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된 계란시장..'농장은 계란수 속이고, 중간 상인은 폭리 취하고'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2016. 12. 25.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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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이후 소비자가격, 산지가격 보다 3배 증가..정부 방치 탓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되면서 계란가격이 연일 폭등하고 있다. 계란파동이라고 할 만큼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AI 여파가 크다고 해도 국내 계란생산량과 소비량을 감안하면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랐다.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중간 유통 상인들이 가격을 조절하는 계란 유통시장의 오래된 적폐 때문이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계란이 과잉 생산돼 산지가격이 아무리 많이 떨어져도 소비자가격은 변함이 없지만, 이번처럼 생산량이 조금 줄면 소비자가격이 급등하는 비정상적인 시장 구조가 형성돼 있다.

AI가 상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계란 유통시장이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란파동은 수시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 2006년 이후 10년...산지 계란 출하가격 15.6%↑ vs 소비자 가격 45.5%↑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우리나라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223개로 하루 평균 0.61개를 먹었다. 당시 인구 4800만 명을 감안하면 국내 전체 1일 소비량은 2930만 개였다.

그런데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06년 산란 닭 사육마릿수는 5500만 마리 정도로, 1일 계란 생산량은 3200만 개에 달했다.

적정 소비량 보다 270만 개 정도가 초과 생산된 것으로 이 당시 산지 계란 출하가격은 특란 10개에 평균 1064원이었다.

그렇다면 10년이 흐른 지금 국내 계란시장은 어떻게 변했을까?

올해 우리나라 1인당 연간 계란 소비량은 254개로 1일 평균 0.69개씩 소비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올해 우리나라 인구 5200만 명을 기준으로 하루 소비량은 3600만개 수준이다.

하지만, 10월말 기준 국내 산란 닭 사육마릿수는 7000만 마리, 계란 생산량은 1일 평균 4200만개에 달했다. 우리나라는 적정 소비량 보다 무려 600만개나 과잉생산 된 상태였다.

이렇다 보니, 지난 10월 말 산지 계란 출하가격은 특란 10개 기준 1230원 대에 형성됐다.

지난 2006년 평균인 1064원에 비해 10년 동안 15.6% 상승하는데 그쳤다. 이 기간 물가상승과 생산비 증가 등을 감안하면, 산지 계란가격은 제자리걸음도 모자라 오히려 후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기간에 소비자가격은 꾸준하게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2006년 10월 31일자 계란 소비자가격은 특란 10개 기준 1285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에는 1870원으로 무려 45.5%나 올랐다.

◇ 계란시장 붕괴 책임....1차 산란계농장, 2차 중간 유통 상인 ‘폭리’

이처럼 우리나라 계란 시장의 가격 불균형이 고질병처럼 굳어진 책임은 1차적으로 계란을 과잉생산한 산란계 농장주에게 있다.

산란계 농장을 운영하는 박봉석(67세) 대표는 “병아리를 입식해서 80주 정도가 지나면 닭을 도축하는데, 계란을 팔면 매일매일 현찰이 들어오기 때문에 알(계란) 농사를 지어 본 사람은 다른 일을 못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뻔히 적자를 보면서도 농장주인들이 제 살 깎기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산란계 농장의 이 같은 통제 불능의 현실을 잘 이용하는 세력이 바로 중간수집상들이다. 이들은 2~3개 거래처 농장에서 계란을 수집해 할인매장과 재래시장, 식품업체, 음식점 등에 판매한다.

올해처럼 계란이 하루에 600만개 이상 과잉생산 되면 이들은 오히려 중간에서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된다. 산지에서 이른바 할인율을 적용해 출하가격을 후려친 뒤 소비시장에서는 제값을 받고 판매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난 8월 2일의 경우 양계협회가 고시한 계란 산지가격은 특란 1개에 132원이었다.

이는 국내 산란계 농장의 생산원가와 계란 수급상황 등을 감안해 책정한 가격으로, 농장에서 최소한 이 정도 가격은 받고 출하하도록 권고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산란계 농장들이 중간수집상들에게 넘긴 가격은 1개 당 평균 99원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해서 수집된 계란은 소비지에서 168원에 판매됐다. 수집상과 중간 유통상인들이 산지가격의 70%인 69원을 챙긴 것이다.

◇ AI 사태...산지가격 정상화 + 유통상인 폭리 = 소비자 부담 증가

문제는 AI 발생 이후다. 이번 AI가 사상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계란 생산량이 급감했지만 단기간에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다.

대한양계협회에 따르면, AI 발생으로 22일 기준 국내 계란 생산량은 3200만개로 AI 발생 이전 보다는 1000만개가 감소한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국내 1인당 계란 소비량을 감안한 적정 수요량 3600만 개에 비해선 400만 개 정도가 줄어든 양으로, 10년 전인 지난 2006년 평균 생산량 규모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2006년 당시를 생각해 보면, 계란 수급에 큰 문제가 없다”며 “지금은 소비량이 조금 늘어났다고 하지만 소비자들이 평소 먹던 계란을 좀 줄여서 먹거나 하면 얼마든지 가격 상승세를 꺾을 수 있는 양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럼에도 가격이 폭등한 배경에는 덤핑 거래됐던 산지 가격이 정상화되고 중간 유통 상인들은 상인들대로 더 많은 이득을 취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6일 AI 발생 이후 지난 21일 기준 산지 가격은 평균 159원으로, 생산 원가 115원을 넘어섰다. 할인율이 적용되지 않았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산란계 농장들은 이번 AI사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며 “이 고비만 넘기면 그동안 손해 봤던 것을 한꺼번에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중간수집상과 유통 상인들은 산지 할인율이 사라졌지만 마진폭은 오히려 늘어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기준 산지 가격은 평균 159원이었지만 소비지에서는 평균 229원에 판매해 70원을 챙겼다. AI 발생 이전에 할인율이 적용됐던 지난 8월 2일의 69원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양계협회 관계자는 “지금 계란 파동이 일어나서 대형 매장들이 1인당 한 판(30개)만 판매하게 된 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중간 수집상들이 산지에서 계란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산란계 농장들이 고의로 출하를 기피하는 게 아니라 사재기와 매점매석 등 중간 유통구조의 문제가 더 크다”고 주장했다.

그는 따라서 “계란시장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선 산란계 농장들도 적정 수량의 병아리를 입식하고 정확하게 신고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며 “지금은 농장주들이 세금 등의 문제가 걸려 있어서 자신들이 기르는 산란 닭의 숫자를 제대로 신고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수집상과 유통 상인들의 가격횡포를 막기 위해선 소와 돼지처럼 산지유통센터(GP)에서 시장 수급에 따른 올바른 가격 결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가 그동안 센터 설치를 방치해왔기 때문에 이번처럼 가격파동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CBS노컷뉴스 박상용 기자] saypark@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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