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르포] "연말·새해 특수 다 옛말"..얼어붙은 소비심리에 전통시장 상인들 '발 동동'

박수현 기자 2017. 1. 4.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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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람이 유독 없어. 돌아다녀 봐요. 아무도 없잖아요. 요새 경기가 너무 안 좋아서 그래.”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광장시장 골목. / 박수현 기자

“개시한 지 5시간 동안 손님이 한 명도 없어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겠다”는 최모(62·여)씨.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에서 작은 모직 원단 가게를 운영하는 그는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뭐 찾으세요”, “와서 보시고 가세요”, “싸게 드릴게”라고 말을 붙이며 호객을 하는 것도 이젠 민망할 지경이라고 했다.

기자가 2~3일 방문한 서울 전통시장들은 전반적으로 손님이 없어 한산했다. 한낮인데도 셔터가 굳게 닫힌 점포도 많았다. “문을 닫은 곳이 많네요”라고 옆 점포 상인에게 말을 붙였더니 “손님이 없는데 나와 뭐하느냐”면서 “나는 집에 있어도 딱히 할 일이 없어 나와 있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 손님보다 상인이 더 많은 시장 골목...먹자골목만 북적거려

한국은행의 ‘2016년 12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 심리와 체감 경기는 금융위기 이후 7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실제로 백화점과 대형마트, 전통시장을 막론하고 유통가는 “재작년보다 작년이 어렵고, 작년보다 올해가 더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지난 2일 찾은 광장시장. 시장 명물인 김밥과 빈대떡 등 먹거리를 파는 곳은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모퉁이마다 위치한 선물 가게에서는 허니아몬드 과자같은 인기 상품들의 가격을 묻는 서툰 한국어가 들렸다. 어묵과 떡볶이를 먹으며 연신 사진을 찍는 대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자칫 방심하다가는 앞뒤 사람과 부딪힐 정도의 인파였다.

하지만 그 외 상점들 근처엔 지나가는 사람조차 없었다. 바로 옆 양복점 골목도 인기척이라곤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10곳 중 5곳이 넘는 가게들은 셔터가 굳게 닫혀 있었다. 이곳에서 남성 수제 양복집을 운영하는 김모(53·남)씨는 “신정에는 원래 손님이 적기는 한데 오늘까지 휴업이라 문을 연 곳이 많지 않다”며 “손님이 많았으면 휴일에도 다들 쉬지 않았을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형형색색의 고운 한복이 진열된 가게들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가게마다 주인들은 신문이나 TV를 보거나, 마실 나온 주변 상인들끼리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가끔 아동용 한복을 만지작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을 제외하곤 손님이 없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던 한 한복집 상인은 “요새 누가 설빔을 하냐”며 “장사 안된다고 마냥 문 닫아놓을 순 없으니 나와서 앉아있기라도 한다”고 말했다.

채소를 파는 이모(51·여)씨는 “사가 봐야 주부들이 반찬거리 조금 사는 게 전부”라며 “저녁에 떨이로 내놔도 안 팔리고 있다”고 했다. 건너편에 있는 쌀과 고추를 파는 가게엔 아예 주인이 자릴 비운 상태였다.

2일 오후 남대문시장. 손님이 없자 상인들이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 / 박수현 기자

◆ “구경만 할게요”…열릴 줄 모르는 소비자 지갑

남대문 시장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거리엔 온통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관광객들이 북적였지만 대부분 구경만 하고 지나갈 뿐이었다.

즐비하게 늘어진 홍삼가게 앞에는 상인들이 먼 곳을 보며 앉아 있었다. 먼지떨이를 손에 쥐고 애꿎은 신발만 여러번 터는 상인도 눈에 띄었다. 액세서리 도매상가에는 귀걸이와 목걸이에 보석을 붙이는 등 물건을 준비하는 상인들만이 가득했다. 역시나 손님은 없었다.

리어카 노점상에서 스카프를 파는 신모(66·여)씨는 “원래는 유동인구가 많았던 곳인데 최근엔 많이 줄었다”면서 “그나마 일본, 대만에서 외국인들이 많이 오긴 하는데 물건을 사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말했다.

큰 골목 모퉁이에서 모자가게를 운영하는 40대 남성 상인은 “다들 안 팔린다고 난리”라며 “우리는 도매 위주로 장사하는데 주문도 잘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옆에서 계산을 돕던 그의 아내는 "누가 새해 복 많이 받으라길래 ‘아, 연말이구나’했다”며 “이번에는 연말 분위기를 전혀 못 느꼈다”고 했다.

겨울이지만 초봄 같은 날씨도 문제라고 상인들은 하소연한다. 지하 수입 상가에서 숙녀복을 판매하는 한 여성 상인은 동료에게 “날씨가 춥질 않으니 뭐가 팔리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저녁 5시가 조금 지나자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이미 일찌감치 셔터를 내린 옷 가게들 앞에서 시계를 팔던 한 남성 상인은 “안 팔리니까 빨리 들어가려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 영업 시작 시간에도 문 안 연 가게들 많아…“매출 작년 절반도 안돼”

3일 오전 동대문종합시장. 개장시간이 한참 지나도록 점포들이 문을 열지 않고 있다. / 박수현 기자

3일 찾은 동대문 종합시장도 평소보다 조용한 아침을 맞고 있었다.

평일 영업 시작 시간이 오전 8시임에도 문을 닫은 가게들이 문을 연 가게보다 월등히 많았다.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 대부분은 추위를 피하기 위해 동대문역에서 바로 이어진 종합상가를 거쳐 목적지로 향하는 이들이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물건을 나르는 상인들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무색하게 줄담배만 피우다 들어가는 상인들도 보였다.

동대문시장 A동 1층에서 카페트를 파는 한 남성 상인은 “작년보다 매출이 30~40% 떨어졌다고 보면 된다”며 “손님이 없으니까 다들 가게 문도 늦게 연다”고 말했다.

인근에 위치한 신진시장에서 생선구이집을 운영하는 한 남성 상인은 “여기(동대문) 사람들만 오지, 다른 데서는 잘 오지도 않는다”며 “장사가 안되는 건 어딜를 가나 다 비슷비슷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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