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출산지도? 지긋지긋한 '여성비하' 광고
[오마이뉴스 글:이은진, 글:임채홍]
29일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자체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 '대한민국 출산 지도'는 수많은 항의와 비난을 받고 사라졌다. 하지만 지도를 본 여성들의 분노를 지울 순 없었다. 문제는 정부의 이 같은 행태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데에 있다.
출산지도는 지난 8월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지자체 출산율 제고 방안'의 핵심과제 중의 하나로 추진됐다. 20~44세 여성의 지역별 분포를 바탕으로 만든 이 지도에서는 지역별 합계 출산율과 출생아 수, 가임기 여성 인구수, 조혼인율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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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행정자치부가 공개한 '대한민국 출산지도' 사이트. '가임기 여성 수' 통계 수치와 지역별 순위를 표시해 논란이 됐다. |
ⓒ 행정자치부 |
이 같은 구체적인 숫자를 보고, 시민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라는 것인지, 가임기 여성의 분포 순위를 매겨놓으면, 해당 지자체의 출산율이 높아지기라도 한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 지도를 만든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행자부가 밝힌 이 사업의 취지는 '출산율 저하로 인구감소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국민에게 지역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알기 쉽게 알려주고 저출산 극복을 위해 다 함께 참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공개-평가-인센티브 체계'를 확립해 지방자치단체 간 출산율 높이기 경쟁을 붙이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출산 경쟁은 여성을 '출산 기계'로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점에서 경악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시민들의 항의로 30일 현재 출산지도 홈페이지는 서비스를 중단한 상태다. 행자부는 수정공지문을 게재했는데, 과연 출산지도의 어떤 부분이 시민들의 반발을 산 것인지 알고 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대한민국 출산지도는 국민에게 지역별 출산통계를 알리고 지역별로 출산 관련 지원 혜택이 무엇이 있는지 알리기 위해 제작한 것으로 여기에 언급된 용어나 주요 통계 내용은 통계청 자료를 활용해 제공한 것입니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가 여성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을 드릴 수 있도록 제공한 정보의 일부로 인해 논란이 일어 마음이 아픕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반영하여 더 좋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현재 홈페이지는 수정 작업 중입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얼마 안 돼 행자부는 이 공지문을 수정했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가 여성들에게 더 많은 혜택과 지원을 드리고자 제공한 정보의 일부로 논란이 일어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한 부분만 뺀 공지문이었다.
시민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 '사과를 모르는 정부', '죄송하다는 한마디가 없다'는 등의 반응을 내놓으며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민신문고, SNS 등을 통해 항의를 계속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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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일 행정자치부가 출산지도 서비스를 중지하면서 홈페이지에 올린 수정 공지문. |
ⓒ 행정자치부 |
문제는 이와 비슷한 사례가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 제기도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여성에 대한 편견으로 시민들의 반발을 사는 일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출산장려는 정부의 책임이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기도 하다. 이번 출산지도의 경우처럼 국가의 문제를 여성의 잘못으로 떠넘기려는 듯한 정부의 행보는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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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의 출산장려 공익광고 |
ⓒ KOBAC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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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건복지부의 피임 캠페인 포스터 |
ⓒ 보건복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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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적십자사의 헌혈 홍보 공모전 수상작 |
ⓒ 대한적십자사 |
이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정부와 공공기관이 '어떤 점이 문제인지도 알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이와 같은 광고는 여러 번 이슈가 되었으나 문제가 된 기관들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며 어쨌든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여성에 대한 인식이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실수 아닌 실수'는 계속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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