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

조을선 기자 2017. 1. 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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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에게 듣다①


팽목항과, 안산, 그리고 광화문. 기자가 기억하는 한 세월호 참사 현장 그 어느 곳을 가던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벌써 2년 9개월이 흘렀다. 외로움과 분노의 한 가운데서 그 긴 시간 어떻게 버티고 있었을까, 짐작조차 어렵다. 늘 그 자리를 지켜온 그와 달리 기자는 출입처가 바뀌면서 자연스럽게 참사에서 멀어졌다. 언뜻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 불편하기만 한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하는지 모르던 어느 날, 그를 우연히 출입처에서 마주쳤다. 무거운 마음처럼 발걸음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취재파일을 연재하게 되면서 유경근 집행위원장을 바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7시간과, 특조위, 인양 등 여러 현안에 대한 유족 측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장문의 안부 메시지 끝에 인터뷰를 제안했는데, 다행히 흔쾌히 동의해주었다. 며칠 뒤 종로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유경근 집행위원장. 그를 마주한 순간, 희끗희끗한 머리칼과 이마의 주름살, 구김 간 옷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지난 힘겨운 시간들이 느껴졌다. 집행위원장이기 전에 아직 위로가 필요한 쓸쓸한 ‘예은 아버지’의 모습이 들어왔다. 

유경근 세월호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 홀로 일어나지 않은 사건, 세월호 참사…"드러날 진실이 두렵다" 

최근 유족들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했다. 대통령의 탄핵안이 국회에서 통과됐고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지금, 그리고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과 세월호 침몰에 대한 끝없는 의혹이 쏟아지고 있는 지금, 유족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유경근 집행위원장 : 상황 자체는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아요. 1년 전이나 2년 전이나. 아직도 많은 가족들이 광화문과 팽목항, 동거차도를 지키고 있어요.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번 시국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해서 이 정부가 참사를 해결하고 이 사회를 안전한 사회로 만드는 데 그런 일들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런 상황에서 고민이 많았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세월호 문제를 안 좋은 의미에서 정치적인 것으로 치환하려고 하는 시도들이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정부에 반하는 모습으로 행동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냐, 고민이 많았죠. 저희는 결론을 내렸어요. 현 정부에서 참사의 진실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이죠. 그리고, 초기엔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참사가 우리 사회에서 단독으로 홀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라는 걸 많이 깨달았어요. 지금은 자연스럽게 유사한 사례나 사회 문제들을 찾아보기 시작하고 그런 분들과 깊이 연대도 하고 활동하고 있어요.
 
정부가 국정농단 한 가운데서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대해왔는지를 보면서 두 가지 마음을 갖게 됐어요. 특히, 요새 화제가 되는 세월호 7시간과 관련한 단편적인 사실들이 폭로 되기 시작하면서 예요. 하나는 이제는 무언가 밝혀질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이에요. 현 정부에서는 절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됐고, 헌재 결과를 기다리고 있죠. 정권이 생각보다 빨리 바뀔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렇다면 우리도 희망을 갖고 진실 규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죠. 그런데 한 편으로는 대통령이 무엇을 했고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병우 전 수석이 무엇을 했는지 드러나면서 두려움이 생겼어요. 모든 진실이 다 드러났을 경우에 과연 우리가 그걸 그대로 받아들일 수 진실이 드러났을 때 기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 복잡하고 불안한 상황에 있는 것 같아요. 
 


● 답답한 청문회, 하지만 그 자체가 보여주는 게 있었다 

청문회장에서 헛바퀴처럼 도는 국회의원들의 질문, 그리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의 대답. 보고 있는 국민들마저 더욱 답답하고 분노하게 했던 장면들을 유족들도 모두 지켜봤다. 국민들보다 더 허탈해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대답은 조금 의외였다. 
 
유경근 : 3차 청문회 때 보충질의 끝나고 마무리 발언할 때 바로 나와버렸어요. 끝까지 앉아있다 마주치면 정말 사고 칠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니까요. 아예 밖으로 나와서 차에 가서 앉아있었어요. 한편으로는 우리가 예상 못하고 간 건 아니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답답하게 질문하거나, 특히 여당 의원들이 전혀 빗나가는 질문 할 때는 청문회가 뭐 이러냐, 비판들 많이 하셨는데요. 우리도 참 마음에 안 들고 더 잘 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컸어요. (기자: 나중에 방청 소감을 ‘살의(殺意)’라는 단어로 표현했는데, 얼마나 괴로웠을지..) 그게 결정적으로 김석균 전 해경청장 때문에 그랬어요. 그 자리에서 한 얘기는 2년 전부터 해온 얘기를 똑같이 반복한 거예요. ‘선원들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며 모든 책임을 선원들에게 떠넘기려고 하는 모습들. 오래 전부터 반복적으로 들었고 거짓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고, 감정이 막 치솟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그 와중에도 분명 드러난 건 있다고 생각해요. 지켜본 사람들은 "거짓말 하는 거잖아, 책임을 왜 떠넘기기만 하지?" 이런 생각들을 했을 거예요. 그 자체가 국민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청문회든 특검이든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밝힐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랄 뿐이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청문회를 지켜보는 유족들



● 뜨거웠던 촛불집회, '그녀를 만나기 전 100미터 앞' 

2년 전 무더운 여름, 유족들이 청와대에서 200m 떨어진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대통령에게 면담을 요청했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에 가로막혀 유족들은 더 다가갈 수 없었다. 대통령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당시 유족들의 불신과 분노는 더 깊어졌다. 2년이 지나, 유족들은 그 청와대 100미터 앞으로 다가섰다. 이번엔 만나 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내려오라는 요구였다. 하지만, 이번엔 외롭지 않았다. 촛불은 든 시민 수십 만 명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유경근 : 청와대 앞에서 어느 노래 제목처럼 ‘그녀를 만나기 전 100미터 앞’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었는데, 촛불 집회 당시에 정말 청와대 앞까지 갔었죠. 엄마들은 울었어요. 기가 막혀서. 이만큼 더 들어오려고 2년 넘게 싸웠나, 이 만큼이라도 왔으니 희망이 있다, 복합적인 감정이었어요. 분명한 건 국민들이 모이니까, 힘을 합치니까 됐다는 거죠.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것도 국민의 힘으로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대통령 누가 되고, 국회 의석 수가 어떻게 되고는 나중 문제고 일단 국민 힘이 모여야겠다, 그것 때문에 희망이 더 커진 것 같아요. 실제로 대통령 탄핵안 표결도 됐고, 지금도 촛불 열기가 식지 않고 있어요. 처음엔 국회도 대통령 탄핵 안 하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촛불 집회가 더 커지면서 국회도 대통령이 탄핵 대상이라는 걸 깨달았잖아요.



● 오랫동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그 말, '세월호 7시간'

촛불 집회 현장에서도 세월호 7시간은 중요한 주제였고, 대통령의 탄핵안 사유에도 포함됐다. 헌재도 대통령에게 이를 엄중히 묻고 있다. 국민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작 세월호 참사 유족들은 오랫동안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던 말이었다. 
 
유경근 : 처음에 고민이 많았어요. 처음 촛불 집회 나갈 때,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우리가 가서 뭘 해야 하나. 대통령이 하야하게 해서 세월호 참사 규명할 수 있는 건 맞는데, 오히려 복잡한 시국 속에서 세월호가 잊히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도 있었죠. 우리는 뭘 해야 할지 토론하다가, 첫 촛불 집회 때 우리는 세월호 7시간을 이야기하기로 했어요. 사실 세월호 7시간은 정말 중요한 얘기지만, 그전엔 공개적으로 얘기하지 않았어요. 정부가 세월호 7시간을 내세우며 특조위도 해체시키고, 진상 조사도 못하게 하면서 이걸 악용해왔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탄핵 국면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선 뭘 잘못했나 생각해보니 첫 번째가 세월호 7시간이었어요. 베일에 싸여있던 7시간을 청와대가 목숨 걸고 막아왔는데, 실제로 그 안에 무언가 있고, 그게 대통령에게 아킬레스건이 되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퇴진하라’는 구호가 나올 때 저희는 ‘세월호 7시간, 박근혜 구속’을 외쳤어요. 그때는 세월호 7시간 얘기가 없었어요. 걱정은 됐죠. 이 시국에 혹시 우리가 초점 흐리는 거 아닌가. 우리 판단에는 이걸로 청와대 문제점을 정확히 짚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요.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놀라운 건 두번째 집회서부터 시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외쳤다는 거예요. 세 번째 집회에서는 앞에서 마이크 잡은 분들이 세월호 7시간을 이야기했어요. 그 이후 신문, 방송에서 단편적 보도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국회 청문회가 별도로 잡혔죠. 특검도 원래 포함되지 않았던 세월호 7시간을 수사하겠다고 했어요. 헌재도 7시간에 대해 밝히라고 대통령에게 요구하고 있고요. 처음에 걱정도 했고 거꾸로 가족들이 공격 당하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는데 국민들이 세월호 7시간을 그런 식으로 바라보지 않았구나, 대통령이 절체절명의 순간 무엇을 하고 무엇을 안했는지가 중요한 관심사라는 걸 알게 됐어요.



● "7시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누구보다도 알고 싶어했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 하지만, 정작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침몰 7시간 동안 대통령의 행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담담하지만 무겁게 이야기했다. 

유경근 : 물론 7시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이 무얼 했는지 밝혀야겠지만, 이제는 대통령이 그 엉뚱한 일 하느라고 결국 하지 못했던 일들이 무엇인지, 그것을 밝히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통령 개인 뿐만 아니라 청와대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을 해야 하는지 우리는 알고 싶었던 거죠, 계속. 대통령이 7시간 동안 뭘 했는지보다 대응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했는지 제대로 안 됐다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이걸 밝히기 위해 청와대도 조사대상이라고 얘기해온 거예요. 그런데 정부와 여당은 왜 대통령 사생활을 궁금해하냐, 정치적으로 음해하냐고 받아친 거죠. 종편, 보수 언론도 그 프레임을 씌워서 보도해왔어요. 유가족이 세월호 7시간 꺼내는 순간 정부와 여당은 더 이상 어떤 것도 진행되지 못하도록 했는데 그게 지금은 깨져버렸죠. 왜 그 시간에 적절한 지시 못하고 상황 파악 못하고 그렇게 대통령이 못할 때 비서실장과 안보실, 비서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이런 것이 다같이 밝혀져야 한다고 봐요. 그게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해야 할 일을 잘 했다고 하면 그 시간에 머리를 하건 주사를 맞건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대통령이 관저에 있었든 집무실에 있었든, 설령 어느 보도처럼 롯데호텔 스위트룸에 앉아있었더라도 할 일 제대로 했으면 이렇게 문제가 되지 않았겠죠. 할 일만 잘 했다면... 결국 그 시간에 해야 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아서 국민들이 죽게 된 거니까요. 청와대 시스템이 왜 작동하지 않았는지, 당시 대통령은 무엇을 했어야 했는지 까지 파고 들어가야만 대통령의 7시간이 가십거리로 끝나지 않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실질적인 첫 출발로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왜 구조 못했는지, 침몰 이후 왜 그렇게 수습 과정이 비상식적이었는지도 밝힐 수 있겠죠. 이제 진상 조사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게 그런 이유예요.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조을선 기자sunshine5@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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