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서 눈물 보인 이대 교수가 던진 뼈아픈 질문

박현정 2016. 12. 27.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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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교수신문> 기고문 화제
"부모는 아이들을, 교수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한겨레]
12월15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가 지난 7월 경찰 1600명이 본관 점거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강제로 진압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국회방송 화면 갈무리
“‘돈의 부역자’ ‘권력의 부역자’가 된 교수들을 보면서 피폐해지고 쪼그라진 우리 직업의 모습을 본다. 교수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미래라이프대 설립 계획을 반대한 학생들과 함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중심에서 이 사태를 목격한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 김혜숙(62) 철학과 교수가 그동안의 소회를 밝힌 글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바로가기: [교수신문] ‘가르친다’는 일의 위중함과 위선자가 될 위험…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33274)

김 교수는 26일 <교수신문>에 기고한 ‘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난 몇 달간의 변화무쌍한 상황전개 속에서 교육 현장에 있는 나에게 가장 무겁게 다가온 물음은 ‘앞으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였다”고 토로했다. 동시에 ‘도덕의 힘’에 대해 무력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경찰 1600명을 동원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 이 말이 대학 권력을 담당하고 있는 재단을 포함하는 다양한 주체들에게 아무런 힘을 갖지 못한 채 공허한 울림으로 학생과 일반교수들에게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하면서 우리가 사는 곳이 얼마나 뻔뻔하고 모질어졌는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이제는 전설이 된 불과 30년 전 일을 추억했다. 1985년 고려대 김준엽(1920∼2011) 총장은 정권 반대 운동을 벌인 학생들을 제적시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사정권으로부터 강제 사임을 당했고, 이에 학생들은 총장 퇴진반대 운동을 했었다.
“‘도덕’이 한갓 겉치장으로도 힘을 잃어가는 사회, 사람들이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공직에서 물러나는 일이 희소해지는 사회, 증거를 내밀어도 법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으면 부인하는 사회에서 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이며, 교수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가?”
김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대학과 정치, 관료사회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분석했다. 교수들은 ‘대권’에 도전한 정치인들이 만든 ‘씽크탱크’나 실제 권력 집행 과정에 참여한다. 대학으로 적을 옮긴 관료들은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연구비를 수주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럼에도 김 교수는 “아무리 계산이 빠르고 권력의 이치에 밝은 교수라 하더라도 교수는 어쩔 수 없이 교수”라고 했다.
“교수는 학생들을 마주하고 그들에게 인간과 사회에 중요한 것, 바람직한 것, 사실인 것, 진실인 것, 진리인 것을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도 남을 가르친다는 일의 위중함과 무게 때문에 위선자가 될 위험에도 항상 크게 노출돼 있는 사람들이다.”
이화여대 교수들의 대의기구인 교수협의회는 지난 8월 학생들의 본관점거 농성을 촉발한 학교 쪽에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10월19일에는 개교 130년 만에 처음으로 교수들이 총장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에 나섰다. 김 교수는 12월15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제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자리에서, 지난 7월 경찰 1600명이 본관점거 농성 중이던 학생들을 강제로 진압하는 영상이 공개되자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이화여대 학생들은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김혜숙 교수님은 경찰 투입과 학사비리 관련해서 학생들 입장에서 정의 구현을 위해 많이 애써주셨습니다. 청문회를 시청하는 국민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르기 때문에 인터넷상에서 김혜숙 교수님까지 비리 교수로 오해받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으니, 부디 청문회에서 교수님 노고가 컸다는 사실을 학생들의 마음을 전달해 주십시오. 우리 모두 가슴 아파하고 있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2006년께 김 교수의 예술철학 강의를 수강했다는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생 김예진(32)씨는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정치·사회 관련 이야기를 꺼내시는 분이 아니었다. 말투도 조곤조곤하고 차분하신 스타일”이라며 “이번 사태 주요 국면에서 옳은지 그른지만을 따져 타협없이 행동하는 걸 보고 굉장히 놀랐다. 제자들의 존경심이 더 커진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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