지 약 300년간의 춘추시대, 천자의 나라 주나라는 존재했지만 통치하지 못했다. 제후들은 벌떼처럼 일어났다. 이 중에서 지금의 산동성 지역에 자리 잡은 제나라는 강자였다. 특히 기원전 685년 제 환공시대 제나라는 춘추패자를 차지했다. 제 환공은 명석하고 어진 군주였다.

제 환공은 공자 규와의 왕위 쟁탈전에서 포숙의 절대적 도움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때 제 환공의 반대편에 섰던 인물이 관중이었다. 관중은 마차를 타고 제나라로 들어오던 환공에게 화살을 쏴 죽이려 했던 인물. 하지만 관중과 포숙은 ‘관포지교’의 우정을 남긴 사이로, 모시는 주군이 달라 적의 위치에 있었지만 두 사람의 우정은 변치 않았다.

결국 제 환공이 왕위를 차지했다. 환공은 관중을 처벌하려 했지만 포숙이 말렸다.

“관중은 저보다 100배나 나은 능력과 인품의 소유자입니다. 그를 마음으로 품어 재상으로 쓰시면 군주께서 춘추의 패자가 되실 수 있습니다.”

환공은 관중을 받아들였다. 관중은 환공의 넓은 아량과 배포에 감복했고 또한 절친 포숙의 설득으로 환공에게 고개를 숙였다. 관중의 능력과 전략이 환공의 배포와 맞아떨어지면서 제나라는 기원전 651년 회맹을 소집하고 춘추패자가 될 수 있었다.

환공은 욕심과 과시욕이 많은 인간이었다. 그는 봉선의식을 준비했다. 이 의식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주나라 천자만이 할 수 있었다. 제 환공은 자신의 위치가 천자와 동급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자랑하고 싶었다. 하지만 관중은 이를 제지했다.

“지금 어설프게 천자 흉내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환공은 간언과 교언을 구분할 줄 알았다. 그는 관중의 충언을 받아들였다. 환공은 관중과 포숙의 올바른 보좌를 받았고 제나라는 태평성대를 누렸다. 하지만 어질고 바른 정치의 그늘에서는 간신들의 날개 짓이 조심스럽게 펼쳐지고 있었다. 그것도 구중궁궐 환공의 측근에서다.

▶엽기적인 간신들의 충성 경쟁

환공을 정점으로 관중과 포숙이 관리의 수장이 되어 허점이 없어 보이는 제나라였다. 세 명의 간신들은 어떻게 자리 잡게 되었을까. 환공의 비서 수조는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환관으로 기록되어있다. 그 역시 출세를 위해서라면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그는 총명하고 눈치가 빠르며 아부에 능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그는 환공의 측근이 되기 위해 내시를 자처, 스스로 자신의 생식기를 거세했다. 기원전, 의술도 발달하지 않은 당시 생식기를 거세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동이었다. 수조는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리고 환공의 수행 내시가 되었다.

수조는 환공의 모든 것을 관찰했다. 환공의 취미, 생활습관 그리고 여인의 기호까지도 파악해냈다. 그 뒤로 수조는 그야말로 환공의 입 안의 혀가 되었다. 환공이 생각만 해도 수조는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알아서 대령했다. 환공은 수조의 수발에 빠져들었다. 그 어떤 시종, 비서 열 명도 수조 한 명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는 궁중의 여인들을 선별해 환공에게 후궁으로 추천했다. 한마디로 수행비서 겸 채홍사 역할을 한 것이다. 이렇게 환공의 바로 옆에 수조가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을 무렵 또 한 명의 간신 역아는 산해진미로 환공의 미각을 자극했다.

역아는 본래 노예였다. 그는 하늘이 내린 요리사였으나 성품은 교활하고 잔인했다. 역아는 궁중 요리사로 취직해 단연 뛰어난 요리솜씨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에게 기회가 왔다. 환공의 애첩인 장위희가 병이 나 입맛을 잃은 것이다. 궁중 요리사들이 별미를 바쳤지만 장위희의 입맛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역아가 나섰다. 장위희는 깨끗이 그릇을 비웠다. 이 일로 역아는 단숨에 환공의 신임을 받기 시작했다. 장위희의 부추김에 수조마저 역아를 칭찬하니 환공은 자연스럽게 역아를 신임했다. 환공 역시 역아의 음식 솜씨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루는 환공이 역아의 요리를 먹고 농담처럼 말을 건넸다.

“내가 이 세상의 모든 음식을 다 먹어보았는데 사람 고기는 먹어보지 못했다. 그 맛이 어떠할까?”

환공은 단순한 궁금증으로 역아에게 물은 것이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력자에 눈에 들고 싶었던 역아는 그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다음날, 환공은 역아가 차린 음식을 먹었다. 고기 요리인데 맛이 희한하고 처음 먹어보는 식감이었다. 환공이 역아에게 물었다.

“이것은 어떤 고기인가?”

“사람 고기입니다.”

“인육이라? 아니 누구의 살점인가?”

“3살짜리 제 자식놈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죽여서 요리로 만들 생각을 하는가?”

“자식보다 더 중요한 것이 군주에 대한 충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인육을 먹고 싶다고 하셨는데 제가 무엇을 주저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폐하를 모시는 사람은 집안일을 신경 쓰지 않는 법이라 생각합니다.”

환공은 속이 거북하고 비위도 상했다. 그러나 ‘나를 위해 자식을 죽일 정도의 충성심은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 뒤 역아는 환공의 전속 요리사이자 측근 실세가 되었다. 그야말로 인간이라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인 셈이다. 이렇게 수조와 역아 두 간신이 환공의 옆에 자리를 잡았다.

마지막 한 명, 개방은 본래 위나라의 공자(公子 – 제후의 아들)였다. 위나라가 제나라에게 전쟁에서 패한 뒤 일종의 인질로 제나라에 온 것이다. 그는 온갖 감언이설로 환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개방은 위나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다. 그의 부모가 죽어서 장례를 치러야 할 때도, 위나라의 제후 자리를 계승할 수 있었을 때도 돌아가지 않았다. 환공은 십 수 년을 자신의 옆에서 말동무 해주는 개방을 좋게 평가했다. 개방은 각 제후국의 정보는 물론 어느 나라의 누가 미인이라는 등의 달콤한 말을 환공에게 전했다. 그렇게 해서 환공이 첩으로 들인 후궁이 몇 명이나 되었다. 하루는 환공이 개방에게 물었다.

“공자는 위나라의 제위도 계승해 제후가 될 수 있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는가?”

“제가 폐하를 모신 지 벌써 1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본 폐하는 천하의 패자이시고 만대에 남을 어진 군주이십니다. 폐하를 계속 모실 수만 있다면 그깟 제후의 자리가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야말로 아부 9단의 경지가 아닐 수 없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할까. 수조, 역아, 개방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이 세 명의 간신들은 서로 상부상조하며 환공의 눈과 귀를 서서히 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작은 권세나 누리는 정도였다. 그들의 앞에는 관중이라는 큰 산이 있었다. 환공은 관중을 ‘중부 仲父’라 부르며 존중하고 신뢰했다. 수조, 역아, 개방은 수시로 환공에게 관중의 허물을 잡고 고자질과 이간질을 일삼았지만 관중에 대한 환공의 신임은 변치 않았다.

하루는 수조와 역아, 개방 세 사람이 “군주께서 명령을 하면 신하는 그 명을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나라는 폐하께서 모든 일을 관중에게만 맡기시니 백성들은 우리나라에 군주가 없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환공에게 넌지시 관중을 모함했다.

“중부는 나에게 팔과 다리 같은 존재이다. 사람이 팔과 다리가 있어야 완전한 몸이 된다. 즉 나에게 중부가 있어야 나도 군주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다. 너희 같은 소인배들이 무엇을 알겠느냐. 다시는 내 앞에서 중부의 이야기를 입에 담지 마라.”

세 명의 간신배는 그 뒤로 감히 관중을 정면에서 모함하지 못했다. 하지만 춘추패자라는 목표를 달성한 제 환공은 점점 나태해졌다. 정사는 관중과 포숙에게 맡겨놓고 재미와 환락을 찾는 일이 점차 많아졌다.

▶관중, 환공에게 간신배 축출을 유언하다

기원전 645년 관중이 병이 들었다. 병세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환공은 매일 관중을 찾았다. 환공은 겁이 나기 시작했다. 관중이 없는 제나라와 자신의 모습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환공은 관중의 병세가 점점 깊어지자 관중 사후 제나라 통치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중부의 병이 깊어 걱정이구려. 중부께서는 후계를 생각한 인물이 있습니까?”

“폐하, 제가 어찌 저의 빈자리를 제 생각으로 채울 수 있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제가 묻겠습니다. 포숙은 어떻습니까?”

“포숙은 저와 친한 벗이고 능력은 있지만 재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포숙은 마음이 여려 결정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리고 그는 선과 악을 철저히 구분해 조금의 악도 인정치 않습니다. 어떤 관리도 포숙 밑에서는 힘이 듭니다. 정치를 하기에는 그의 마음이 너무 순수합니다.”

의외였다. 포숙의 추천으로 제나라의 재상의 자리에 올랐고, 또한 포숙과는 평생을 같이 한 친구였지만 관중은 인사에 있어서는 냉정과 객관성을 잃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습붕은 어떴습니까?”

“그는 훌륭합니다.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고 정치적 감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습붕의 건강이 좋지 않아 1년을 넘기기 힘들 것입니다.” 그리고 관중은 거침없이 환공에게 간언을 올렸다.

“폐하의 곁에 있는 간신 4명을 물리치셔야 합니다. 그들은 바로 수조, 역아, 개방 그리고 상지무입니다.”

“아니 이들이야 말로 나에게는 충신들 아닌가. 수조는 목숨을 걸고 거세를 해 나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친 인물이고, 역아는 자신의 세 살짜리 아들을 죽여 내게 음식을 해서 바친 충신이고, 위공자 개방은 위나라의 제후가 될 수 있으나 부모의 장례식도 가지 않고 10여 년을 나의 곁을 지킨 사람이다. 또한 상지무는 내가 어디가 아픈지를 귀신같이 알고 나의 몸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의사인데 어찌 이들을 모두 물리치라 하는가?”

“폐하,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몸입니다. 이를 아끼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수조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생식기를 거세하고 내시가 되어 폐하의 옆에 있습니다. 그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입니다. 역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부모자식간의 정을 매몰차게 던져버리고 자식을 죽여 폐하께 음식을 바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아닙니다. 그 역시 어떤 순간이 오면 상대가 누구이든 이용할 수 있는 간신입니다. 위공자 개방이 위나라의 제후가 될 신분임에도 제나라에 남아 있는 것은 그가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는 교언영색으로 폐하의 눈과 귀를 가리는 간신이옵니다. 부모가 죽어도 장례식장을 찾지 않은 것은 군자로서의 도리가 아니지요. 자신의 부모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군주를 진심으로 모실 수 있겠습니까. 상지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의 생사는 타고난 것입니다. 사람의 몸이 아픈 것도 자연적인 현상인데 이를 임시방편으로 편안하게 하는 의술만을 쓰는 자입니다. 점차 그에게 의지하다 보면 폐하도 마음대로 하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중부, 이들이 간신이라면 왜 지금까지 가만있었는가?”

“저 역시 폐하를 모시는 신하입니다. 그리고 신은 둑이 되어 흐르는 물이 넘치지 않게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둑이 사라지면 물이 넘칠 것입니다. 그 전에 그들을 멀리 쫓아 보내야 합니다.”

환공은 궁으로 돌아왔다. 그에게 관중의 마지막 충언은 무겁게 다가왔다. 관중이 환공에게 했던 간언을 엿들은 역아는 포숙을 찾았다. 그리고 이간질을 늘어놓았다. “어찌 중부께서 재상을 험담할 수 있습니까. 중부를 추천해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것이 바로 재상의 공이 아닙니까?” 포숙은 빙그레 웃으며 역아에게 말했다. “그렇지요. 관중을 천거한 것이 바로 나요. 내가 관중을 천거했던 가장 큰 이유는 그는 나라에 대한 충심만 있을뿐 사심이 없기 때문이요. 관중이 나를 그렇게 평가한 것은 정말 정확히 본 것이요.”

▶간신들에게 죽임을 당한 환공

환공의 정치적 동반자이자 춘추시대 최고의 명재상 관중이 죽었다. 관중이 죽은 후 환공은 그의 간언을 따랐다. 습붕을 재상으로 임명하고 역아, 수조, 개방을 궁에서 내쫓았다. 환공의 관중에 대한 무한 신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습붕 역시 몇 개월 뒤에 병으로 죽고 말았다. 포숙이 습붕의 빈자리를 채웠다. 하지만 불행은 한 번에 오는 법, 다음해 포숙마저 죽었다. 환공 통치의 든든한 기둥뿌리가 통째로 뽑힌 것이다. 그들이 죽자 국정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공은 급격하게 정치에 대한 관심을 잃었다. 매사 흥미도 없고, 인생 사는 재미가 없어진 것이다. 환공은 고민 끝에 역아, 수조, 개방을 궁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들이 돌아오자 환공은 비로소 재미를 찾기 시작했다. 수조는 여전히 미인을 공급하고, 역아는 입맛에 착 달라붙는 음식을 해 올리고, 개방은 간지럽지만 귀에 쏙쏙 들어오는 아부의 말을 해댔다.

기원전 643년 환공이 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다. 환공의 거처는 역아와 수조, 개방이 장악했다. 이들은 환공의 명령이라는 구실로 모든 대신들의 출입을 봉쇄했다. 환공은 방에 갇힌 신세가 되었다.

하루는 하녀가 방에 들어오자 환공이 “내가 배가 고프니 죽이라도 가져 오너라” 했지만 하녀는 “죽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환공이 “그럼 뜨거운 물이라도 가져오라, 갈증이 난다”고 명하자 하녀는 고개를 숙이고 “뜨거운 물 또한 얻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환공이 이유를 묻자 하녀는 “역아와 수조가 거처 밖에 담장을 쌓고 아무도 이 방을 드나들지 못하게 막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환공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내가 중부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처했구나. 슬프구나. 내 어찌 죽어서 저 세상에서 중부의 얼굴을 볼 수 있겠는가”라는 회한에 사로잡혔다.

환공은 외롭게 죽었다. 천하 영웅으로 춘추시대의 패자이며, 명군이었던 군주의 죽음치고는 너무나 비참한 최후였다.

환공의 죽음에도 불구 간신 세 명은 권력다툼에만 몰두했다. 그들은 환공의 시신을 방치했다. 무려 67일간 환공이 남긴 6명의 서자들이 치열한 암투의 혼란이 거듭됐다. 역아와 수조는 후궁 장위희와 결탁해 그녀의 아들 공자 무휴를 왕위에 올렸다. 본래 환공은 공자 소를 관중과 함께 후계자로 지명했었다. 하지만 공자 소는 송나라로 망명했다. 공자 소의 동생 공자 반, 후궁 밀희의 아들 공자 상인이 공자 무휴와 치열한 왕위 다툼을 시작했다. 간신 세 명은 여기서 갈라섰다. 역아와 수조는 공자 무휴를, 개방은 공자 반을 지지했다. 하지만 승자는 공자 무휴였다. 공자 반은 개방과 함께 위나라로 망명을 떠났다.

왕위에 오른 공자 무휴는 비로소 환공의 장례를 치렀다. 67일간 방치된 환공의 시신에서는 구더기가 우글거릴 정도였다. 송나라로 망명했던 공자 소가 송 양공에게 군사를 빌려 공자 무휴를 공격했다. 정통성에서 앞서는 공자 소의 공격에 제나라 명문가문들이 합세했다. 기원전 642년 공자 소는 공자 무휴를 죽이고 간신 수조를 잡아 목을 베는 참수형에 처했다. 역아는 도망길에 올랐다. 공자 소가 바로 제 효공이다. 효공은 내분을 수습하고 제나라를 개혁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제나라의 국력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10여 년을 군림하던 제 효공이 죽고 효공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위나라에 있던 공자 반이 개방과 함께 제나라를 공격했다. 그는 제 효공의 태자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제 소공이다. 간신 개방이 끝내 제나라의 마지막 정통성마저 흔든 것이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제 소공은 19년 동안 군주로 군림했지만 그가 죽자 공자 상인이 제 소공의 아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제 의공이다. 환공 사후 환공의 아들인 무휴, 소, 반, 상인 등이 골육상쟁을 벌이며 번갈아 왕위에 올랐다. 제나라는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 처세학 | ‘간신’ 얼굴은 두 개, 심장엔 칼, 혀에는 독

당 태종 때 명신 위징이 있었다. 위징은 당 태종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NO”를 외친 사람이다. 그 정도가 심하자 당 태종이 몇 번이고 위징을 죽이려고 마음먹기까지 했던 충신이었다. 그가 죽자 당 태종은 “나의 거울을 잃었다”고 슬퍼했다. 어느 날 당 태종이 후원을 산책하는데 잘생긴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태종은 혼잣말로 “이 나무가 참 좋구나”라고 하자 옆에서 우문사급이 “폐하, 제가 보아도 정말 나무가 잘 생기고 좋습니다”라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당 태종의 안색이 변하며 “위징이 살아있을 때 나에게 아첨배를 멀리하라 했다. 나는 아첨배가 어떤 자인가 항상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겠구나. 바로 너 같은 놈이 아첨배이다”라며 우문사급을 꾸짖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다는 말처럼 적절한 표현이 없다. 현명한 군왕이었던 환공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간신배 세 명에게 무너졌다. 간신배들은 환공에게 재미, 쾌락, 편안함, 익숙함을 선사했다.

사실 리더의 자리는 고독, 결단, 사색, 소통이 수반되어야 하는 불편한 것 투성이다. 천금 같은 무게를 지닌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리더는 수없이 많은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생식기를 스스로 거세하고, 아들을 죽여 요리로 만들고, 부모의 장례식에도 참석치 않는 것을 충성이라고 생각한 환공의 판단력은 실패로 결론 났다. 그나마 관중과 포숙이 있어 간신들의 발호가 좀 늦어지긴 했어도 환공은 제나라를 망국으로 몰아넣은 불명예를 역사에서 지울 수 없게 된 것이다. 입에 넣어서 달고, 귀를 간질이는 간신들의 아부를 멀리하는 것은 사실 리더의 몫이다. 용인술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교훈인 것이다.

모 회사의 K상무의 이야기다. 그는 많은 노력과 실적을 올리며 승승장구한 케이스이다. 이사로 승진할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이제는 자신이 회사에서 고개를 숙이는 사람보다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그는 여전히 조심, 또 조심한다. 오너 회장의 호출이 있으면 머리와 복장을 다시 다듬고 가글도 빼놓지 않는다. 골초였던 K상무는 회장이 담배 냄새를 유난히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그날로 담배를 끊기도 했다.

K상무는 저녁 자리에서 술이 한 순배쯤 돌자 후배들에게 교훈이라며 ‘처세의 기본’을 강의했다. 그의 결론은 ‘무엇이든 내 기준이 아닌 리더의 기준에 맞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회장 입장에서는 상무나 전무나 실력차이가 엄청나다고 보지를 않아. 물론 특별한 능력의 소유자도 있지만 이미 그 정도의 자리에 오를 정도면 일정 부분 능력, 충성심에서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보는 것이지. 그렇다면 회장이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겠어. 자신에게 쓴소리 하는 임원? 그런 소리를 할 임원도 없지만, 아니야. 듣기 좋은 소리 하는 놈이 좋은 거야. 뻔히 아부한다는 것 알지만 그래도 듣기 좋은 소리가 더 나은 것이지. 사실 우리가 받는 월급에는 아부값, 매값이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구.”

조금은 씁쓸한 이야기지만 현실이다. 특히 안정된 조직일수록 변화와 파격에 본능적인 알러지 반응을 보인다. 말로는 혁신을 외치지만 많이 가진 자, 높은 자리에 있는 자에게 혁신은 ‘자신의 것을 지키고’가 전제 조건인 것이다. 하지만 아부를 일삼는 간신은 조직과 리더를 서서히 파괴하는 시한폭탄이다. 모든 조직은 그 시한폭탄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발전하고 성장하는 회사는 리더의 자각과 조직의 건전성에 있는 것이다.

아부, 잘해도 탈이고, 너무 못해도 화를 부르는 뜨거운 감자이다.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자. 아부에 전혀 소질이 없다면? 그럼 다른 것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 실력과 능력 그리고 성실과 진정성을 ‘조직에 대한 아부’로 평가하는 괜찮은 리더도 있기 때문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561호 (17.01.10일자)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티라이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