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탄 맞은 창조경제센터.. 그래도 '벤처 떡잎'은 자라고 있다

박건형 기자 2016. 12.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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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 사태' 후 현장 가보니]
- 쑥쑥 크는 대전·대구·경기센터
SK·삼성 등 자발적 적극 지원, 정부도 법률 지원·파트너 연결
업체들 "개발 속도 3~4배 빨라져" 대전 업체는 실리콘밸리도 진출
인천·전남 등은 뚜렷한 성과 없어.. 일부 지역 구조조정 불가피

지난 20일 오전 대전 유성구 대전창조경제혁신센터.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인 '비디오팩토리' 직원들이 커다란 화면에 최근 출시한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세로(Sero)'를 띄워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KAIST·조선대 재학생들이 창업한 비디오팩토리는 원래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을 만드는 기업이었다. 2014년 대전센터에 입주한 뒤 전문가들과의 상담 과정에서 이 기술을 이용한 동영상 SNS 서비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김진회 비디오팩토리 대표는 "지난해에는 센터를 후원하는 SK의 미국 지사 도움을 받아 실리콘밸리에도 사무실을 열었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판교에 있는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의 공동 업무 공간에서 창업자들이 모여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는 사물인터넷부터 교육용 앱, 사이버 보안 등 다양한 분야의 스타트업 20곳 이상이 입주해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다(위 사진). 같은 날 찾아간 인천 송도의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에는 입주한 스타트업이 거의 없어 썰렁한 모습이다(아래 사진). 이곳은 지원 기업이었던 한진그룹이 해운업 구조조정 사태로 인해 센터 지원에서 손을 떼기로 한 상태다. /주완중 기자

정부·대기업·스타트업 매칭 효과 나타나

전국 17개 시도에 18곳이 설치된 창조경제혁신센터는 박근혜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로 정부·지방자치단체와 대기업이 손잡고 스타트업을 육성하자는 취지로 설립됐다. 그러나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겪으면서 센터가 유탄을 맞고 있다. 일각에서 '대기업 팔목 비틀기''지역 나눠 먹기'라며 센터를 비판하고 있다. 서울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내년 센터 지원금을 삭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장을 찾아 들어본 센터 입주 기업들과 창업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달랐다. 소형 프로젝터로 1000만달러(약 120억원) 납품 계약을 체결한 크레모텍, 국내 주요 자동차 부품 업체에 3차원 센서를 납품하고 있는 씨메스 등 대전센터에서만 30여 곳이 지난 2년간 센터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사업화에 성공하거나 수십억원씩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임종태 대전센터장은 "아이디어와 기술은 있지만 시장을 보는 눈과 경험이 부족한 스타트업을 정부와 대기업이 지원하는 것은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대전센터 지원사인 SK그룹 관계자는 "정부가 시킨다고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필요하니까 지원하는 것"이라며 "센터 지원 과정에서 이미 10여 개 기업을 발굴해 회사 차원의 투자를 단행했다"고 말했다.

20일 기자가 방문한 판교의 경기센터도 활기찬 모습이었다. 공용 3차원 프린터 6대는 모두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있었고, 10여 개 회의실도 가득 차 있었다. 교육용 프로그램 개발업체 한컴플렉슬의 박지훈 팀장은 "스타트업들은 시험용 기기 하나를 사는 것도 부담이 되는데 이곳에선 원하는 대로 기기를 빌려서 사용할 수 있다"면서 "입주 이전보다 제품 개발 속도가 3~4배는 빨라졌다"고 말했다. 스마트 조명 기기를 만드는 메를로랩의 신소봉 대표는 "센터 안에 법률지원센터와 벤처 투자·육성 업체까지 입주해 있어 외부로 파트너를 찾아다녀야 하는 시간을 대폭 줄였다"고 말했다.

국내외 벤처 투자자들도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중심으로 한 벤처 지원 정책이 한국의 창업 생태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3~4년 사이에 국내 창업 육성 전문 기업(액셀러레이터)이 5~6배 늘었고 구글 캠퍼스·요즈마·스파크랩 등 세계적인 액셀러레이터들도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삼성이 지원하는 대구센터의 한 관계자는 "국내 대기업 상당수가 실리콘밸리 등 해외에 거점을 두고 새로운 아이템 발굴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면서 "대구센터만 잘 운영해도 이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조조정은 불가피

물론 18개 센터 모두가 계획대로 잘 운영되는 것은 아니다. 인천센터는 지난해 7월 스마트 물류 스타트업을 발굴하겠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이 센터 후원사인 한진그룹의 물류 노하우를 활용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물류 스타트업이 낸 성과는 별로 없다. 최근에는 한진그룹이 한진해운 사태로 인해 센터 지원에서 손을 떼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GS가 맡고 있는 전남센터, 현대자동차가 후원하는 광주센터 등도 뚜렷한 성과가 없다.

창조경제추진단 관계자는 "전남센터는 센터가 있는 여수 지역의 인력(人力)이나 인프라가 스타트업을 키울 만한 여건이 되지 않고, 현대차가 광주에서 육성하겠다는 친환경 차량 분야는 스타트업이 진입하기 힘든 분야"라며 "대기업과 지역을 연결한다는 구상을 우선시하다 보니 이런 문제점에 대한 고려가 충분치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창조경제 주무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는 센터 지속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창조경제는 이번 정부가 끝나면 간판을 내릴 것이 분명하지만 창업 활성화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며 "센터 구조조정이나 역할 재정립을 비롯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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