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진정한 일류를 위하여

2016. 12. 27.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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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통제력은 삼류의 유혹 거부한 성숙한 체험
새해엔 의롭고 절제된 울림 퍼져나갈 일류 원년을

크리스마스를 넘기며 들떴던 음악들의 속도가 서서히 느려지고, 음악 사이로 연인들은 시린 손을 맞잡고 서로를 만나게 해 준 저무는 해에 감사한다. 송년 모임들로 지쳐갈 무렵, 모처럼 집으로 일찍 향하는 가장은 아이들을 위해 군고구마 한 봉지를 사 든다. 연말을 장식하는 구세군의 종소리는 고즈넉함과 낭만을 어울러 저무는 해를 회상하기 좋게 만든다. 이러저런 미담은 아직도 사회에 온기가 남아 있음을 알려 주고, 새해에는 많은 사람과 공감하며 살리라 마음을 다잡는다.

우리가 그리는 전형적인 연말의 풍경이 그러한데, 이번 연말은 스산하다. 갑질 횡포에 대한 고발로 시작하더니 국정 농단 사태로 세모가 다가오며 주변이 온통 어수선하다. 경제는 어렵고, 정계는 온통 분쟁이다. 정치적 혼란에 마음을 빼앗겨 사랑의 온도탑의 눈금은 예전의 반에도 못 미치고 쪽방촌 노인의 방바닥은 더욱 차갑다.

혼란 속 외신을 타고 들려오는 소식이 위로를 준다. 정의를 향한 국민의 열정이 폭발적 힘으로 드러나되, 냉철한 이성과 규범의 틀을 지키며 질서 있고 평화롭게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대통령이 떨어뜨린 품격을 국민이 올려놓았다고 하고, 한 연예인은 “정치는 삼류, 국민은 일류”라고 외친다.

우리 국민이 일류는 맞는 것 같다. 지금 분노와 허탈감이 팽배하지만, 의기소침하지 말자. 더 큰 고난을 잘 극복해 오늘에 도달한 우리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를 선진국의 입구까지 이끌어 왔고, 한국은 몇몇 소규모의 도시국가를 제외하고는 빈곤 국가에서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한 유일한 국가다. 정치체제도 개발독재의 벽을 넘어 성숙한 민주주의 제도를 모범적으로 일구어냈다. 그 저력이 아직도 남아 광화문의 촛불로 이어져 지속적인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우리가 지난 민주화의 소용돌이의 시기를 자랑스럽게 되돌아 보듯, 머지않은 미래에 우리는 오늘의 혼란을 도약을 위한 진통으로 되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한 일류가 되어, 뒷날 오늘을 안도감으로 되돌아 볼 수 있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삼류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일류인 이유는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온 후 받아 든 성적표에 경제 점수가 유난히 높기 때문이다. 그 옆에 적힌 문화 점수가 초라하다. 압축 성장이 차가운 적자생존의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우리 마음 속에 경쟁에 뒤처진 사람들의 신음소리에 공명할 여유를 빼앗아 갔다. 조금 과한 표현이지만, 어떤 사람은 우리 사회를 기회주의적 각자도생의 사회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약탈사회라고 부른다. 시대적 흐름에 몸을 맡긴 정치인은 국정이 표류하는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미래보다 자신의 정치적 잇속을 먼저 챙긴다. 삼류가 되는 길이다.

우리 시민들 역시 삼류로의 유혹에 마주 서 있다. 성적을 희생하며 친구를 돕는 자녀 칭찬하기가 쉽지 않고, 길가에 쓰러져 고통 받는 사람을 돕는 것이 귀찮아지려 한다. 이 무렵 광장은 삼류의 유혹을 거부하는 국민의 힘을 증명하며 또 하나의 희망을 전해 주었다. 하나의 공동체로서 자신의 이해관계 너머 공의를 외치는 성숙함을 보여주었고, 그 과정에서 보여준 통제력은 더 인상적이다. 평화적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려 할 때 더불어 “내려와”를 외쳤고, 특정 정치집단과 이익집단이 분위기를 틈타 자신들의 입지를 넓히려 할 때 군중이 등을 돌려 그들을 머쓱하게 만들었다. 비록 우리 개인들은 자신의 일상에서 때로 굴복하기는 하지만 함께 더불어 삼류의 유혹을 넘어선 의미 있는 체험들이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에 너무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자. 지금의 아픔이 약인지 독인지는 미래의 우리의 모습이 결정한다. 광장의 의롭고 절제된 울림이 서로 간에 공명을 이루어 멀리 퍼져나갈 때 우리의 성적표에 문화 점수가 경제 점수를 따라잡고, 정치도 따라오지 않겠는가? 예전에 그랬듯이 이번에도 연말을 맞아 온정을 되새길 이유가 충분하다. 구세군의 종소리에 귀를 더 기울이고 연탄을 더욱 퍼 나르자. 진정한 일류의 원년을 만들어 보자.

김기현 서울대 교수·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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