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옹성'은 신기루였나..최순실 국정농단 한방에 '와르르'

이용욱 기자 2016. 12. 30.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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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근혜 대통령의 추락 ‘결정적 다섯 장면’

사진은…1월13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국민담화 발표, 2월16일 국회 연설, 3월16일 우병우 민정수석 임명장 수여, 4월13일 20대 총선 투표, 5월1일 이란 국빈방문, 6월26일 제주 창조경제혁신센터 출범식 참석, 7월18일 ASEM 순방 후 서울공항 도착, 8월4일 ‘사드 발표’ 후 새누리당 대구·경북 초선의원 청와대 초청 간담회, 9월20일 경주 지진피해 현장 방문, 10월24일 국회 시정연설 후 이동, 11월29일 3차 대국민담화, 12월9일 마지막 국무위원 간담회 주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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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엇을 해도 30%대를 유지해 ‘철옹성’ 내지 ‘콘크리트’로 불렸다. 2013년 2월 취임 이후 계속되는 독단적 국정운영에도, 심지어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 때도 지지율은 3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랬던 지지율에 균열이 생기더니 이제는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① 기세등등 - 책상 내리치며 야당 맹비난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4년차 들어서도 기세등등했다. 1월13일 신년 대국민담화에서 “(안보·경제가) 동시에 위기를 맞는 비상상황에 직면해 있다”며 “가족과 자식들과 후손들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서 앞장서서 나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4·13 총선을 석 달 앞두고, “적어도 20대 국회는 최소한도 19대 국회보다는 나아야 한다”며 국민이 정치권을 심판해달라고 선동한 것이다. 여소야대를 굳히고, 새누리당을 친박당으로 만들어 국정을 마음대로 주도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퇴임 후를 대비한 정치적 세력화 의도도 엿보였다. 박 대통령은 또 북한의 4차 핵실험을 비난하면서 개성공단 폐쇄까지 이어진 대북 강경책을 예고했다. 사드의 한반도 배치 가능성도 처음 시사했다. 2월24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선 야권을 향한 분노를 표출했다. 박 대통령은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두고 “기가 막힌 현상”이라며 책상을 10여차례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내리쳤다.

② 권위추락 - 노골적 선거 개입에도 총선 참패

박 대통령의 노기 띤 기세는 집권 여당의 4·13 총선 참패로 한풀 꺾였다. 총선 참패는 친박계 핵심들이 주도한 막장 공천 등 시대착오적 행태에 지지층이 이탈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기저에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등 대선 공약들을 폐기하고, 불통을 이어간 일방적 국정 운영과 실패에 대한 심판이라는 평가가 컸다. ‘야권 심판’을 외치다 박 대통령 본인이 심판당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총선 패배 후 닷새 만에야 첫 대국민 메시지를 냈지만, 반성과 성찰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4월18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민의가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고만 했다. 국정 실패에 대한 책임은 언급하지 않았다. 총선 민심이 요구한 국정운영 변화도 없었다.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해 나갈 것”이라면서도 ‘경제와 안보 동시 위기’를 강조하며 기존 국정과제의 흔들림 없는 추진만 고집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때부터 허물어졌다. 우선 노동시장 구조개편법 등 박근혜표법 추진은 불가능해졌다. ‘선거의 여왕’이라던 권위도 추락했다. 노골적으로 야권 심판론을 제기하고, 전국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하는 식으로 선거개입을 했지만, 여론의 반발만 불렀다. 특히 부산·경남에서 야당 후보들이 선전하고, 대구에서 ‘진박 후보’들이 고전하면서 박 대통령 정치적 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③ 반전시도 - 또다시 ‘위기론 카드’ 꺼냈지만

박 대통령은 후반기로 갈수록 신년 대국민담화에서 언급한 위기론을 빈번히 꺼내 들었다. 총선 참패, 사드 한반도 배치 결정 등 일련의 상황을 거치면서 국정 장악력을 상실하고, 사회 분열이 극심해지자 위기론을 앞세워 국면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8·15 경축사에서 북한 붕괴론을 처음 시사하는 등 노골적으로 북한을 자극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 당국의 간부들과 모든 주민 여러분, 통일은 여러분 모두가 차별과 불이익 없이 동등하게 대우받고 각자 역량을 마음껏 펼치며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한 것으로, 북한 당국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북한 체제 전환을 대북정책 중심으로 삼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박 대통령은 “(북한) 체제 동요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8월22일 을지국무회의)→“김정은의 정신상태는 통제불능”(9월9일 안보상황점검회의)→“자유로운 터전으로 오라”(국군의 날 기념식)→“북한 정권을 끝장내겠다는 각오로 고도의 응징태세를 유지하기 바란다”(9월13일 국무회의) 등으로 발언 수위를 높였다. 박 대통령이 보수지지층 결집용 ‘안보’론으로 국민을 편 가르고, 잔여 임기를 ‘내 편’만 데리고 가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다. 국민을 안심시켜야 할 대통령이 오히려 앞장서 불안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커졌다.

④ 촛불활활 - 국정농단 터지면서 민심 악화

박 대통령은 ‘비선 실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로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민심 수습을 위해 1·2·3차 대국민담화를 냈지만, 거짓말로 일관하면서 민심만 악화됐다. 박 대통령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성난 수백만 촛불이 광화문을 덮었고, 지난 9일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최씨가 미르·K스포츠 재단을 설립·사유화했다는 의혹은 9월20일 언론보도로 점화됐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9월22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이라고 일축했고, 10월20일 같은 회의에서 “의미 있는 사업에 대해 의혹이 확산된다”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은 10월24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 개헌 완수” 카드를 갑작스레 제안하며 국면을 바꾸려 했지만, 그날 밤 대통령 연설문 유출을 입증하는 태블릿PC 존재가 보도되면서 사태는 급변했다. 3차례 담화는 민심만 악화시켰다. 1차 담화(10월25일)에서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 도움을 받았다”고 했지만, 기밀문서 유출이 드러났다. 2차 담화(11월4일)에선 “검찰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라고 해놓고 검찰의 대면조사 요구를 세차례 거부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6일 여당 지도부와 만나 “헌법재판소 과정을 보면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라고 했다. 탄핵안이 9일 국회 문턱을 넘는 즉시, 대통령 직무도 정지됐다.

⑤ 관저유폐 - 탄핵안 통과에 ‘민간인’식 대응

박 대통령은 탄핵 후 관저에 유폐됐다. 직무정지 기간 중 청와대 집무실에 들어가지 못하며, 성난 민심을 감안하면 외출도 불가능하다. 사실상 정치적 연금상태다. 탄핵안 통과 직후 국무위원 간담회가 마지막 행사였고, 대선 승리 4주년인 지난 19일도 일정 없이 보냈다. 그럼에도 반성과 성찰은 없었다.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고 토로했다. ‘죄가 없으니 반드시 국정에 복귀하겠다’는 억울함으로 읽혔다. 청와대는 윤전추·이영선 행정관 등 핵심증인의 국조특위 불출석을 유도하고, 친박 의원들을 동원해 위증을 교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헌법재판소에 낸 탄핵심판 답변서에서 “최순실 등이 국정 및 고위공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도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모든 사태는 저의 잘못”(2차 대국민담화)이라던 말을 바꾼 것이다. 박 대통령의 특검 조사 협조 가능성도 희박하다. 묵비권, 자료제출·압수수색 거부 등 ‘민간인 피의자’처럼 대응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틈날 때마다 “안보·경제의 동시 위기”라며 총화단결을 강조했지만, 진짜 위기의 진원은 대통령 자신이었다.

<이용욱 기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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