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경제]<글루미 선데이>-2차 대전은 '블록경제'의 싸움이었다
사랑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할 수 있을까. 그래서 “당신을 완전히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라며 연인을 반분, 혹은 삼분할 수 있을까.
롤프 슈벨 감독의 <글루미 선데이>는 한 여자를 사랑한 세 남자의 이야기다. 1930년대 후반 자보와 그의 연인 일로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작은 레스토랑 ‘자보’를 운영한다. 일로나는 새 피아니스트 안드라스에게 마음을 뺏긴다. 안드라스도 일로나에게 이끌려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선데이’를 바친다. 일로나의 마음을 안 자보는 반만 갖기로 한다. 일로나는 자보의 다정다감함과 재력, 안드라스의 외적 매력과 천재성을 포기할 수 없다. ‘일로나-자보-안드라스’의 삼각관계가 시작된다. 위태위태하던 삼각관계는 그러나 어뚱한 데서 균형이 깨진다. 나치가 헝가리를 침공하고, 점령군 독일군 속에는 낯익은 인물이 있다. 한스 대령이다. 한때 일로나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부당하자 자살을 시도했던 그 남자다. 한스는 두 사람과 달리 일로나를 소유하려 든다.
세 사람의 운명이 엇갈리는 지점은 2차 세계대전이다. 유약했던 사업가 지망생 한스는 점령군 나치의 기병대가 돼 부다페스트를 접수한다. 독일의 침공은 명백한 만행이지만 독일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스는 일로나에게 보낸 편지에서 “독일은 대독일이 되어 가고 있어요. 우리가 살기에 독일은 너무 좁아요”라고 주장한다. 그 얘기를 들은 안드라스는 “땅 없는 사람은 많지만 모두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아”라고 맞받아친다. 옆에 있던 자보가 대꾸한다. “경제학상으로 말하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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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다. 폴란드의 동맹국이던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2차 대전이 시작된다. 나치의 꿈은 유럽 통일이었다. 나치는 왜 유럽을 통일하려 했을까. 2차 대전은 경제학사로 보면 ‘블록경제’의 싸움이었다.
1929년 시작된 대공황으로 독일 경제도 파탄이 난다. 미국을 비롯한 영국, 독일, 일본 등은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관세를 올리며 보호무역주의를 편다. 하지만 보호무역주의는 경제침체를 가속화시켰다. 이때 나온 대안이 ‘블록경제’다. 블록경제란 여러 국가에 의해 형성된 경제권을 말한다. 블록에서 벗어난 경제권에 대해서는 차별적 조치를 취한다. 블록경제는 주로 종주국과 식민지 간에 형성됐다. 종주국은 생산을 하고, 식민지는 원료 공급처와 소비시장이 된다. 1932년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영국 제국경제회의에서 영국 본토와 그 속령 간에 특혜관계를 만들기로 하면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보호무역주의 하에서 블록경제는 규모의 경제를 유지하는 수단이 됐다. 미국은 미국 본토와 남아메리카를 묶는 아메리카 블록이 가능했다. 영국은 구 식민지 국가과 함께 ‘스털링존’을 형성했다. 프랑스 역시 구 식민지들과 함께 ‘프랑블록’을 만들었다.
문제는 독일과 일본이었다. 블록으로 묶을 마땅한 식민지가 없던 독일과 일본은 이웃나라를 침공한다. 본국만으로 블록경제에서 살아남기에 독일과 일본은 너무 좁았다. 독일은 폴란드를 침공하며 동유럽과 서유럽으로 급속히 영토를 넓혀 나갔다. 독일의 점령지는 ‘마르크블록’이 됐다. 강대국들이 잇따라 블록을 형성하면서 국제연맹은 사실상 붕괴된다. 일본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묶는 블록 형성에 나선다. 이게 ‘대동아공영권’이다. 서구의 제국주의에 맞서 아시아인끼리 뭉치자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팽창주의적 침략전쟁에 불과했다.
한때 글로벌 경제는 국경 없는 자유무역을 선호했지만 최근에는 다시 블록화되고 있다. 유럽연합(EU), 아세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대표적이다. 미국이 주도로 진행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중국 주도의 경제동반자협정(RECP)은 더 적극적인 경제블록이다. 이해타산에 따라 주요국들은 뭉쳤다 헤어졌다를 반복한다. 총칼만 들지 않았을 뿐 소리 없는 경제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박병률 경향신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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