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사후이혼'.."이젠 자유롭고 싶다"
‘사후이혼’을 아십니까?
일본에서 '사후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사후이혼은 법률상 개념은 아니다. 사망한 배우자의 친족과의 관계 단절을 요구하거나 배우자와 별도의 무덤에 묻히기를 원하는 현상을 말한다.
배우자가 사망한 뒤, 배우자 쪽 가족·친척과 법적 관계의 청산을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그쪽 사람들과 인연을 아예 끊고 싶다', '남편과 같은 무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등등의 말이 공공연히 퍼지고 있다고 한다. 법률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현실적으로 존재하며 갈수록 확산되는 현상이다.
이혼은 부부 양측이 모두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배우자 중 한쪽이 사망했을 경우에는 혼인관계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혼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어쩔수 없이 유지시켜온 혼인관계도 어느 일방이 사망하면 자연스럽게 해소됐기 때문에, 예전엔 그냥 '잊고 살면' 그뿐이었다. 한국도 그렇고 일본도 그렇다.
배우자가 사망한 이후, '인척관계 종료신고서'라는 생소한 서류를 관공서에 제출하면, 배우자의 부모, 형제 등과의 법적 관계가 청산된다고 한다. 이 신고는 배우자 사망 이후 언제든지 제출할 수 있다. 배우자 친족의 동의도 필요없이 일방적으로 법적 관계를 단절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결혼 뒤 남편의 성을 따르게 되는데, 자신의 성을 되찾고 싶으면 별도의 법적 절차를 밟으면 된다.
법무부의 호적 통계에 따르면, 인척관계 종료신고 건수는 지난 2005년 1,770여 건에서 2011년 1,910여 건으로 늘었고, 2015년에는 2,780여 건으로 급증했다. 10년 새 50% 이상 늘어난 셈이다.
“죽음 이후에 오는 것들…이젠 자유롭고 싶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배우자와의 단절을 요구할 만큼 절실하고 간절한 문제는 무엇일까?
NHK는 최근 신고서를 제출한 59세 여성의 사례를 소개했다. 여성의 남편은 외동딸이 초등학생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도 외도를 반복했다. 그러다 5년 간의 암 투병 끝에 사망했다. 남편 사후에 유품을 정리하던 중 외도의 정황증거를 발견했다. 상대방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적나라한 내용의 이메일까지.
남편을 간병하며 임종을 지켜본 여성은 극도의 분노를 느꼈다. "그런 인간에게 내 인생을 걸었던 것일까?" 배신감과 함께 자기모멸감에 빠졌다. 남편의 호적에 자신의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남편과의 관계를 인정하는 것은 남편의 부정한 삶을 인정하는 것이자 자신의 존재의미를 부정하는 것으로 느꼈다. 결국 2년 뒤, 인척관계 종료신고서를 제출했다.
남편에 대한 불만…‘시집’에 대한 불만
신고를 내는 쪽은 대부분 여성이라고 한다. 남편의 외도, 학대 또는 방임 등으로 혼인생활의 의미를 찾지 못했던 여성이 '관계단절'이라는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자아찾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오랜 결혼생활에서 쌓인 불만, 시어머니 등 시집 식구들에 대한 불만도 작용하고 있다. 부부문제 상담소에는 '남편 사망에 대해 시집이 나를 탓한다'는 류의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
만약 며느리나 자녀 등에 대한 배려와 위로는 뒷전인 채, 법률적 근거도 없이 상속 재산에 대한 분할이나 경제적 조력을 요구한다면, 관계의 파탄은 피할 수 없다.
초고령 사회의 특징?…‘여성에 대한 억압’ 더 큰 문제
남편 부모에 대한 간호까지 자신의 몫으로 남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커진다면 관계단절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미 초고령 사회에 접어든 일본에서는 고령 노인들에 대한 돌봄 문제가 사회 전체의 숙제이자 정부 정책의 난제로 등장했다. 법률적 부양 의무가 없어도 관행적·심리적 압박은 피하기 어렵다.
배우자 사망 뒤 인척관계를 종료해도 남편과의 법률적 관계는 변하지 않는다. 남편의 상속인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고, 유족 연금도 받을 수 있다. 사망한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와 조부모와의 법적관계는 해소되지 않는다. 당연히 아이에게는 상속권이 남는다.
그러나, 아이와 조부모와의 관계는 현실적으로 영향을 받는다. 관계 악화가 불가피할 수 있다. '이혼 뒤 재결합'처럼 법적 관계를 되돌릴 수도 없다.
일반적으로 아내는 남편의 부모·형제에 대한 부양 의무가 없다. 그런데도 인척관계 종료 신고를 내는 것은 '남편을 포함한 시집과의 관계 자체가 그만큼 끔찍했다', '이젠 홀가분한 마음으로 제2의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일본 사회의 진행과정을 닮아가고 있는 한국은 어떨까? 사망한 남편의 부모·형제 때문에 괴롭다는 호소는 어딘지 낯익다. 죽은 다음에라도 '그 집안'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호소도 낯익다. 남편의 집안은 '시댁'이고 아내의 집안은 '처가'라고 흔히 부르는 이중적 태도 또한 여전한다.
결혼 직후부터 남편이 사망한 이후에까지 시집에 대한 며느리의 일방적 희생과 헌신을 미덕으로 여기는 구습은 사회 한쪽에서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구습이 바뀌지 않는다면, '사후이혼'의 확산도 대세가 되지 않을까? 물론 '희생'보다 '이혼'을 택하는 흐름도 더 늘어날 것이고...
나신하기자 (daniel@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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