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고리즘을 넘어서]①엄마에게 육아 전담시키는 한국 사회..전업맘도 워킹맘도 '배터리 방전' 직전

이영경 기자 2017. 1. 2.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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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엄마의 생애주기 맘고리즘

일러스트 | 순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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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엄마는 영원한 엄마다. 직장을 다니든, 전업주부가 되든, 일을 하다 그만두든 한국 엄마들은 일평생 ‘육아의 고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웹툰작가 이은영씨(31)의 ‘엄마 생활’ 시작은 ‘전업맘’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지금의 남편과 불같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했고, 이듬해 첫아이를 낳았다. 연년생으로 둘째 아이까지 낳자 하나일 때와는 차원이 다른 강도 높은 육아와 고립된 생활로 “미치기 일보직전”이 됐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는 너도나도 행복한 엄마들 천지고, 현실을 제대로 꼬집는 만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그림을 한 편씩 그려 인터넷에 올렸더니 반응이 왔다. 포털사이트 다음에 필명 ‘순두부’로 ‘나는 엄마다’ 연재를 시작하면서 ‘워킹맘’이 됐다.



처음에는 그림 그리는 게 손에 익지 않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꽤 힘들었지만, 대개의 ‘워킹맘’처럼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잠이 부족해 힘들긴 하지만 만화 그리는 일이 너무 즐거워 가뿐히 이겨낼 수 있다”는 이씨는 7세, 6세의 연년생 아들을 키우느라 목청이 갈수록 커져 ‘득음’의 경지에 이르렀다.



남편은 한국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처음부터 육아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건 아니지만, 이씨가 ‘워킹맘’이 된 지금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결과를 이뤄내기까지 남편의 멱살을 스무 번은 잡은 것 같다”는 게 이씨가 밝힌 비결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아이에 대한 소홀함으로 하루에 수십번을 자책하는 저를 위로는 못할망정 ‘네가 더 잘해야 한다’며 채찍으로 등짝을 휘두르는 기분입니다.” 이 그림은 작가 이씨가 육아를 여성에게 전담시키면서 굴러가는 한국 사회의 작동 방식을 ‘맘고리즘’으로 표현했다. 출산→육아→직장→부모에게 돌봄 위탁→퇴사→경력단절→자녀 결혼→손자 출산→황혼 육아…. 결국 돌봄노동의 고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성의 고통을 그렸다.

■맘고리즘이 계속되면, 엄마도 가정도 사회도 행복할 수 없다

“저는 사라지고 엄마만 남는 것이죠. 내가 젖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여성학자 김고연주 박사) 출산의 고통 끝에 무사히 아이가 태어났다. 기쁨과 감격도 잠시, 이제 진짜 ‘엄마 노릇’이 시작된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아이를 갖는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일생이 통째로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1. 젖소기

걷기도 힘든 몸으로 난생처음 보는 간호사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아이에게 수유하는 법을 배운다. ‘노브라’로 추정되는 사진을 올렸다는 이유로 여성 연예인이 논란이 되는 한국, 가슴은 철저히 감추어야 하는 사적 영역이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갑자기 가슴이 ‘공적인 것’으로 변한다.

출산 후 필수 코스가 된 산후조리원. 포대 자루 같은 옷, 수척하고 부은 얼굴을 한 여자들이 수유실에 모인다. 젖을 잘 먹는 아기의 엄마는 여유가 있다. 들어온 지 하루나 이틀밖에 안된 엄마는 젖도 잘 돌지 않고 아이도 잘 먹지 못해 쩔쩔맨다. 대중목욕탕에도 잘 다니지 않던 그녀들이지만 그곳에선 모두 가슴을 드러내고, 가슴은 수유를 위한 관리의 대상이 된다. 한때 분유가 모유보다 좋다고 믿었던 시대가 있었다지만, 지금은 모유가 ‘진리’인 시대다. 엄마들은 젖이 잘 도나 안 도나, 아이가 젖을 잘 빠나 못 빠나로 자신의 위치를 자리매김한다. 방에서는 우스꽝스럽게 생긴 깔때기를 가슴에 대고 유축을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아이와 둘만 남는 ‘독박육아’가 시작된다. 아이를 먹이고, 아이를 먹이기 위해 먹는다. 어쩌다 분유라도 먹이게 되면 ‘아이가 모유를 잘 안 먹으려 들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하는 생활. ‘포유류’가 된 것 같다.

서울의 한 어린이집 앞에서 퇴근길에 아이를 찾으러 간 엄마가 아이를 반갑게 안아주고 있다. 직장에서 퇴근해 ‘제2의 직장’인 집으로 돌아가는 ‘워킹맘’인 그녀는 부모가 모두 일찍 퇴근해 아이를 함께 돌볼 수 있는 삶을 꿈꾼다.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2. 맘충이라고?

아이가 태어나고 50일쯤 지나서였을까. 잠깐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 도망치듯 밖으로 나왔다. 막상 갈 곳은 없었다. 편의점에서 무알코올 맥주를 한 캔 사서 동네 놀이터에 앉아 단숨에 들이켰다.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왜 아기 키우는 게 죽을 것만큼 힘들다는 걸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거지?”

아이를 키우는 일은 보람되고 기쁘지만 외롭다. ‘독박육아’에 씨름하는 엄마들은 숨통을 틔우려, 혹은 불가피하게 아이를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도시는 엄마에게 적대적이다. 동네 엄마와 커피숍을 찾거나, 공공장소에서 혼자 아기를 챙기는 게 버거워 허둥지둥하는 초보 엄마의 모습은 ‘맘충’이란 이름으로 호명됐다. 맘충은 엄마들에게 ‘완벽한 엄마가 되라’는 자기검열로 작용한다. ‘민폐 끼치는 이기적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마치 아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아이가 넘어져 우는 통에 미처 기저귀를 제대로 버리지 못하고 나왔을 때, 식당에 들어가지 않겠다며 울고 버티는 아이를 벤치에 앉혀 밥을 먹일 때 아마 맘충이라고 손가락질 받았을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엄마라는 유일 정체성으로 아이를 키우는 데 전력할 것을 요구받고 수행하면서, 밖에서는 아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길 기대받는 모순적 상황은 이때부터 시작된다.

3. 워킹맘·경단녀·전업맘…뭐든 고르라고요?

육아서는 말한다. “첫 3년간 엄마와의 안정적 애착이 평생을 좌우한다” “3살까지는 엄마가 키우는 게 가장 좋다”는 문장들이 머리와 가슴을 쾅쾅 때린다. 3년은커녕 1년의 육아휴직도 제대로 보장받기 힘든 한국에서 저 육아서는 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쓰인 걸까. 남편은 나가서 돈을 벌고 아내는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던 가족모델은 적어도 20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깨졌다. 한국 가구의 절반가량은 맞벌이로 유지된다.

안정적 애착에 대한 걱정은 차라리 사치스럽다. 직장으로 돌아가는 길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다. 아이를 봐줄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가 있다면 행복한 경우다. 어린이집 아동학대 뉴스가 매일같이 나오는 현실에서, 핏줄은 믿고 기댈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의지처다.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착취하며 ‘워킹맘’의 대열에 들어간다.

아이를 봐줄 부모가 없다면 선택지는 줄어든다. 고비용의 베이비시터를 쓰거나, 어린이집에 아이를 종일 맡기는 워킹맘이 된다. 아이가 전염병이라도 걸려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게 되는 일이 반복되고 아이에 대한 죄책감이 커지면 ‘경단녀’(경력단절여성)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그런데도 기업 경영자들은 말한다. “여성들도 프로야구 선수처럼 일에 임했으면 좋겠어요. 왜 운동선수가 좋은 성적을 위해 밤새 훈련하는 일은 칭찬받을 일이고, 직장인이 야근하는 것은 흠으로 볼까요.”

놀랍게도 이 말은 여성으로 네이버의 서비스 총괄수장에 올라 화제가 된 한성숙 부사장의 말이다. 육아가 여성에게 전담되는 사회적 맥락을 삭제한 채 운동선수처럼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여성이 직장에서 도태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과도 같다. 이게 한국 기업의 ‘일·가정 양립’에 대한 인식 수준이다.

워킹맘이 집에선 아이에게 소홀하고 직장에선 싱글처럼 일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이등 시민’으로 살아가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면, ‘전업맘’은 공적 영역의 자아가 사라진 듯한 상실감에 시달린다. 한국 사회는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동이 들어가는 돌봄노동을 개별 가정의 여성에게 전담시키면서도, 그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맘충이란 용어에는 ‘남편이 벌어준 돈으로 노는 여자’라는 왜곡된 인식이 깔려 있다.

“전업맘, 워킹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부모가 애를 돌봐줄 수 있으면 워킹맘,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전업맘, 버티고 버티다 떨어져 나가면 경단녀가 되는 것인데 감히 누가 우리를 이렇게 구분하나.” 둘째를 낳고 두 번째 육아휴직을 쓰고 있는 임아영씨(35)의 말이다.

4. 황혼육아

엄마는 그 좋다는 초등학교 교사직을 둘째인 나를 갖고 그만뒀다. 아빠가 도와주지 않는 집안일과 직장을 병행하는 게 지긋지긋할 정도로 힘들었던 엄마는 미련 없이 사표를 썼다고 했다. 엄마의 전업주부 시대는 IMF 외환위기와 함께 종말을 맞았다.

많은 가장들을 거리로 내몰았던 ‘명예퇴직’ 바람이 불었고, 아빠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두 분은 함께 고향으로 가 식당을 운영했다. 엄마는 다시 워킹맘이 됐다. 새언니가 쌍둥이를 낳으면서 엄마는 지방에서 왔다갔다 하며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 했다.

전체 어린이집 가운데 국공립 비중은 6%에 불과할 정도로 공적 육아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에서 아이를 믿고 맡길 데가 없는 엄마들은 부모의 희생에 다시 한번 기댄다. 부모는 애지중지 교육시키고 키운 딸이 육아 때문에 자신의 꿈을 접는 게 아쉬워 육아전선에 다시 뛰어든다. 딸 대신 일을 그만두고 ‘경단녀’가 돼 육아를 도맡는 엄마도 있다. 한국에서 한번 ‘엄마’가 되면, 육아에 졸업은 없는 셈이다. ‘기승전육아’, 이것이 한국에서 여성에게 육아를 전담시키는 ‘맘고리즘’의 작동 방식이다.

5. 맘고리즘을 넘어서

맘고리즘은 무한 반복되는 육아의 ‘뫼비우스 고리’와도 같다. 일과 육아의 줄타기를 하는 워킹맘들이 늘고 있지만, 남성들과 직장문화, 사회제도는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일’로 치부하고 여성들의 희생을 강요한다. 한번 들어오면 헤어나기 힘든 맘고리즘에 여성들은 편입되지 않는 것을 택한다. 저출산이 이슈가 된 이후 정부는 저출산 대책을 쏟아내지만, 실효성도 진정성도 없는 정책들이 난무한다. 일자리 현장에서는 그나마도 지켜지지 않는다.

아빠들도 맘고리즘의 희생자다. 직장과 사회는 남성이 육아에 동참해 자식과의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할 시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새벽부터 밤까지 직장에 매여 개인적 삶에서 소외되는 남성 역시 아빠의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저출산 사회, 행복하지 않은 아이와 엄마와 아빠, 맘고리즘은 올바르지 않을뿐더러 지속가능하지도 않다. 2017년, 맘고리즘을 넘어서 남성과 사회가 함께하는 돌봄의 문화와 제도를 만들어 갈 것을 제안한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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