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김은숙 드라마│② [도깨비]로 보는 김은숙 드라마의 법칙 5

아이즈 ize 글 최지은 2016. 12. 2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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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글 최지은

[보잘것없는 여자와 대단한 남자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이 뻔한 설정 위에서 김은숙 작가는 13년 동안 수많은 히트작을 내놓았다. 조금씩 변한 것도 있고,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tvN [도깨비]를 중심으로 읽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법칙들.]

남주인공은 돈도 많고 신이다
그는 물이고 불이고 바람이며 빛이자 어둠이다.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강이면 강, 바다면 바다, 저승이면 저승 등 담당이 세분화되어 있는 그리스 신들과 달리 [도깨비]의 김신(공유)은 비를 내렸다가 꽃을 피웠다가 공간이동을 했다가 염동력을 썼다가 지도에서 길을 없앴다가 시간을 멈췄다가 커플을 맺어줬다가, 심지어 날 수도 있다. 물론 속세를 사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가장 탐나는 그의 능력은 금괴를 뚝딱하고 만들어내는 것으로, 마음만 먹으면 금괴 200톤쯤은 보유하고도 남을 신은 SBS [파리의 연인] 한기주(박신양), [시크릿 가든] 김주원(현빈), [상속자들] 김탄(이민호) 등의 재벌 2, 3세들처럼 일에 매이거나 상속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 없이 항상 부자일 수 있다. 정작 [도깨비]의 재벌 3세 유덕화(육성재)는 할아버지한테 신용카드 뺏기고 비서에게 감시당하며 신의 심부름꾼 노릇이나 하고 있다는 면에서 조물주 위에 건물주, 건물주 위에 도깨비가 있다고도 볼 수 있겠다. 대신 세계 평화에 일조했던 KBS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송중기)처럼, 죽어가는 인간을 살리고 학대받는 어린이를 돕는 등 취미로 히어로를 하는 신은 말한다. “안 해도 되는데 이 일을 안 하면 내가 안 멋있지.” 

여주인공은 돈도 없고 미성년자다
“제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어요. 제 나이 아홉 살에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여 혈혈단신….” [도깨비]의 지은탁(김고은)은 정말로 물러날 곳이 없다. [파리의 연인]의 강태영(김정은)과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하지원)을 비롯해 김은숙 작가의 많은 여주인공은 가난할지언정 나름대로 생활력 있는 성인들이었고, [상속자들]의 차은상(박신혜)은 남의 집 살이를 하더라도 든든한 엄마가 있었으며 로맨스 상대는 같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러나 은탁은 보호자도 없고, 함께 사는 이모네 가족은 폭력과 폭언을 일삼으며, 담임으로부터 이유 없이 미움받고, 동급생들에게 괴롭힘당하고, 사채업자들로부터 납치당하기까지 한다. “온갖 불행소스를 다 때려 넣은 이 잡탕 같은 인생”이라고 스스로 말할 만큼 외롭고 무력한 고등학생 은탁(19세)이 김신(939세)의 재력과 능력을 확인하자마자 선뜻 “저 시집갈게요. 아저씨한테!”라고 말하는 상황을 합리화시킬 수 있도록 철저히 세팅된 환경인 것이다. 그리고 이 교복 차림의 미성년자는 어린아이처럼 사탕을 빨며 재잘대고 신이 제공하는 모든 원조에 벅차게 기뻐하는 한편, 해맑은 표정으로 성적인 함의를 담은 농담을 던져 ‘아저씨’를 당황시키거나 설레게 한다. 결국 은탁의 모든 시련이 신에게 자신을 의탁하도록 귀결되는 동시에, 무엇도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없던 소녀가 유독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 신을 향한 애정공세라는 것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

두 남자 사이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피치 못할 이유 때문에 함께 살게 된 두 사람이 티격태격 알콩달콩 사랑을 꽃피우는 것은 로맨틱 코미디의 전형적인 설정이다. 중요한 것은 은탁이 신의 집에 들어오기 전, 이미 그가 저승사자(이동욱)와 동거 중이었다는 사실이다. 나이 먹을 만큼 먹어서도 유치하게 투닥대는 한편, 여자들은 모르는 ‘사나이’들의 세계를 공유하고 결정적 순간 진한 우애를 발휘하는 남성들의 관계 묘사에는 김은숙 작가의 애정이 넘친다. [파리의 연인]의 형제 한기주-윤수혁(이동건), [시크릿 가든]의 사촌 김주원-오스카(윤상현), [태양의 후예]의 전우 유시진-서대영(진구), [상속자들]의 라이벌 김탄-최영도(김우빈), 심지어 [신사의 품격]에서는 김도진(장동건)을 포함해 네 명의 남자 무리가 등장했다. [도깨비]에 이르러 브로맨스 코드는 “힘들어?” “걱정 마, 안겨서 울진 않을 거야” 같은 대사처럼 한층 더 노골적으로 진화했고, 신과 은탁의 러브라인이 지지부진해질 때마다 신과 저승사자의 투샷이 등장한다. 위엄 있는 척하지만 의외로 방정맞은 신과 고지식한 채식주의자 저승사자는 서로를 감시한다는 핑계로 함께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방이 없다는 핑계로 침대를 내달라고도 하며, 스마트폰 사용법을 처음 배운 노부부처럼 들떠서 영상통화를 하기도 한다. 신의 가신 유 회장(김성겸)조차 “두 존재가 서로 의지하시는 거”라고 인정했으니, 아무래도 [도깨비]는 신을 사이에 둔 인간과 저승사자의 삼각관계인지도. 

‘사이다’는 여주인공의 몫이 아니다
김은숙의 여주인공 대부분은 가난하지만 밝고 씩씩하며 따뜻한 마음씨로 외로운 남주인공의 상처 입은 마음을 녹여준다. 은탁과 마찬가지로 돈을 비롯한 여러 이유 때문에 남자의 도움과 보호를 받을 수밖에 없고, 주로 그 남자의 매력을 빛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이들이 개성 있거나 주체적인 인물인 경우는 드물다. 오히려 [파리의 연인]에서 카리스마 있는 모습을 보여준 백승경(김서형), 자신이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쟁취하고야 마는 [태양의 후예]의 윤명주(김지원) 등 여주인공이 아닌 캐릭터들이 더 인상적인 경우가 많다. [신사의 품격]의 박민숙(김정난)과 홍세라(윤세아)의 중간쯤에 있는 듯한 [도깨비]의 써니(유인나) 역시 경제적인 여유와 미모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무엇이든 참지 않는다. 박민숙이 거만한 사모님으로부터 서이수(김하늘)와 김동엽(김우빈)을 구해준 뒤 “방금 본 게 네가 앞으로 나올 세상이고 돈 없는 사람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야”라며 꼰대다운 잔소리를 늘어놓았을 때 ‘멋지다’는 반응이 쏟아졌던 것처럼, 자신이 운영하는 치킨 집에 손님 하나 없어도 그다지 돈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 써니 역시 은탁에게 자신이 없으면 땡땡이치라거나 주급을 주면서 “받을 거 받는데 그렇게까지 감사해하면 사람들이 우습게 본다”며 충고하는 ‘쿨한’ 고용주다. 천박하고 악독한 이모에게 학대당하면서도 제대로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은탁 대신, 가게에 쳐들어온 은탁의 이모를 가볍게 무시하고 교묘하게 위협해 내쫓는 데 성공한 것도 써니다. 물론 이 ‘사이다’ 담당이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돈이 많거나, 권력이 있거나. 

도깨비는 카누를 마신다
90년대에 ‘이영애의 하루’가 있었다면 2016년에는 ‘도깨비의 하루’가 있다. 신은 아침에 일어나면 동서식품 카누 커피를 마시고(저승사자는 한국 야쿠르트 하루야채를 마신다), 샤워 후 밤부팬더 대나무 타올로 물기를 닦은 뒤, 한촌 설렁탕에서 해장을 하며(유덕화는 정관장 369를 애용한다), 외출은 마세라티를 타고, 데이트는 달콤 커피에서(은탁에게는 허니몽을 사준다), 세상 구경은 일룸 빌딩 꼭대기에서(겨울에도 맥주는 하이트 드라이 피니쉬다), 전화는 “5.5인치 QHD 디스플레이에 엑시노스 8890 옥타 코어 프로세서 램 4GB 강화유리 소재로 더 강하고 슬림한 바디를 자랑하는” 삼성 갤럭시 S7으로 건다. 살면서 온갖 호사를 다 누려봤을 텐데 왜 하필 커피는 인스턴트냐고 묻는다면 카누는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카페… 아니,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트레이닝 복만 입던 [시크릿 가든]의 김주원도 카페 베네 단골이었던 마당에 무슨 힘이 있나. [태양의 후예] 유시진이 머나먼 우르크에서도 정관장 에브리타임 홍삼정 농축액을 꼬박꼬박 챙겨 먹고, 서대영과 윤명주는 운전 중 갑자기 현대 자동차 제네시스의 자율주행기능을 켠 채 키스를 나눴을 만큼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에서 PPL로 넘지 못할 산은 없다. 9백여 년 전 고려를 떠나 배를 타고 나섰던 신이 하필 멀고 먼 캐나다 퀘벡에 정착했던 것 또한 캐나다 관광청의 제작지원 덕분 아니겠는가. 다만 은탁이 아르바이트하는 BBQ 올리브 카페에 손님이라곤 코빼기도 보기 힘든 것은 치킨에 어울리는 맥주나 콜라보다 이온음료 토레타만 냉장고 위 칸 가득해서일 수도 있음을, 주인 써니가 하루 빨리 눈치채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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