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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증언 첫 보도' 전 일본기자 나눔의집 찾아 피해자 위로

입력 2016.12.24.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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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57) 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았다.

우에무라 씨는 1991년 8월 11일 자 아사히신문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기록한 고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의 증언을 전했다.

그는 오전 10시 할머니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지난 9월 한국에서 출간한 저서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를 박옥선,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광주=연합뉴스) 이우성 기자 =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전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57) 씨가 24일 오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을 찾았다.

우에무라 씨는 1991년 8월 11일 자 아사히신문에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기록한 고 김학순 할머니(당시 67세)의 증언을 전했다.

사흘 뒤 김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사실을 공개적으로 진술하면서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됐다.

그러나 일본 내 역사수정주의자들은 이 기사가 한일관계와 일본의 이미지를 악화시킨 '날조 기사'라고 공격했다.

그는 오전 10시 할머니들을 만나 안부를 묻고 지난 9월 한국에서 출간한 저서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를 박옥선, 이옥선, 강일출 할머니에게 전달했다.

우에무라 씨는 이날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다시 한 번 비판했다.

"1993년 고노 담화에도 포함된 일본군 위안부 역사 연구와 역사 교육에 대한 언급이 한일 정부 합의에는 없고 피해자들에게 돈만 주고 끝내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한일 정부가 이 문제를 영원히 기억에 새기며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재차 밝혀야 하는데 이런 내용도 담기지 않는 등 잘못된 합의라고 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1주일에 3시간씩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쿄와 삿포로에서 진행 중인 명예훼손 소송을 위해 두 나라를 바쁘게 오가는 중이다.

gaonnuri@yna.co.kr