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583) 유류세와 알뜰주유소

입력 2016. 12. 27. 17:2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합리한 유류세 불법유통 부추겨
개선땐 정부 보조·환급금 부담 경감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합의로 기름값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지난 정부를 괴롭혔던 고유가의 망령이 되돌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돌고 있다. 국민 경제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석유제품 시장의 효율화·합리화를 위한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과도하고 불합리한 유류세를 개선하고, 알뜰주유소와 같은 정부의 불법적인 시장 개입도 바로잡아야 한다.

우리의 기름값은 지극히 기형적이다. 석유공사의 오피넷에 따르면 12월 둘째 주의 전국 평균 소비자 가격은 휘발유가 리터당 1464원이고, 경유는 1265원이다. 그런데 휘발유의 공장도 가격은 리터당 512원이고, 경유는 525원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가 휘발유에 872원의 살인적인 '유류세'(교통에너지환경세·교육세·주행세·부가가치세)를 붙인다. 리터당 388원인 두바이유를 수입해서 정제·가공한 후 주유소까지 배달해주는 정유사에 돌아가는 비용(리터당 124원)보다 정부가 무려 7배나 더 많은 '이익'을 챙긴다는 뜻이다. 주유소에 돌아가는 몫도 80원에 지나지 않는다.

과도한 유류세는 불법적인 가짜 휘발유 생산과 유통을 부추긴다. 석유제품인 용제(솔벤트)와 메탄올 등을 섞어서 만드는 가짜 휘발유의 원가는 휘발유의 공장도 가격보다 훨씬 비싸다. 그러나 유류세를 내지 않기 때문에 상당한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경유에는 휘발유보다 낮은 634원의 유류세가 붙지만 용제를 곧바로 가짜 경유로 사용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수익이 보장된다. 기름값이 치솟으면 가짜 휘발유와 가짜 경유의 수요도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유류세 인하가 절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정부가 유류세로 얻는 세수는 22조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과도한 유류세 때문에 정부가 부담하고 있는 보조금과 환급금이 수조원에 이른다. 유류세를 개선하면 불필요해지는 세출이다. 농어민을 위한 면세유 제도도 개선할 수 있고, 보조금·환급금·면제 제도에서 나타나는 도덕적 해이도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규모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가짜 석유제품에 의한 지하경제를 양성화시켜서 더 많은 세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유류세 인하가 어려운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내서 활성화의 가장 확실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정유산업과 석유제품 시장에 대한 정부와 전문가들의 오해가 심각하다. 석유제품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유사가 내수시장만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유산업은 핵심 수출산업이기도 하다. 실제로 휘발유·등유·항공유·경유의 생산량 중 절반이 넘는 55%를 전 세계로 수출하고 있다. 수출품목의 상위권을 차지하는 석유제품의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가 원유 수입 총액에 버금가는 정도다.

거대 장치산업인 정유산업의 과점을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도 없다. 규모의 경제에 의한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장거리 운반이 쉽지 않은 석유제품의 특성상 정유사를 더 많이 세운다고 반드시 시장의 과점 상황이 개선되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23개의 정유사를 가진 일본의 공급 가격은 우리보다 싸지 않다. 알뜰주유소·혼합판매·전자상거래와 같은 정부의 부당한 시장 개입은 결코 소비자에게도 도움이 될 수 없다. 알뜰주유소의 평균 가격이 리터당 40원 정도 싼 것은 소비자가 서비스를 포기한 대가일 뿐이다. 어설픈 평균에 의한 착시에서 벗어나야 한다. 알뜰주유소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저소득층은 정부의 복지 부담으로 돌아온다. 소비자가 혼합판매와 전자상거래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휘발유·경유의 '동등성'에 대한 논란은 기본 상식인 상표권을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억지다. 공급과잉의 과점 상태인 내수 시장에서 인위적으로 경쟁을 유발할 수는 없다. 억지 경쟁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이 억지 가격 인하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주유소업과 석유제품 유통업은 경쟁력을 심각한 수준으로 무너졌고, 공기업인 석유공사·농협·도로공사의 정체성도 크게 훼손됐다. 기름값이 더 오르기 전에 산업부가 불법적인 시장 개입을 정리하고, 엄격하고 합리적인 감시자로 거듭나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과학커뮤니케이션 교수, 탄소문화원 원장

< Copyrights ⓒ 디지털타임스 & d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