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마사회의 승마아레나 계획, '승마 공주' 위한 플랜B였나

2016. 12. 28.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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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한국승마 중장기로드맵 불발 대비 급조 의혹… 정유라 귀국 본인 해명 필요

“신뢰를 쌓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실추는 한순간이다. 청렴하고 공정한 업무추진, 부서 간 협력, 건전한 노사문화 조성이 절실하다.” 이양호 35대 마사회 회장의 취임 일성이다. 12월 21일 렛츠런파크 서울 본관 문화공감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 회장은 “최고의 공기업을 넘어 레저산업을 선도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마사회가 다시 태어날 수 있게 힘을 보태달라”고 역설했다. 농업진흥청장 출신인 이 회장은 탄핵으로 권한과 업무가 정지된 대통령을 대행한 황교안 총리의 첫 인사 대상자였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하필이면 최순실·정유라 특혜 의혹의 중심에 있던 마사회 회장 인사를 ‘1호 인사’로 한 것에 대해 설왕설래 말이 많았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덮거나 최소한 인정하지 않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고집”을 반영한 인사라는 풀이가 나왔다.

정유라 지원 사후 정당화용 사업계획서들

새로 취임한 이 회장은 현명관 전임 회장에 대한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이른바 ‘공주승마 특혜 프로젝트’들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까. 전임 회장 때 이른바 정유라 공주승마 의혹은 끊이지 않았다. 마사회와 관련해 가장 논란이 됐던 것은 ‘승마지원 중장기 로드맵’ 계획을 둘러싼 것이었다. “한국이 가진 아시아권 승마강국 역량을 결집하여 올림픽 본선 출전 및 입상”을 목표로 한다고 해당 계획은 밝히고 있지만, 그 실상은 독일로 건너간 정유라 지원책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지난 9월 국감 때부터 나왔다. 해당 계획을 보면 승마강국 독일 현지에 훈련캠프를 설치·운영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4년간 50개월을 현지체류하면서 지속훈련을 하는 것”이며, “종목별 지도자가 부재하니 외국 지도자를 위촉한다”고 되어 있다. 여기에 “절정기량마 1기와 잠재력 보유마를 포함, 1인당 3두를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런 계획은 실제 독일로 떠난 정유라씨의 상황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국감에서 이 로드맵이 논란이 되자, 현명관 전 회장은 “해당 문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가 말을 바꿨다.

‘삼성, 정유라에 돈 지원 근거 만들려 승마협회 이용 알리바이 문건 작성’ 제하의 12월 22일 <경향신문>의 보도다. 삼성이 최씨의 개인회사인 독일 비덱스포츠에 78억원을 두 차례에 걸쳐 송금한 시점에 맞춰 ‘구색 맞추기용의 지원근거 문건’을 만든 것이라는 의혹기사다. 앞서 <주간경향>은 김현권 의원실 등을 통해 마사회 승마진흥원 승마레저담당이 작성한 ‘도쿄올림픽 출전 준비를 위한 한국 승마선수단 지원방안 검토’(2015년 6월), 사단법인 대한승마협회의 ‘중장기 Road Map’(2015년 10월) 등의 문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한국 승마 중장기 로드맵 수립에 따른 후원사 지원요청 기본계획(안)’은 또 다른 문서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승마아레나, 중장기 로드맵 계획 등을 담은 승마협회·마사회 내부문서들/정용인 기자

해당 문서를 이전 문서들과 비교해보면 추진배경이나 전략 및 추진과제 등은 종전의 문서와 일부 표현만 달라졌을 뿐 대동소이하다. 크게 다른 점은 ‘업무분장과 예산배분’을 명시한 부분이다. 대한승마협회와 삼성, 한국마사회가 상호 업무협조를 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승마협회는 ‘국제승마연명 관련 업무 및 기타 업무 협조’를, 삼성은 마장마술선수단을 ‘대행사를 활용’해 지원하고, 마찬가지로 한국마사회도 장애물 선수단을 ‘대행사를 활용’해 지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문건의 5페이지에 제시되어 있는 ‘예산배분 기본방향’에 따르면 “총 소요예산 중 올림픽 마장마술선수단은 삼성에서 후원하고, 장애물선수단은 한국마사회에서 예산을 후원함을 기본방향으로 설정”이라고 되어 있다.

삼성이 2020년까지 후원하게 될 마장마술의 경우 합계 257억6000만원을 지원하게 되는데, 2015년도 32억1000만원과 2016년도에는 55억9000만원으로 되어 있다. 계획은 실제 문건이 작성된 시점에 삼성이 ‘대행사’인 최순실의 비덱스포츠에 돈을 송금하면서 얼추 맞아떨어진다. 앞의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 문건에 적힌 ‘독일 베이스캠프(Base-Camp)’ 훈련 마필(3필/인) 및 예산 확보‘ 등의 내용이 최씨에게 현금지원을 결정한 삼성이 배후에서 움직인 정황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중장기 로드맵’에 앞서 기안된 또 하나의 계획이 있다. 승마아레나 설치 계획이다. 승마아레나는 간단히 말해 승마 전용 실내 마장이다. <주간경향>이 김현권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승마아레나 설치 기본계획’ 문서에 따르면 계획은 ‘신개념 승마 테마파크 조성 추진 기본계획’(2014년 4월)에 따라 마련되었는데, 용도가 원래 ‘승마 전용 공인규격 실내마장’에서 ‘승마용 공인규격 마장’ 및 애초 계획보다 관람석 규모가 2배 규모(200석→400석)로 확대된 ‘말문화 공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변경된다. 이 계획서는 2015년 4월 24일 작성되는데, 그해 설계되어 2016년 준공되는 것으로 일정이 계획돼 있었다.

졸속 추진 ‘승마아레나’ 설계비만 날려

사업은 전광석화와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 서류를 검토해보면 기본계획이 나온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에 제2 실내마장(승마아레나) 신축 의견을 받는다. 이 의견수렴은 5월 20일까지 끝마치도록 되어 있다. 이어 총 공사예정 금액 74억원의 신축공사 설계공모를 공고한다. 공고에 따르면 현장설명회는 8월 6일 오후 2시에 하며 응모신청서는 당일 오후 5시까지 등록하도록 되어 있다. 다시 1차 공모안 제출시점은 9월 3일 오후 2시까지 하도록 되어 있다. 응모신청서 등록 후 내용에 대해 질의할 수 있는 기간은 8월 13일까지로 일주일에 불과하다. 김현권 의원 측은 “마사회가 7월 내놓은 ‘과업내용서’ 등을 보면 어느 정도 사전 정보가 공유되고 사업내용을 숙지하지 않으면 사실상 응모조차 하기 힘든 짧은 기간”이라고 지적했다. ㅇ건축사사무소가 최종 수주해 본설계 용역계약이 이뤄진 것은 올해 1월 20일이었다. ㅇ건축사사무소가 계획설계를 완료한 것은 2016년 3월 10일이다.

그런데 이게 엎어졌다. 마사회 측은 “과천시가 2016년 1월 과천주암 기업형임대주택 공급촉진 지구(뉴스테이)를 ‘렛츠런파크 서울’ 인근에 설치하겠다고 발표해서 뉴스테이 인근 마방을 옮기게 돼 이 자리에 지을 승마아레나 설치계획을 부득불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폐기되지 않았다.

<주간경향>이 입수한 마사회 내부문서에 따르면 2016년 2월, 인천승마장을 매입해 여기에다 ‘승마아레나’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제2 ‘승마아레나’ 사업계획 역시 인천아시안게임이 진행된 승마장 부지의 실소유권을 둘러싼 지자체 갈등 등을 이유로 결국 취소되었다.

“급박하게 일정이 추진된 점도 석연찮지만 80억원에 가까운 사업계획(승마아레나 사업)이 달랑 10페이지짜리 계획서로 추진된 것도 말이 안 된다. 보통 1억~2억짜리 사업계획도 10페이지짜리 사업계획서로 통과된 전례가 없다.” <주간경향>이 김현권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마사회 내부 관계자의 말이다. 애초 2014년 수립된 ‘신개념 승마 테마파크’의 기본계획이 128쪽인 데 비해, 승마아레나 기본계획은 10페이지짜리 문서에 불과했다.

일정이 취소되면서 본설계 용역계약을 맺고 추진 중이던 ㅇ건축사사무소와의 계약도 차질을 빚게 됐다. 2016년 5월, 애초 3억7580만원으로 진행하기로 했던 승마아레나 설계는 잠정중단되고, 총 1억1727만여원을 정산하는 것으로 프로젝트는 마무리된다.

국감에서 최순실씨 딸 특혜의혹이 불거지면서 뒤늦게 주목을 받은 정유라 선수의 인터뷰 영상. 2016년 8월 27일, 오스트리아의 국제대회에 출전 중 한 인터뷰로 밝혀졌다./유튜브 캡처
승마아레나 사업 기본계획을 작성한 쪽은 공교롭게도 앞서 ‘중장기 로드맵’을 작성한 승마진흥원이다. 문서가 작성된 시점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김현권 의원은 “석연치 않은 의혹을 풀 핵심 열쇠는 최순실과 정유라의 행적”이라고 말한다.

“이거 회장님이 보셔야 하는데, 아이, 이거 회장님이 보시면 얼마나 흐뭇하실까. 동기부여가 되겠죠, 이제.” 12월 21일, SBS가 박영선 의원실에서 제공받아 공개한 영상에 나오는 음성이다. 독일의 한 실내연습장에서 정유라씨가 말을 타는 모습을 찍은 영상이다. 영상 속 목소리는 이 장면을 찍은 남성과 옆에 선 남성이다.

그런데 이 영상 속에 등장하는 훈련장과 정 선수가 말을 타는 모습은 <주간경향>이 지난 10월 입수해 보도한 승마협회 내부문서에 첨부된 훈련일지의 근거자료가 되었던 사진 속에 등장하는 훈련장 및 훈련 모습과 일치한다. <주간경향>이 이 훈련일지를 공개한 뒤로, 실제 훈련일지가 조작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말을 타고 훈련하고 있는 사람도 정유라가 아니라는 주장이 나왔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된 걸까.

지금까지 알려진 행적에 따르면 정유라씨는 2015년 5월 아이를 제주도에서 출산한 뒤, 8월쯤에 남편 등과 함께 독일로 출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순실이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슈미텐, 아크놀트라인 지역에 있는 호텔을 코어스포츠 인터내셔널(현 비덱스포츠) 명의로 사들인 것은 2015년 11월이다. <중앙일보>가 공개한 파티 사진 속 최순실의 손을 잡고 있는 손자는 돌이 지난 모습이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은 올해 6월 23일 찍은 사진으로, 비덱 타우누스 호텔 개업식 사진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날은 최순실의 주민등록상 생일이다. 즉 이날은 호텔 개업식 겸 최순실씨의 생일파티가 열린 날이다.

마사회에서 현지훈련단 단장 명목으로 독일로 파견된 박재홍 전 승마감독은 <주간경향>이 입수한 녹취록에서 흥미로운 증언을 남겼다. “훈련을 하려면 하루에 4시간씩 말을 타고 가랑이에서 피가 나도록 해야 하는데, 살짝 올라와서 내려오고 그런 식으로 해서 훈련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독일에서 만난 정 선수는 흥미를 잃은 것처럼 보였다. 실제 올림픽 출전은 포기한 것 같았다.” 앞서 SBS가 공개한 동영상 속의 남성들이 말하는 회장님은 최순실로 유추된다. “이것을 보면 흐뭇해 할 것.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발언은 한동안 정씨가 말을 타지 않아 최순실의 속을 썩였다는 뜻이 된다. 이 정황은 전에 정씨를 만난 박 감독이 내놓은 “승마에 흥미를 잃은 것 같았다”는 증언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유라·최순실 동선, 의혹 풀 ‘열쇠’

앞서 마사회·승마협회 등의 계획들을 최순실·정유라의 ‘동선’에 맞춰 비교해보자. ‘중장기로드맵’의 초안과 최종안 등이 밝히고 있는 ‘추진배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승마의 국민적 우상(예: 골프 박세리, 피겨 김연아) 탄생에 적극 지원하여 국내 승마산업 대중화 및 국산 승용마의 해외수출 계기 마련.” 이 문건이 의혹처럼 정유라의 독일 현지훈련에 대한 맞춤형 지원계획이라면 ‘2020년 동경올림픽 마장마술 부분 우승→ 정유라를 승마의 국민적 우상으로 만들기’ 프로젝트다. 그런데 이 계획이 수립될 당시, 정유라는 출산으로 당분간 말을 탈 수 없는 시점이었다. 집중훈련을 하지는 못하지만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서 승마아레나에서 갈라쇼를 진행하는 것은 가능하다. 과천 승마아레나 계획이 좌절되자 인천 승마장 매입을 추진한 것도 “정유라 선수가 자신이 금메달을 딴 인천 승마장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승마아레나는 승마공주 정유라의 ‘심기’에 따라 중장기 로드맵이 실현되지 않았을 경우에 대비한 ‘플랜B’로 급조되었다가 실행되지 않은 것이라는 의혹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의혹이다. 명확한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최순실과 정유라 본인의 해명이 필요하다. 2016년 12월 23일, <경향신문>은 불과 일주일 전까지 정유라가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이한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심가에서 목격되었다고 보도했다. 특검은 12월 22일 외교부를 통해 정유라의 여권을 무효화시키는 한편 지명수배 조치를 취했다.

마사회 관계자는 “신임회장 부임 전부터 승마아레나 계획은 이미 중단되었으며, 2016년도에 잡혔던 40억 예산 중 설계용역 정산금으로 지출된 1억1727여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예산은 불용처리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새로운 실내승마장이 필요하다는 것은 마사회 내에서는 공감대가 형성된 오랜 숙원사업이었다”며 “밖에서 보면 의혹의 대상이 될지 모르지만 예상치 못했던 과천시의 뉴스테이 사업 시행, 공유매립지 소유관계 분쟁으로 좌절되었을 뿐 정유라나 최순실 의혹과는 관련 없는 것으로 보는 것이 내부의 시각이다”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n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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