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찰에 정유라를 신고한 JTBC 기자, 어떻게 볼 것인가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 입력 2017.01.03. 13:34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기고]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관찰자로 남았어야"

[미디어오늘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

JTBC는 2일 덴마크에 체류 중이었던 정유라 체포 소식을 전했습니다. 정씨가 체포되는 순간을 찍은 화면도 단독으로 내놨습니다. 

정유라가 체포될 수 있었던 건 현지에서 정유라를 취재하고 있었던 JTBC 기자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JTBC 기자의 신고로 정씨가 체포되고, 보도까지 나온 상황인데 이를 두고 저널리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한 박상현 메디아티 이사의 글을 싣습니다. 반박의 글도 환영합니다. 유의미한 논쟁이 되길 바랍니다. 

A minority report

1.

나는 어제 저녁 JTBC가 언론계에서 돌이킬 수 없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고 본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그 방송사가 보도 윤리를 어겼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보도 윤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 지체가 시대착오적으로 보여서 사용하지 못할 뿐, 이제까지 규범으로 여겨져온 중요한 원칙 하나를 가볍게 던져 버렸다는 게 내 생각이다.

▲ 1월2일 jtbc 뉴스룸 보도
2.

정유라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JTBC 기자는 현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체포되는 장면을 촬영해서 보도한 것은 기자는 사건을 보도만 할 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명백하게 어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가 기자이기에 앞서 하나의 시민이고, 그의 신고는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는 개인의 결정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시민으로서 신고하기로 했다면 보도를 포기했어야 했다. 그리고 만약 보도하기로 마음먹었으면 끝까지 관찰자로 남았어야 했다. 그게 보도윤리다. 그런 게 2017년 언론계에 남아있다면 말이다.

3.

CNN의 정치부 에디터인 레이첼 스몰킨은 2006년에 American Journalism Review에 기고한 글에서, 언론을 공부하는 대학생들과 나누다가 깜짝 놀랐다며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말리아에서 구호활동을 취재하던 기자에게 구호요원이 물을 나눠주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빨리 나눠주지 못하면 폭동이 날 것 같다는 거다. 기자는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하는가?"

활발한 토론을 기대했던 스몰킨은 그 이야기를 들은 학생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도와줘야 한다는 대답을 하는 데 충격을 받았고, 기자는 역사의 관찰자이지 참여자가 아니라고 가르쳐줘야 하는 상황에 의아해했다.

"요즘 학생들"이 '보도를 하는 기자는 자신이 취재하는 상황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일견 당연해 보이는 원칙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아이티에서 지진피해를 보도하던 앤더슨 쿠퍼가 생방송 도중에 부상당한 아이를 구조하며 영웅이 되는 시대에 사는 기자들에게 냉정한 관찰자의 역할을 요구하는 건 고루해 보인다. 기자들이 이제는 스마트폰 카메라와 트위터로 무장한 일반시민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손발을 다 묶는 원칙을 지켜야 할까?

4.

하지만, 그것이 정말 불필요한 원칙일까?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자연사진작가의 수상작에 사람들이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새끼새들이 가지에 줄줄이 매달린 장면은 자연에서 일어나기 힘든 장면이고, 그것을 우연히 목격하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는 주장이었다. (어두운 곳에 둥지를 짓는 새들을 찍기 위해 가지를 쳐냈고, 심지어 본드로 다리를 붙였다는 혐의까지 받았다).

야생의 자연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먹이사슬 속에서 일어나는 일에 개입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가령, 어린 새끼들 앞에서 치타에게 물려죽을 위기에 처한 어미 사슴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알려서는 안된다는 원칙 말이다.

사슴 한 마리를 살려준다고 아프리카의 생태계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선례는 다른 개입을 불러온다. 카메라맨들이 너도나도 불쌍한 사슴 살리기에 나서면서 유튜브에서 스타가 되기 시작하면 아프리카의 생태계는 영향을 받게 될 수 밖에 없다.

▲ 1월2일 jtbc 뉴스룸 보도
5.

정유라는 체포되었어야 한다, 그것도 진작에. 하지만 그것은 기자의 역할이 아니다. 양심있는, 행동하는 시민으로서의 역할과 기자의 역할은 다르다.

특히 자신의 신고로 자신이 속한 언론사의 시청률이 올라간다면 그 때부터는 이해의 충돌(conflict of interest)이라는 심각한 문제 마저 낳는다. 신고하고 체포되는 장면까지 방송한 JTBC 보도는 재난 현장에 있다가 갑자기 도와줘야 하는 위치에 처한 기자의 윤리를 논하는 수준이 아니라 훨씬 더 심각한 명백한 이해의 충돌이다.

애널리스트라는 사람이 방송에 A사의 경영호전을 이유로 구매를 독려하는 것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아니지만, 그가 A사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비록 A사의 경영이 실제로 호전되어도 말이다.

6.

"그럼 경영이 호전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항변하는 애널리스트는 없다. 그들은 그 정도 윤리를 최소한 알고는 있다. 방송을 하는 애널리스트는 자신이 다루는 분야의 주식을 보유하면 안된다.

같은 이유로 JTBC 기자는 "그럼 눈 앞의 범인을 신고하지 말라는 말이냐"고 항변해서는 안된다. 보도를 하기로 했다면 신고하지 말았어야 하고, 신고하기로 했으면 보도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게 프로페셔널리즘을 지키는 댓가다.

미국대학에서 교수나 조교는 자신이 가르치는 과목을 듣는 학생과 데이트를 할 수 없다는 규칙이 있다. 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학생은 그 수업을 마치거나 포기해야 한다. 그 규칙이 없을 때 일어날 엄청난 결과를 생각하면 "어떻게 사랑을 막을 수 있느냐"고 항변할 사람은 없다.

7.

나는 JTBC가 이번 박근혜-최순실 문제를 다루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권력 앞에 움츠러 들었던 언론사, 특히 방송사의 대열에서 이탈해 진정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용기와 직업정신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제 저녁에 JTBC가 했던 보도를 상업적인 결정이라고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보도가 앞으로 한국언론에 중요한 선례를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제까지 아무도 넘어서지 않았던 선을 넘었고, 열지 않았던 문을 열었다. 비록 JTBC는 선한 의도로 문을 열었겠지만, 문이 한 번 열리면 그리로 쓰레기가 들어오는 것은 시간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