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취재] 우표 옆 작은 추억.. 부활하는 크리스마스씰

김유나 2016. 12. 2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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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판매량 10배 늘어
성인이라면 누구나 초등학생 시절 크리스마스씰(Christmas Seal)을 샀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씰은 과거에는 매년 겨울이면 쉽게 볼 수 있는 존재였지만 우편 이용 등이 줄면서 최근 10년간은 판매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질 정도로 인기가 시들해졌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발행이 중단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던 이유다. 그러나 올해 온라인 판매량이 전년 대비 10배 이상 급증하는 깜짝 반전이 일어났다. 역사 속으로 사라질 위기였던 크리스마스씰이 부활을 꿈꾸면서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씰의 부활… 온라인 판매량 10배 이상 급증

크리스마스씰은 결핵 환자의 치료·자활 기금을 모으기 위해 발행하는 우표 형태의 증표로, 1904년 덴마크의 한 우체국장이 고안했다. 크리스마스 우편물에 붙일 수 있는 씰을 만들어 판 뒤 수익금을 결핵에 걸린 아이들을 위해 쓰자는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한국에는 1932년 외국인 선교사가 처음 도입했으며,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되면서 본격 판매됐다. 협회는 매년 10월 1일 크리스마스씰을 발행하고 있다. 현재 1시트(개별 씰 10장) 3000원에 판매 중이다. 
1932년에 발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왼쪽)과 대한결핵협회 창립 포스터(오른쪽).

그러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 씰 판매량은 급감하는 추세다.

26일 결핵협회에 따르면 크리스마스씰 판매량은 1997년 3800만장에서 2001년 3000만장으로 줄어든 뒤 지난해에는 1000만장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판매액은 2006년 61억8700만원에서 지난해 32억1800만원으로 10년 사이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인터넷 발달 등으로 우편물을 주고받는 문화가 많이 사라져 씰을 쓸 곳이 없는 데다 공공기관 등에서의 단체구입도 줄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 씰 총판매액 중 공공기관 및 학교의 비중은 87.2%에 달한다. 특히 판매량의 54.4%는 학생들이 구입한 것이다. 여기에 종교기관과 기업 등의 단체 구입을 빼면 일반 개인의 씰 구입 비중은 7% 정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학교와 공공기관에서 씰 판매 부담을 떠안고 있다 보니 씰을 강매한다는 불만이 쌓였다. 이 같은 강매 논란은 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켰다. 결국 2014년 정부 및 공공단체 등이 씰 모금 활동에 의무적으로 협조해야 한다는 내용이 삭제된 ‘결핵예방법 일부개정법률안’까지 통과되면서 씰이 곧 사라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줄을 이었다.

하지만 올해 발행된 씰은 입소문이 나면서 일반 개인들 사이에서 예상치 못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개인적으로 구매하는 이들은 주로 온라인 판매처(loveseal.knta.or.kr)를 이용하는데, 올해 온라인 씰 판매량(23일 기준)은 2만380시트(6110만원)로 전년(1855시트·560만원)보다 10배 이상 급증했다. 아직까지도 단체 구입 비중이 크기 때문에 전체 판매 금액에서 온라인 판매 금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는 않지만 씰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인 신호다. 올해 씰이 ‘대박’을 터뜨렸다는 말이 나오는 까닭이다. 결핵협회 관계자는 “온라인 판매는 액수가 크지는 않지만 일반인들이 직접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기의 척도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 10년간 씰 판매액은 매년 목표액의 90% 정도에 그쳤지만, 올해에는 목표액(42억원)을 넘길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올해 발행된 금속 책갈피 형태의 그린씰.
대한결핵협회 제공
◆콘텐츠 중요… 실용적인 아이템 요구도

2016년 씰이 특별히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담겼기 때문이다. 올해 씰 이름은 ‘독립을 향한 열망-대한민국 독립운동가 10인’으로, 김구·윤봉길·유관순·신채호·안창호·안중근 등 10명이 등장한다. 최근 최순실 국정농단과 국정 역사교과서 논란 등으로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국가를 생각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배우 공승연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씰 사진을 올리는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씰 구매 인증샷을 올리는 것도 인기를 끌었다. 씰을 구매하는 것이 ‘개념있는 행동’이 된 것이다.

올해 씰의 인기는 씰을 제작할 때 씰 자체를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단순히 ‘씰을 구매하면 결핵 환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의미만 내세우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는 콘텐츠로 제작해야 관심을 끌 수 있다는 것이다.

우표 형태의 씰 외에 좀 더 실용적인 제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결핵협회는 2003년 처음 씰을 스티커 형식으로 제작한 데 이어 2007년 전자파 차단 소재의 스티커 ‘그린씰’을 만들었다. 지난해부터는 그린씰을 금속 책갈피 형태로 바꾸는 등 변화를 주고는 있지만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올해 그린씰을 처음 알게 돼 구입한 이보연(35·여)씨는 “그동안 씰을 안 샀던 것은 결핵 환자를 돕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도 쓸 데가 없었기 때문”이라며 “열쇠고리나 필기구 등 좀더 다양한 기념품 형태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이들이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결핵협회는 “스마트폰 시대에 걸맞도록 이모티콘을 활용한 크리스마스씰을 발행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며 “현재 크리스마스씰의 전통을 살리고자 초기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보다 다양한 계층의 모금 참여를 이끌 수 있도록 디자인과 소재를 다양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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