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의 속살]스모그-최악 공기 오염, 생활필수품 된 마스크

2017. 1. 4.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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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시는 오염물질 배출 기업 제재, 전기차 세제 혜택 등 각종 스모그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7m 높이의 세계 최대 공기정화탑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효과는 ‘글쎄’ 수준이다.

1년 전 이맘때쯤 베이징 부임을 준비할 때, 회사 책상에는 수시로 마스크가 쌓였다. 선후배들이 “꼭 마스크 끼고 다녀라”는 걱정 어린 당부와 함께 선물해 준 것이다. 한 선배는 메르스 사태를 취재할 때 쓰던 의료용 마스크 한 상자를 건네주었다. 위쪽 전체가 철사로 되어 있는 의료용 마스크는 외부의 어떤 공기도 차단해 줄 것처럼 든든해 보였다.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서도 베이징의 연관 검색어는 스모그다. 베이징으로 가는 것은 곧 스모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선후배들의 마음이 담긴 마스크 여러 상자와 함께 부임했지만 마스크가 절박할 정도로 심각한 스모그는 다행히 만나지 못했다. 겨울의 끝자락에 온 덕분이기도 했고, 2015년에 비해 2016년 공기질이 더 나아졌다는 평가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겨울이 오면서 마스크는 선후배들의 사랑의 징표가 아니라 생활필수품이 됐다. 지난달 15일 송년 모임에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자 출발역, 환승역, 도착역까지 수시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내용은 심각했다. 16일 오후부터 21일까지 최고 수준인 스모그 적색경보가 내려지니 건강에 유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휴대전화로도 같은 내용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최고 수준인 스모그 적색경보가 내려진 2016년 12월 중순 베이징의 모습. 집 앞에 있는 학교 건물이 스모그에 가려 형체만 희미하게 보일 뿐이다. / 박은경

‘이렇게 푸른 하늘인데 무슨 적색경보란 말야’라며 적당히 무시했고, 다음날 아침까지도 날씨가 나쁘지 않은 것을 보며 ‘일기예보가 틀릴 수 있다’며 위안을 삼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16일 밤부터 시작된 스모그는 17일부터는 공기질량지수(AQI)가 300에서 400 후반까지 올라가면서 일기예보의 과학성을 입증해버렸다. 한국에서는 200에 근접하기만 해도 매우 심각하게 보는데, 날씨 앱에서 표시해주는 최대 수치인 500에 가까운 숫자가 나오자 두려운 생각까지 들었다.

최악의 스모그가 다가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밖에서 10분 넘게 있으면 목이 칼칼하고, 새로 인테리어한 집에 들어섰을 때처럼 눈이 따갑다. 매캐한 자동차 매연 같은 냄새가 공기 속을 휘젓는다. 집에 있는 공기청정기를 ‘자동’으로 설정해 놓았는데, 평소에는 에어컨 소리 정도였던 청정기가 갑자기 진공청소기 같은 굉음을 내며 돌아갔다. 택배기사가 와서 잠시 몇 분간 현관문을 열었는데도 조용하던 청정기가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바쁘게 돌아갔다. 이런 스모그가 며칠씩 지속되면 마음도 한없이 우울해진다.

중국 당국도 스모그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수많은 조치들을 내놓고 있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 개막식에서 한 정부 업무보고에서 스모그를 “강펀치로 다스리겠다”고 말했다. ‘스모그세’와 ‘교통혼잡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베이징시는 오염물질 배출기업 제재, 전기차 세제혜택 등 각종 스모그 개선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7m 높이의 세계 최대 공기정화탑까지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효과는 ‘글쎄’ 수준이다.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웨이보와 웨이신에는 ‘스모그 보호방법’이라는 글이 유행하고 있다. ‘스모그에 시달리는 자기 자신을 위로하려면 마스크를 써라. 가족을 위해서라면 성능 좋은 공기정화기를 사라. 돈 많고 시간 많은 사람이라면 베이징 밖으로 여행을 가고, 부자라면 이민을 가라. 국가라면 바람이 불어 스모그를 날려주기만 기다리고 있으면 된다. 그렇다면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보호방법은? 바로 스모그를 몽땅 들이마셔 버리는 것이다.’

스모그가 자연히 없어지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무능한 국가에 대한 풍자와 스모그를 들이마시며 살아야 하는 국민들에 대한 자조가 묻어나는 글이다. 남들보다 많은 돈도, 시간도 없는 평범한 시민인 나로서는 그저 마스크를 쓰고 자기 위로하는 수밖에 없겠다.

<박은경 경향신문 베이징 특파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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