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기춘 '세월호 정부책임' 희석시키려 감사원·검찰 통제

강희철 2016. 12. 30.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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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발표 수정지시 의혹>
김영한 업무일지 속 '감사원'
"감사결과 미리 받아, comment"
애초 발표와 비교 대폭 바뀌어
사정당국 관계자
"청와대가 자료 가져가 감식·수정
독립기관을 정치적 도구 간주한셈"

김영한 업무일지속 '검찰'
"초동대응 미숙 용어 ->구체적 지적"
실제로 '초등대응 미숙' 표현 빠져
검찰 관계자
"통상 주무부서가 자료 만드는데
그땐 기획조정부가 따로 만들어"

[한겨레]

황찬현 감사원장이 2014년 10월15일 서울 삼청동 감사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감사원이 2014년 10월10일 발표한 ‘세월호 사건’ 최종 감사 결과는 청와대, 구체적으로는 ‘김기춘의 작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청와대는 헌법상 독립 기관인 감사원의 감사 결과 자료를 발표 전에 미리 보고하게 하고, 정부 책임이 최소화되도록 내용과 표현 등을 뜯어고쳤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검찰의 최종 수사 결과 발표자료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 “미리 받아, 코멘트”는 사실이었다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업무일지 가운데 2014년 10월8일치를 보면 “감사원 감사 결과 발표-미리 받아, comment”라는 구절이 적혀 있다. 감사원이 최종 감사 결과를 발표하기 이틀 전이다. 김 전 실장을 지칭하는 ‘장’자 아래 기록돼 있는 이 지시는 감사원이 발표하기 전에 자료를 미리 받아 검토하고 의견 표명을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그럼에도 청와대와 감사원은 업무일지의 기록과 같은 일은 없었다고 딱 잡아떼왔다.

그러나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가 <한겨레>에 들려준 얘기는 전혀 다르다. 감사원이 10월10일 발표를 앞두고 만든 자료를 봤다는 그는 나중 발표자료의 내용과 표현이 너무나 달라 놀랐다고 한다. 알아보니 그사이 청와대가 감사원 자료를 가져다 감식하고 수정했더라는 것이다. 그는 “내용과 표현을 함부로 고친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청와대가 헌법상 독립기관인 감사원을 ‘통치 도구’로 간주했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김영한 업무일지’에는 10월8일치 말고도 김 전 실장의 감사원 관련 지시 사항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세월호 원인은 어느 정도 규명. 감사원 재발방지책 입수, 검찰 재발방지책 등 각기관별 방책 종합정리”(8월30일), “세월호 관련 감사원-권익위 향후 계획/검찰”(8월31일), “감사원장 보고-오프 더 레코드로 할 것”(9월1일)에 이어 9월16일치엔 “세월호 감사원 감사 결과-전원구조 발표/→감사원 발표 시기”라고 돼 있어 청와대가 감사원 동향을 계속 체크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난다. 그러다 감사원이 자료를 완성하자 가져오도록 해 손을 댄 것이다. 2013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감사원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확고히 지키겠다”고 했던 황찬현 감사원장의 다짐은 헛말이 됐다.

■ 검찰 발표자료도 미리 손봤나 검찰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최종 수사 결과를 내놓기로 한 10월6일을 앞두고도 청와대는 부산하게 움직였다. 10월3일치 ‘업무일지’를 보면 “발표문(10/6)-초동대응 미숙(정부) 용어 →구체적 지적”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정부 책임을 부각하는 ‘초동대응 미숙’이라는 표현이 검찰 발표문에 있으니 미리 구체적으로 지적해서 빼도록 하라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로 10월6일 검찰 발표자료에는 이런 표현이 없다. 발표 하루 전인 10월5일치 업무일지에 있는 “책임의 주체가 구체적으로 적시되도록(세월호 보도자료)”이라는 구절은, 발표 전날까지도 청와대가 이 문제에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대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았다. 매우 엉뚱하게도 검찰총장의 ‘비서’ 역할을 겸하는 기획조정부가 수사 결과 발표자료를 만들었다. 검찰 관계자는 “세월호 수사의 본류는 광주지검을 지휘한 형사부 쪽이니까 거기서 인천지검의 유병언 수사를 지휘한 반부패부 쪽 자료를 넘겨받아 종합하려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수사와 무관한 기획조정부장에게 발표자료를 만들라고 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검찰의 최종 발표자료는 여러 차례 독회를 거치며 주요 내용은 물론 “세세한 표현까지 고치고 또 고쳐졌다.”(검찰 관계자) 김진모 기획조정부장은 우병우 당시 민정비서관의 서울법대, 사법연수원 동기(19기)로 둘은 절친한 관계로 알려져 있다.

■ 통제 강조하고도 “기억 안 난다” 김 전 실장은 감사원과 검찰의 ‘세월호 발표’가 끝난 뒤에도 이 두 기관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 필요성을 다시금 강조했다. 10월13일치 ‘업무일지’에는 “수(수사)·감(감사)·조사 결과 발표시 사전 내용 파악하여 정무적 판단, 표현 등 조율토록 할 것 → 유념. 검찰, 감사원”이라는 김 전 실장의 지시가 꼼꼼히 기록돼 있다. 헌법 위반과 직권남용에 해당할 수 있는 일을 그는 ‘조율’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수첩 속 지시와 달리 김 전 실장은 국회에 ‘선서 증인’으로 출석해서는 모호한 답변으로 책임을 피해갔다. 그는 지난 7일 국회 국정조사 2차 청문회에서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이 “감사원 감사 결과 마사지한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기억이 안 난다”고 답변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안 했다고 했다가 (거짓이) 들통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잘 아니 기억이 안 난다고 한 것이다. 역시 김기춘답다”고 했다.

2014년 10월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기자실에서 조은석 형사부장이 세월호 수사결과 발표하러 입장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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