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밀집' 경고음 커지는데..정부는 "안전" 말만 되풀이

고영득 기자 입력 2016. 12. 26.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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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7회째 맞는 ‘원자력의 날’

27일은 ‘원자력의 날’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이던 2009년 12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 성공을 기념하기 위해 2010년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올해는 원전의 안전성을 알리는 데 방점이 찍힐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지난 9월 이후 경주 지역에 지진이 끊이지 않으면서 원전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은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원전 밀집도를 고려한 안전대책 없이 신규 원전만 늘린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원자력의 날 캐치프레이즈로 ‘안전 원자력, 안심 대한민국’을 내걸었다. 이에 보조를 맞추듯 한국원자력연구원은 26일 방사성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이송 계획을 담은 안전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안전을 누차 강조하지만 지난 9월12일 발생한 경주 지진이 한국의 원전 밀집도 수준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면서 불안감은 한층 커졌다. 한국은 현재 고리 7기와 월성·울진·영광 각 6기 등 총 25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다. 정부 통계치에 따르면 한국의 원전 밀집도는 0.240으로 프랑스(0.120)나 일본(0.111), 영국(0.043), 미국(0.011)에 비해 월등히 높다. 준공된 지 30년이 넘은 원전도 경주, 부산, 전남 영광에 몰려 있다. 신규 원전 건설도 계획돼 있어 원전 밀집도는 더욱 높아질 예정이다.

특히 고리와 월성 원전은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다. 고리·월성 원전 부지에서 반경 30㎞ 안에 거주하는 인구는 약 419만명에 달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부근의 인구 약 17만명의 25배나 된다. 한국이 일본보다 지진 발생 확률은 낮지만, 일단 사고가 나면 피해는 수십배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23일 ‘원자력발전소 다수기 밀집현상과 대응방향’이란 보고서에서 “원전이 다수 밀집돼 있는데 주변 인구까지 많은 경우 사고 발생 시 피해 규모가 상당히 커질 위험이 있다”며 “한 지역 내 원전 밀집도가 매우 높은 국내 상황에 적합한 규정과 안전성 평가 체계를 신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원전 부지의 지질검사에 대한 기준을 개선할 것도 촉구했다. 현재 원전 부지 선정은 ‘경수로형 원전 규제 지침’을 따른다. 보고서는 “해당 지침에서는 부지의 ‘활동성 단층’만 원전 안전에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고 ‘활성단층’의 위험성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주 지진은 활성단층인 양산단층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밝혀진 상태다.

현재 한국은 원전 시설 부지를 선정하거나 평가할 때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규정은 197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과학기술 수준과 현재 상황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고, 미국에서도 최근 규제기준을 개정했다. 원전을 건설할 때 외국 규정에 의지하지 말고 국내 상황을 고려한 규정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부산 기장군의 경우 신고리 3·4호기가 건설 중이고 신고리 5·6호기는 지난 6월 건설 승인을 받았다. 이로써 기장군은 10기의 원전이 들어서는 세계 최대 원전단지가 된다. 원전당국은 안전성 문제를 충분히 심사했다고 하지만, 원전 밀집 지역에 대한 연구가 부족해 정확한 안전기준이 없는 게 현실이다.

시민단체는 이 같은 정부의 ‘깜깜이 행정’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원전 안전성 평가서가 일절 공개되지 않아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이 객관적으로 검증된 적이 없다”며 “투명성이 강화되고 공론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장량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는 전 세계에서 해답을 못 찾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원전을 계속 늘린다는 건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고영득 기자 go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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