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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신마비 환자 뇌에 신경칩 넣었더니..

입력 2016.12.25. 20:46 수정 2016.12.25.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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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정재승의 영혼공작소
<28> 신경보철학-브레인 임플란트

[한겨레]

총상으로 목 아래가 마비됐던 에릭 소토는 뇌 속에 인공칩을 넣는 수술을 한 뒤 자신의 손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캘리포니아공대 누리집 갈무리

미국 국방부가 지원한 프로젝트 중에 ‘연구비 먹는 하마’ 같은 프로젝트가 있었다. 10년 가까이 매년 100억원을 투자하고 있는데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 불리던 프로젝트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시어도어 버거 교수가 이끌고 있는 이른바 ‘신경보철’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대뇌에 인공칩을 삽입해 손상된 뇌 영역의 기능을 대신해주는 야심찬 연구다. 그는 지금 해마를 대체할 인공칩을 제작해 장기 기억을 잃은 환자들이 기억을 회복할 수 있는 치료법을 개발 중이다.

기억을 회복하기 위해 두개골을 열고 뇌에다 신경칩을 삽입할 사람이 어디 있냐고? 무슨 소리! 이 연구가 성공하면 뇌에 바로 칩을 삽입할 환자들이 줄서서 대기중입니다.

물론 “우리 애가 좀 산만해요. 의사 선생님, 저희 애 머리에 집중력 칩을 삽입해주세요”라거나 “제가 요즘 기분이 좀 우울한 것 같습니다. 두개골을 열고 편도체에 세로토닌 칩을 삽입하고 싶습니다”라는 환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치매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브레인 임플란트로 치매 치료

미국의 한 통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정신질환 혹은 신경질환에 대해 아직은 두개골을 열고 신경칩을 삽입하는 형태의 치료법에 참여하겠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부모님 혹은 당신이 치매에 걸렸는데, 약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두개골을 열고 신경칩을 삽입하겠느냐’는 질문엔 40%가 넘는 사람들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치매는 본인뿐 아니라 가족들에게까지 큰 고통을 안겨주는 병인데다가 상당 기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신경칩을 삽입해서라도 치료하고픈 열망이 강한 병인 모양이다.

시어도어 버거 교수가 해마를 대신할 신경칩을 개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해마는 단기 기억을 장기 기억으로 넘기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며, 치매에 걸리면 제일 먼저 손상을 받는 부위 중 하나이기도 하다. 몇해 전 그는 인공 신경칩으로 해마를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는 쥐의 해마 중 장기 기억에 매우 중요한 영역을 파괴한 뒤 ‘물 미로’라 불리는 기억력 테스트에 밀어넣었다. 수조에 담긴 물에 쥐를 빠뜨린 뒤 특정한 영역으로 가면 구출이 되는 실험이다.

쥐는 물을 싫어하므로 물에 빠진 쥐는 사력을 다해 나오려고 애쓰며, 구출될 수 있는 영역을 한번 알고 나면 그다음에 빠졌을 때는 바로 그 영역으로 헤엄쳐 온다. 그런데 해마가 망가진 쥐는 매번 물에 빠질 때마다 그곳을 기억하지 못해 헤매게 된다. 이전 경험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지 못했다는 뜻이다.

이번에는 해마가 망가졌으나 인공칩을 삽입한 쥐를 물에 빠뜨렸다. 그랬더니 이 쥐는 물에 처음 빠졌을 때는 헤맸지만, 그다음에 빠졌을 때에는 바로 구출 지역으로 헤엄쳐 오더라는 것이다. 이전에 한번 빠졌던 경험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간 것이다.

물론 인공칩이 해마의 기능을 정확히 대체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아직 해마가 기능을 수행하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래서 그것을 대체할 인공칩을 디자인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버거 교수 연구팀은 특정 영역으로 들어오는 신호와 나가는 신호를 분석해, 다양한 입력 신호에 대해 대응되는 신호를 만들어서 해마를 흉내내는 칩을 만들어 삽입해준 것뿐이다. 그는 유사한 실험을 원숭이에게서도 성공한 바 있다. 그는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세계 미래 콘퍼런스에서 “브레인 임플란트 기술이 향후 10년 내 이용 가능하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손상된 뇌영역에 신경칩 넣는
브레인 임플란트 연구 활발
쥐와 원숭이 대상 실험 성공
“10년내 상용화” 전망도



기억 외 운동기능 회복도 가능
총상으로 목 아래 마비된 남성
뇌에 신경칩 넣자 손 움직여
뇌 조작 등 악용될 우려도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대뇌의 원리를 잘 모르는데 그것을 컨트롤하거나 대체할 칩을 삽입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10년 투자한 국방부조차도 ‘연구비 먹는 하마’로 이 프로젝트를 불러왔다. 그러나 연구자들을 믿고 오랫동안 장기 투자를 해오고 있으니,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다들 믿고 있다.

물론 이 기술의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환자들 치료가 주목적이지만, 경우에 따라 이 기술이 인간의 기억을 마음대로 지우거나 조절하는 일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토탈 리콜>에서처럼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기억에 주입하는 방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미래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신경세포를 관장하는 칩을 뇌 속에 넣어 기억을 되살리거나 신체기능을 회복시키는 신경보철(브레인 임플란트)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쥐와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게티이미지뱅크

뇌 손상된 환자에게 희망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손상된 뇌 신경계의 일부에 인공칩을 삽입하는 기술을 탐구하는 학문을 신경보철학(Neuroprosthetics)이라 부른다. 가장 복잡한 기관을 대체할 기술이다 보니 매우 중요하면서도 발전이 더딘 것이 사실이다. 손상된 신체의 기능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의 의도를 보철기기에 전달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신경계와 상호작용하는 칩 개발이 필수다.

의수나 의족처럼 손상된 신체의 기능을 복구하고자 하는 노력은 의학계에 오랫동안 있어왔다. 하지만 신경계와 연결해 사용자의 의도를 읽고 제 기능을 수행하는 연구는 그 역사가 길지 않다. 미세전자공학과 미세가공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인체에 삽입 가능한 칩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부터 공기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바꿔주는 인공달팽이관 연구가 있어왔고, 최근에는 꽤 성능이 우수한 인공달팽이관이 개발된 상태다. 과학자 윌리엄 도벨은 자신의 눈을 대신한 인공 망막을 삽입해 뇌와 연결하는 데 성공한 바 있다. 해상도가 높진 않지만, 흐릿하게나마 외부 이미지를 처리해서 대뇌 시각피질로 보내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대뇌 시각피질과 연결된 인공눈을 연구하고 있는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의 눈 연구소 연구팀은 세계적인 가수 스티비 원더가 앞을 볼 수 있도록 인공망막을 제공하는 수술을 고려했으나(스티비 원더도 흔쾌히 실험에 참여하겠다고 승낙했으나!), 그는 워낙 어린 나이에 시력을 잃어 대뇌 시각피질이 인공망막으로부터 오는 신호를 처리할 수 없는 정도로 발달이 돼 있지 않다는 걸 알고 포기했다.

몸을 움직이는 연구라면 캘리포니아주립대(로스앤젤레스 소재) 자크 비달 교수의 연구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뇌파를 통해 뇌 활동을 읽어내고 이를 토대로 사지 마비 환자들이 기계를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실험의 선구자다.

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과 캔자스대학 의료센터 과학자들은 뇌에 손상을 입은 쥐에게 신경보철을 삽입해 잃어버린 운동 기능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쥐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행동이라 할 수 있는, 즉 매우 좁은 입구 속에 앞발을 밀어넣어 그 안쪽에 있는 음식을 파악하고 그것을 먹는 행동을 인공칩을 통해 정교하게 컨트롤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에만 해도 외상성 뇌 손상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150만명이나 된다.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부상당한 군인들, 미식축구 같은 격렬한 운동을 했던 은퇴 선수들이 포함돼 있다. 또 매년 뇌졸중 등으로 뇌 손상을 입는 환자도 80만명에 이른다. 만약 인공칩으로 대뇌 중 운동 영역을 회복할 수 있다면, 그들의 불편한 행동을 치료해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에게 시도된 경우는 없냐고? 물론 있다. 21살 때 총상을 입어 목 아래로 전신이 마비된 에릭 소토가 바로 그 예다. 그는 이제 자신의 팔에 부착된 로봇팔을 자신의 팔처럼 생각하고 움직임을 떠올리면 생각만으로 이 로봇팔을 움직일 수 있다.

“유체이탈을 경험한 것 같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리처드 앤더슨 교수와 그의 동료들이 수행한 이 연구는 이제 삼십대 중반이 된 에릭 소토에게 팔을 움직이고자 하는 의도를 생성하는 기능을 가진 뇌 영역에 인공칩을 이식해주었다. 지난 회에 소개한 제시 설리번은 어깨의 신경 다발을 가슴으로 옮겨 움직임이 조절되는 로봇팔을 장착한 반면, 에릭 소토는 뇌에 직접 신경칩을 삽입했다. 이러한 신경보철 장치의 이식을 통해 에릭 소토는 손을 흔들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가위바위보 같은 간단한 동작을 수행할 수 있다.

기존의 신경보철 연구는 뇌에서 운동을 관장하는 운동 피질에 이식되어 마비 환자가 로봇팔의 동작을 제어할 수 있게 해왔다. 그러나 운동 피질에 이식된 신경칩 장치는 동작이 상대적으로 느리며 덜컥거리는 단점이 있다. 다시 말해, 자연스러운 동작이 쉽지 않은 것이다. 캘리포니아공대 연구자들은 신경보철 장치를 직접적으로 동작을 제어하는 뇌의 운동 피질이 아닌 그 전 단계라고 할 수 있는 움직이려는 ‘의도’를 제어하는 뇌 영역에 이식함으로써 사람의 의도를 직접 읽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동작이 가능하다는 것도 알게 됐다.

아이가 둘 있는 아버지로 아내 없이 애들을 키우며 사는 에릭 소토에게 지난 10년이 얼마나 지옥이었을지는 짐작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뇌에 신경칩을 이식하고 로봇팔을 장착한 그는 놀랍도록 뛰어난 결과에 아주 흥분했다. “로봇팔을 제어하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를 깨닫고 놀랐다. 나는 이 순간을 마치 유체이탈을 경험한 것처럼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주위를 막 돌아다니면서 모든 사람들과 기쁨의 표시로 서로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파이브를 하고 싶었다”고 에릭 소토가 말했다.

팔이나 다리를 대신해주는 인공 대체물이 아니라, 뇌의 일부를 대체하는 기술은 과연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에 머물게 할 것인가? 아니며 거의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게 할 것인가? 이 기술은 치료용으로만 머물 것인가, 아니면 우월한 능력을 만들어내는 데 활용될 것인가?

양악수술도 원래 매우 위험한 얼굴 기형 치료용 성형수술기법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경쟁력이 된 세상에서 대한민국에서는 양악수술이 미용성형으로 자행되고 있다. 아름다움으로 인기를 얻고 돈을 벌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을 수 있다면, 턱을 깎고, 뼈를 잘라내는 수술을 기꺼이 받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높은 지적 능력이 경쟁력이 되는 세상에서, 내 신체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사회적 성공을 담보한다면, 기꺼이 두개골을 열고 신경칩을 이식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미리 그날을 위해, 허용해야 할 응용 사례와 그래서는 안 될 사례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