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격동·희망.. 2016

조의명 기자 2016. 12. 26.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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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실험으로 위기감 속에 시작된 2016년. 개성공단 폐쇄와 사드 배치 결정이 이어지면서 한반도는 갈등과 대치의 격랑에 휘말렸습니다.

기록적인 한파와 폭염, 지진 등 천재지변 속에 불안감이 가중됐고, 아동학대 살인과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민중은 개돼지 발언 등 공권력과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습니다.

알파고 충격은 인류의 미래에 질문을 던졌고, 브렉시트와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전 세계적으로 혼돈과 격변의 파도가 몰아쳤습니다.

최순실게이트와 광장민주주의, 대통령 탄핵까지...그 어느 때보다도 다사다난했던 2016년을 되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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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다사다난'이란 말을 자주 쓰곤 하지만, 올해처럼 그 말이 어울리는 해가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고, 대기업이 무너지고, 기상이변과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한 해 우리는 2016년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게 될까요?

새해가 시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1월 6일.

북한은 3년 만에 핵실험을 재개하며 한반도에 위기감을 고조시켰습니다.

[북한 조선중앙TV/1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수소탄까지 보유한 핵보유국의 전열에 당당히 올라서게 되었으며."

한 달 뒤 정부는 개성공단 경제협력 사업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펼치지 않았던 초강경책을 꺼낸 겁니다.

[홍용표/통일부장관(2월10일)]
"더 이상 개성공단 자금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에 이용되는 것을 막고 우리 기업들이 희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전면 중단하기로..."

예고도 없이 이뤄진 전격 조치에 120여 입주 기업들의 대부분은 문을 닫거나 파산했습니다.

북한 핵무장에 대한 대응방안으로 정부는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고 결정했습니다.

배치 예정지인 경북 성주 주민들이 강력하게 반발했고, 중국은 관광 규제와 한류 금지령 등 각종 보복 조치로 압박해왔습니다.

[루캉/중국 외교부 대변인(7월11일]
"(사드는) 중국의 전략적 안전 이익을 엄중하게 훼손하는 것으로 분명히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안전 이익을 수호할 것입니다."

국가 경제는 악재가 겹쳤습니다.

국내 1위 해운사인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조선사들도 생존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경기 침체 속에 돈은 부동산으로만 몰리면서 전세 대란과 집값 폭등이 이어졌습니다.

지난 4월 열린 20대 총선은 국회를 16년 만에 여소야대로 돌려놓으면서 정치 격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영국에선 지난 6월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연합 탈퇴 이른바 '브렉시트'를 결정했고,

[브렛 바이어/폭스뉴스(11월9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가장 비현실적인 그러나 현실적인 선거에서 승리했습니다."

미국 대선에서는 언론의 예상과 달리 트럼프가 당선되는 등 세계적으로도 급진적인 자국우선주의 풍조가 대두했습니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 또 하나의 사건 구글이 고안한 인공지능시스템 알파고는 지난 3월 이세돌 9단을 상대로 바둑대결에서 승리를 거뒀습니다.

물리적인 힘, 계산 능력에 이어 복잡한 판단의 영역까지 기계가 인간을 추월하고 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데이비드 실버/구글 딥마인드 연구 책임자]
"알파고는 하루에도 수백만 번의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알파고가 충분히 처리해 보고 훈련을 하고 검색해 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인간 이상의 수준이죠."

[이세돌 9단/바둑기사]
"오늘의 패배는 이세돌이 패배한 거지 인간이 패배한 것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을 해 봅니다."

기상 이변도 한반도를 휩쓸었습니다.

15년 만의 한파가 몰아닥쳐 연초 전국이 꽁꽁 얼어붙더니, 기상관측 역사를 다시 쓰게 했던 사상 최악의 폭염은 전기요금 폭탄으로 서민 경제에 주름을 안겼습니다.

심지어 규모 5.8의 경주 지진까지 발생하면서 한국도 더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불안감이 수많은 국민들에게 엄습했습니다.

[경주 시민]
"창문이 '다다다'하고 떨어질 판이더라고요. 기절할 뻔했어요. 자다가 일어나서..."

천재지변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재해 대비용품 구매가 급증하는 한편, 지진이 발생하고 몇 분이 지나서야 긴급 재난 문자를 보내는 안전당국의 늑장 대응에도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를 위험에 대한 공포.

국가 시스템이 나와 내 가족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신과 불안감은 사회 전반에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지난 5월 강남역 인근에서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

많은 여성들이 이 사건을 정신이상자 한 명의 우발적 범행으로 흘려 넘길 수 없었던 건, 그저 운 좋게 그 자리에 있지 않았을 뿐, 어쩌면 내가 그 희생자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공포 때문이었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태가 수면위로 드러난 지 5년.

올해 들어서야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서 위험성을 알면서도 제품을 판매한 기업의 부도덕성과 사태를 방관해 온 당국의 관리 부실이 하나둘씩 드러났습니다.

현재까지 접수된 피해자만 5천여 명, 그중 1천1백 명이 이미 숨을 거뒀습니다.

희생자 대부분은 영유아와 임산부였습니다.

[이규동/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가족]
"마지막 임종을 지켜보는데 진짜 안쓰러워서 못 보는 거예요. 사람이 숨을 쉬어야 살잖아요."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적 기반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마련되지 못했습니다.

[최예용 소장/환경보건 시민센터]
"정부가 워낙 이 문제에 대해서 해결 의지가 없고 소극적이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서..."

지난해 11월 집회 현장에서 진압용 물대포에 맞아 의식을 잃은 백남기 농민은 끝내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망원인이 있을지 모르니 시신을 부검하겠다는 경찰, 물대포 외상에 따른 사망이 아니라는 서울대병원에 진단서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가장 먼저 희생되는 건 사회적 약자들이었습니다.

살해나 유기, 학대 같은 아동대상 범죄들이 올해 초 집중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길게는 5년 넘게 무관심 속에 은폐돼 왔던 아이들의 죽음은, 지난해부터 실시된 장기결석아동 전수조사를 계기로 잇따라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학교든, 복지 당국이든 갑자기 보이지 않는 아이들에게 진작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였다면 어쩌면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를 비극이었습니다.

지난 5월, 서울 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에선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던 19살 청년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외주업체 계약직 근로자,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위험한 일을 혼자 하도록 내몰렸던 사회 초년병.

밥 먹을 시간조차 없었던 그의 가방엔 컵라면 한 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최근 5년간 건설, 화학 등 대기업 사업장에서 산업재해로 숨진 사망자 가운데 86%는 하청 근로자였습니다.

위험하고 힘든 일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몫으로 돌아가는 사회 구조에 많은 국민들이 안타까워했습니다.

올해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 이른바 김영란 법 시행은 부정부패 해소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방증하고 있지만, 100억 넘는 가치의 주식을 제공받고도 대가성은 없었다는 진경준 검사장 사건, 대부분 국민들에게 위화감과 함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깊은 분노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통계청 여론조사에서 평생 동안 열심히 노력하면 사회 경제적 지위가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대해긍정적으로 답변한 사람은 20년 전에 비해 1/3로 줄었고, 불가능할 거라는 응답은 열 배로 늘었습니다.

국민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윤인진 교수/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아무리 개인이 노력을 하고 능력을 갖춰도 사회 자체가 신분 이동할 수 있는 구조적 기회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절대적인. 빈곤보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하는 것이 더 크다고 볼 수 있거든요."

신뢰를 잃어버린 국가 시스템,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 돈과 권력이 현재뿐 아니라 미래까지 좌지우지하는 불평등의 고착화.

올 한해 가장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될 최순실 게이트는 얽히고설킨 사회 부조리를 한꺼번에 드러내며 폭발력을 더했습니다.

[정세균/국회의장(지난 9일)]
"대통령 박근혜 탄핵 소추안은 가결되었음을 선포합니다."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지만, 사태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모르쇠로 일관하는 증인들과 위증교사 논란까지 겹친 국정조사 청문회는 의혹을 충분히 풀어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를 통해 '최순실 등의 국정 관여 비율은 1% 미만에 불과하다'며 탄핵은 부당하다고 주장했고, 체포 당시 죽을죄를 졌다던 최순실 씨는 재판이 열리자 혐의 사실을 전면 부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경재/최순실 측 변호사]
"안종범 전 수석과 피고인은 서로 알지 못하는 사이기 때문에 공모 사실이 인정되지 않습니다."

지난 수요일 출범한 특검의 수사가 얼마나 성과를 거둘지, 본격 심리에 들어간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따라 대한민국은 또다시 요동칠 겁니다.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건 촛불 민심으로 드러난 국민 여론의 힘.

탄핵 표결 전에 비해 그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불꽃은 꺼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지수/대학생 (지난 9일)]
"기쁜 마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헌재 판결 날 때까지 기다리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결코,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시민들은 마음속 깊이 자리 잡았던 분노와 실망을 평화로운 함성을 통해 변화를 향한 원동력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광장에서 함께 배웠습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각자도 생이 아닌 온전한 우리 대한민국 국민, 시민의 뭉쳐진 힘으로 나타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놀라고 감동하고 그 저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 순간이..."

지난 9월, 모두가 잠든 새벽 4시 서울 서교동의 다세대 원룸 건물에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건물 밖에서 불이 난 사실을 확인한 한 남성이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갑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1층부터 5층까지 스물한 집 초인종을 눌러가며 이웃들을 대피시키다가 연기에 질식해 숨을 거둔 안치범 씨.

성우를 꿈꾸던 그는 결국 자신의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목숨을 구했습니다.

[정혜경/故 안치범 씨 어머니]
"잘했다. 치범아 사랑한다 엄마가... 아빠, 엄마보다 나은 아들이어서 자랑스럽다고 그렇게 이야기해 줬어요."

같은 달 부산의 한 터널에선 유치원생 21명이 탄 버스가 미끄러져 넘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뒤따르던 차량 운전자들이 일제히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고, 힘을 합쳐 구조대가 오기 전 아이들 모두를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름없는 영웅들이 만들어낸 작은 기적이었습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나만이 살자고 하는 세상이 아니라 우리가 같이 애쓸 수 있고 같이 애써 나가는 평화롭고 성숙된 국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어떤 희망의 전망을 생각할 수 있게끔 되지 않았나 싶어요."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미래가 위태롭고 불안하다는 우려가 가슴 답답하게 했지만 미처 몰랐던 시민들의 저력과 선한 이웃들이 있다는 사실에 작은 위안과 희망을 발견했던 한해 역사는 훗날 격동과 혼돈의 2016년을 이렇게 기록할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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